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ak Feb 14. 2018

할슈타트까지  걷기


여길 왜 걷고 있는 걸까. 인도가 사라진 길에 들어서자 약간의 공포와 그보다 더 큰 후회가 밀려왔다. 차들은 앞뒤에서 무자비하게 지나갔다. 왼쪽엔 호수가 보이는 낭떠러지, 오른쪽엔 도로를 만드느라 깎여있는 산의 속살이 보이는 흙길. 내게 주어진 좁은 공간을 따라 구불구불 산길을 걸었다. 커브 너머 차의 굉음이 들릴 때면 보이지 않는 차가 겁나 걷지도 못하고 최대한 도로에서 멀찍이 물러섰다. 버스가 일으키는 바람은 등골을 한층 더 서늘하게 만들었다. 


태워달라고 해볼까. 어차피 길이 한갈래로 쭉 뻗어 있으니 대부분의 차가 할슈타트까지 갈 터. 가는 데까지만 가다 세워달라고 해도 목적지 가는 게 수월할 듯했다. 팔을 뻗어 흔들어 볼까 생각했지만 도로로 나온 팔을 치고 갈 기세로 달려가는 차를 보며 마음을 접었다. 이미 중간까지 걸어온 길. 돌아갈 수도 없었다. 버스정류장도 없고, 택시를 기대하는 건 더 말이 안 되는 상황. 길에 오르기 전 품었던 첫 마음을 되살리며 걸을 수밖에. 


전날 나는 이길이 무척 걷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버스에서 내렸으면. 버스는 중간에 서는 곳 없이 목적지까지 쌩쌩 달렸다. 교통체증이 있을리 없는 산길이었다. 사진으로 담고 싶어 카메라를 내밀었지만 잔뜩 흔들린 풍경만 담길 뿐이었다. 흘러가는 풍경을 붙잡고 싶었다. 버스 창밖으로 펜화로 그린 듯한 산등성이가 펼쳐졌다. 구름 가득낀 하늘 아래 눈이 듬성듬성 내려앉은 산 그리고 호수에 떠오른 또 하나의 산. 뚜벅이 여행자인 게 한스러웠다. 


할슈타트에 도착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하고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예약한 숙소가 할슈타트에 있지 않았던 것. 처음엔 황당했고, 또 숙소를 제대로 예약하지 못했단 사실에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비싼 할슈타트 숙소를 검색하다 고른 에어비앤비였다. 가격차가 컸지만 사람들 후기가 좋아 의심 없이 예약한 곳이었다. 인포메이션 직원에게 숙소 주소를 건네자 타고 왔던 버스를 타고 20분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분노를 삭혀주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왔간 길을 되짚어갔다. 그리고 뜻하지 않은 모험에 나서게 됐다.  


숙소를 출발해 3시간 넘게 걸었다. 구글 지도에선 도보 2시간 40분 걸린다고 나왔지만 중간 중간 풍경이 발길을 붙잡았다. 전날 빠른 속도로 지나쳤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선착장처럼 보이는 곳에 내려가 카메라를 들었다 휴대전화를 집었다 여러 번 반복했다. 사진을 찍겠다고 뒤에 줄서는 사람도, 눈치주는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길을 지나치는 사람도 없었다. 이 풍경은 오롯이 나의 것이었다. 


할슈타트는 기대와 달랐다. 머릿속으로 고스넉한 작은 마을을 생각했다. 여행을 준비하며 이곳을 알게 된 나는 할슈타트가 숨겨진 여행지라 믿었다. 현실 속 이곳은 마을 구석구석에서 관광객들이 사진 찍기 바쁜 곳이었다. 거리엔 소금 기념품 가게가 쭉 늘어선 마을. 백조가 떠다니는 호수의 여유로움은 그 앞에 카메라를 연신 들이대는 사람들로 인해 무너졌다. 한마디로 예쁘게 꾸며놓은 테마파크 같았다. 


한국 단체 관광객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앞에서 한국말이 들렸다. 가이드처럼 보이는 남성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여기 숙소 가격이 올랐어요. 이전엔 70유로면 빌리던걸 이젠 비수기에도 200유로를 받아요. 성수기엔 부르는 게 값이에요"라고 말했다. 마을을 한바퀴 휘 돌았다. 가이드북에서 본 자그마한 광장을 지나쳐 추위에 지친 몸을 녹이러 카페에 들어갔다. 직원 태도 때문인지 카페에도 한기가 돌았다.  커피를 비우고 급히 일어났다. 


돌아가는 길. 이번엔 버스를 탔다. 이미 천천히 눈에 담았는데도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대책 없이 걸었던 길. 차도를 따라 무작정 걸었다.


@묵었던 숙소(좌)와 할슈타트 대표 풍경



매거진의 이전글 잘츠부르크 완벽 여행(feat. 잘츠부르크 카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