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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한수 May 01. 2018

추적 4

와쿨리마 시장으로 가다

셀 수 없이 많은 일꾼들이 채소와 과일을 가득 실은 므코코테니와 그보다 작은 수레들을 끌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 수레 없이 커다란 짐을 양쪽 어깨에 지고 있는 짐꾼들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마도 제때 치워지지 못한 농산물이 시장 곳곳에 쌓여 부패한 냄새를 풍기는 것 같았는데, 주변이 너무 캄캄해서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시간은 새벽 4시 반, 나이로비의 와쿨리마(Wakulima, 농부들; 영어의 마켓(market)이라는 단어에서 비롯된 별명인 마리키티(marikiti)라고 불리기도 한다) 시장 앞은 이미 장사진이었다.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들의 불빛에 내 피부색이 드러나면 사람들이 흘끔거리면서 쳐다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시선 보다도 스스로 그 시간에 시장통에 나올 수 있었다는 뿌듯함에 취해 있었다. 와쿨리마에 나온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새벽에 시장의 문이 열리기 전에 나오기 위해 일부러 시내에서 가까운 친구집에서 하룻밤 신세까지 지고 웃돈을 주고 택시까지 타면서 계획을 세운 터였다.


드디어 새벽 5시가 되었다. 오래된 시장의 철문 두 개가 끼이익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여기저기 졸고 있던 일꾼들이 순식간에 일어나서 수레를 밀고 끌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잠자고 있던 므코코테니들이 깨어나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시장 문 바로 안쪽에는 20세기 초 영국의 철도건설계획에 따라 놓인 철길의 흔적이 초라하게 남아 있었다. 한 때는 너무나 중요한 교통의 중개물이었겠지만 이제는 므코코테니들이 움직일 때마다 덜컹거리게 만들고, 가끔은 바퀴를 걸리게 만들어서 실려 있는 상품들을 떨어뜨리게 하는 장애물일 뿐이었다.


시장은 복잡했다. 서울로 치면 송파에 있는 가락시장 정도 되는 와쿨리마 시장은 케냐 각지에서 들어오는 엄청난 양의 농산물들이 나이로비의 곳곳으로 팔려나가기 전에 도매로 거래되는 곳이었다. 시장의 공간이란 공간은 모두 전날의 피로와 아침에 얻은 피로를 이중으로 안고 있는 수많은 일꾼들의 몸으로 가득 차 있었고, 나는 그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므코코테니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을 찾으려고 애썼다.


이른 아침 시간에는 므코코테니들의 움직임과 사람들을 관찰하고 안면이 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사람들이 내게 나눠주는 바나나나 파인애플 따위를 먹으면서 허기진 배를 달래기도 했고, 늘 보던 시장통의 아저씨들과 아줌마들을 보면서 새벽의 긴장과 피로를 풀기도 했다. 그리고 차츰 시장의 일상이 자리를 잡는 틈을 타서 친한 시장 관리자가 소개해 준 은조로 아저씨를 찾았다. 아저씨는 온갖 크고 작은 수레들과 쓰레기 더미 사이에서 자신의 므코코테니를 잘 움직이려고 애를 쓰는 중이었다.


땀에 젖은 아저씨의 작업복과 진흙투성이인 장화를 쳐다보면서, 또 주변 인파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나는 대체 무슨 부탁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을 했다. 므코코테니를 따라다니고 싶다는 말을 아저씨가 이해할 수 있을까? 이유가 뭐냐고 하면 또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므코코테니와 일하는 사람들의 피로와 고통 그리고 그들의 움직임과 도시의 변화를 알고 싶다는 이런 헛소리를 하면 아저씨가 황당해하지는 않을까?


그러다가 그냥 그냥 단순하게 가보자는 생각에, 어퍼 힐(앞의 이야기에서 언급한 가장 가파른 구간)을 통과하면서 일하는 므코코테니 일꾼을 한 사람 소개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내 고민이 무색할 정도로 이유도 묻지 않고 재빠르게 말했다.


"그럼, 존을 찾으러 가자. 그가 너를 도와줄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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