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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한수 May 03. 2018

추적 6  

수레를 미는 사람들

나는 존이 끌고 가는 므코코테니 근처를 왔다 갔다 하면서 어색하게 따라갔다. '보행자'인 나는 어쩔 수 없이 인도를 따라 걷고 있었지만 존은 도로 한편을 따라 차들을 피해 이리저리 수레를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혼란스러웠다. 대체 다른 동료들이나 일꾼들은 어디 있는 것일까. 혼자서 저 무거운 수레를 끌고 언덕길을 올라가는 것은 무리인데. 나는 뭘 해야 하는 것일까. 이렇게 쫓아만 가도 되는 것일까. 나도 참여를 해야 참여 관찰인데, 이건 대체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 것일까.


그런데 갑자기 작지만 뭔가 탄탄한 체구의 젊은 남자가 어디선가 나타나 순식간에 존의 므코코테니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제 존은 그의 옆에서 수레를 살살 밀면서 따라가는 보조적인 역할을 할 뿐이었다. 존은 나에게, "이 친구는 마이나(Maina)"라고 소개를 했다. 그러니까 마이나는 존과 함께 늘 같이 수레를 끄는 일꾼이었던 것인데, 휘청휘청하는 마른 몸을 가진 존에 비해서 훨씬 튼튼한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두 사람만으로는 무리였다. 나는 내가 이 추적을 시작한 계기가 되었던 그 날 침을 삼키지 못할 정도로 괴로워하던 수레를 미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드디어 우리는 언덕이 시작하는 초입에 있는 커다란 로터리에 도착했다. 차들은 씽씽 달리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지친 상태로 인간 신호등의 역할을 하는 교통순경의 앞에 섰다. 그저 그 복잡한 도로에서 존과 마이나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일념에 어색하게 수레 옆에 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순경이 차들을 멈추고 우리 일행을 포함한 사람들이 길을 가로지르도록 신호를 보냈다. 이제 곧 오르막이 시작할 터이고 수레를 끄는 사람은 마이나 뿐이니, 나는 존을 거들어서 그의 므코코테니를 함께 밀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온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오르막길 초입 곳곳에 걸터앉아 있던 네 명의 남자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다가오더니 재킷을 벗어서 채소와 과일이 가득한 짐 사이에 끼워 넣고는 곧바로 므코코테니를 움직이는 노동을 시작했다. 한 사람은 마이나 옆에 가서 그가 수레를 끄는 것을 도왔고, 나머지 세 사람은 뒤에서 수레와 한 몸이 되어 밀어 올리기 시작했다. 존이 내게 말했다.


"Watu wa sukuma (와투 와 수쿠마, 미는 사람들)."


케냐에서 스와힐리어로 '밀다'는 뜻의 sukuma는 사물을 민다는 뜻으로도 많이 쓰이지만, 하루하루의 고난을 밀면서 산다는 의미에서 쓰이는 경우도 많다. 케냐 사람들이 많이 먹는 채소인 수쿠마 위키(Sukuma wiki)도 한 주를 밀어내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를 가졌고, 그건 가난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반찬 재료로 유명하다. 므코코테니를 미는 그 사람들은 아마도 문자 그대로 그것을 밀고 있었지만, 어쩌면 자신들의 생계가 달린 그 수레를 밀면서 하루하루를 밀어내면서 살아가는 이들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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