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표는 달라도, 부르는 목소리의 온도는 같다
얼마 전 공원에서였다.
저만치 앞서 뛰어가는 아이를 향해 옆에 있던 엄마가 소리쳤다.
"Mon cœur, attends-moi!"(내 심장, 기다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가슴 어딘가가 뜨거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심장이라니. 이렇게 짧은 두 글자 안에 이토록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니.
네가 나의 전부라는 말을, 프랑스 사람들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일상 속에서 꺼내 쓴다.
세상의 모든 애칭을 다 모아봐도, 이보다 더 강렬하고 함축적으로 사랑을 담은 말이 있을까.
알고 보니 프랑스 엄마들의 애칭 목록은 꽤 넓다.
mon lapin(내 토끼), mon canard(내 오리), mon trésor(내 보물), mon amour(내 사랑).
여기까지는 그래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데 이웃집 엄마가 아이가 계단에서 넘어지자마자 달려오며 외치는 걸 들었을 땐 잠깐 멈칫했다.
"Oh, ma puce!"(내 벼룩!)
벼룩이라고?
그런데 그 목소리가 어찌나 다정하던지. 어떤 단어든 저렇게 사랑을 담아 부르면 애칭이 되는 모양이다.
벼룩이라고 불리는 아이 얼굴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보였으니까.
이 벼룩이라는 말을 가만히 곱씹다 보니 어릴 적 할머니의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우리 똥강아지 배고프지?"
생각해 보면 나도 어릴 때 할머니한테 맨날 강아지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그냥 강아지도 아니다. 똥강아지.
처음 이 단어를 외국인 친구한테 설명하려니 말문이 막혔다.
응, 똥이 붙은 강아지야. 그게 더 귀엽다는 뜻이야.
설명할수록 이상해지는데, 한국 사람이라면 다 안다. 똥강아지가 그냥 강아지보다 백 배는 더 애틋하다는 걸. 생각해 보면 프랑스의 ma puce(내 벼룩)랑 결이 비슷하다.
귀엽지 않은 것을 붙일수록 오히려 더 귀여워지는 그 묘한 원리.
우리 엄마는 아직도 나를 '아가'라고 부른다.
마흔이 훌쩍 넘은 딸한테, 전화할 때마다 "아가, 밥은 먹었어?" 한다.
그 말에는 늘 사랑이 담겨 있었다. 나이가 들어도, 멀리 있어도, 그 온도는 변하지 않는다.
나 역시 가끔은 프랑스 엄마들처럼 아이를 '몽 쾨르(Mon cœur)'라고 부른다.
내 심장이라는 그 강렬한 고백이 어느새 내 입술에도 자연스럽게 머문다.
남편과는 사귈 때부터 서로를 '내 사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사실 한국 사람이 들었을 때 어딘가 어색하고 오글거리기도 하겠지만, 이미 우리에게는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이름이 되었다.
가끔 친정 엄마는 이런 나를 흉내 내며 아빠한테 "내 사랑~" 하고 불러보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온 가족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곤 한다. 쑥스러움 뒤에 숨겨진 다정한 농담인 셈이다.
재미있는 건, 가끔 호칭이 엉켜 아들에게 "내 사랑~" 하고 부르는 실수를 할 때면, 아들은 기다렸다는 듯 까르르 웃으며 말한다.
"엄마, 엄마의 '내 사랑'은 아빠잖아. 나는 아니지!"
아들의 그 단호하고도 귀여운 선긋기에 또 한 번 웃음이 터진다.
이렇게 우리 집에서는 여러 개의 이름표로 누군가를 부르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강아지도, 내 보물도, 내 오리도, 내 심장도, 아가도, 내 사랑도 — 결국 다 같은 말이다.
나 여기 있어, 나 너를 사랑해,
나한테 너는 이런 사람이야.
언어는 달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부르는 목소리의 온도는 어디서나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