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우리는 공범이었다

아이의 창문에 뜬 무지개

by 찰나 지나

요즘 우리 아들은 무지개를 그리는 데 푹 빠져 있다. 햇살이 비스듬히 들이치는 주말 아침, 우리는 나란히 엎드려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었다.

아들의 방에는 시원한 통유리창이 하나 있다.

한국식 5층, 프랑스식 4층. 이 창가는 아이가 제대로 앉지도 못할 때부터 창밖 자동차를 쫓고, 계절마다 변하는 가로수의 색을 눈에 담으며 시간을 보내온 곳이다.

창밖 바로 앞에는 커다란 가로수가 한 그루 서 있는데, 지금은 겨우내 앙상했던 가지마다 푸릇푸릇한 새잎들이 돋아나고 있는 중이다.
밖을 가만히 바라보며 '조금만 더 지나면 저 푸른 잎들이 다시 창밖을 가득 메우겠구나' 하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아이가 슬며시 눈치를 보며 물었다.
"엄마, 여기에 무지개 그려도 돼?"
아들의 손은 창문을 가리키고 있었고 거절당할 것을 예상한 듯 살짝 주저하는 목소리였다.


기분 좋은 일탈, 베티즈(Bêtise)


프랑스어로 '베티즈(Bêtise)'라는 말이 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어리석은 짓'이나 '바보 같은 짓' 혹은 '장난'이라고 나올 뿐이지만, 프랑스에서는 이 단어가 꽤 진지하게 쓰인다.

아이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했을 때, 부모는 눈에는 진지함을, 말에는 무게를 실어 정. 확. 하. 게 짚어준다.

"그건 베티즈야."

나 역시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안 돼!'라고 말해 마땅하지만, 아이는 유리창에다 그림을 그리면 안 된단다는 걸, 그게 베티즈라는 걸 이미 잘 알고 있다.


좋아! 대신 엄마랑 같이 그리자!


아이의 얼굴에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환한 미소가 번졌다.

"Youpi(야호)!"

기분 좋을 때마다 아들의 입에서 나오는 최고의 감탄사다.

금기를 깨뜨렸다는 짜릿함과, 그 금기를 엄마가 함께 공유해 준다는 든든함이 아이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아들은 그 어느 때보다 기뻐하며 정성스레 무지개 빛을 하나씩 채워나갔다.

어쩌면 아이에게 필요한 건 완벽하게 통제된 바른 일상보다, 가끔은 이렇게 룰을 깨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유쾌한 찰나일지도 모른다.


자연이 아들에게 건넨 선물


서울의 하늘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무지개를 파리에 와서 자주 마주했다. 처음엔 사진도 찍고 한참을 바라보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무뎌졌다.

어느 날 오후, 유치원 앞에 서서 아들이 나오길 기다리는데 눈앞에 큰 무지개가 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들은 아직 무지개를 직접 본 적이 없구나.

내 손을 꼭 잡고 집을 향해 룰루랄라 걷는 아들에게 무지개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들, 저기 하늘 좀 봐. 저게 바로 무지개야."

책으로만 보던 무지개를 처음 보는 아이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했다.

하지만 아들은 몇 초를 잠자코 보기만 할 뿐 다시 집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생각보다 꽤 쿨한 첫 만남이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 아들은 자기만의 무지개를 그리기 시작했다. 도무지 무지개라고 하기 힘든 것도 무지개란다.

이젠 제법 그럴싸한 무지개를 그린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삐뚤빼뚤한 선에 알록달록 색을 꾹꾹 눌러 담아 할머니인 마미에게, 아빠에게 선물이라며 건넨다.

자연이 아들에게 건네준 것은 이렇게 아들의 작은 손을 통해 다른 이에게로 흘러간다.


오후 늦게, 유리창의 무지개를 닦아냈다.

무지개는 눈 깜짝할 새 사라졌지만, 아들이 무지개를 그리며 품었을 그 설렘과 기쁨은 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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