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Habari Kenya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한수 May 04. 2018

추적 7

너 뭐하니? 안 도와줄거니? 

개발도상에 있는 사회(여러가지 논란이 있는 표현이지만)에서 연구를 하는 다른 사회 출신의 인류학자라면 이와 비슷한 상황을 많이 겪는다 (여기서 다른 사회란, 사실 경제적으로 개발이 많이 된 사회를 말한다). 눈앞에 보고 있는 사람들이 처해 있는 상황 때문에 상대적으로 내가 가진 것들이 너무나 많고, 내가 누리는 것들이 너무나 풍족하고, 또 내가 처한 상황이 너무 편해서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느껴지는 그런 상황이다. 나이로비에 있는 동안 빈민가에서 자라는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하루하루 재활용 쓰레기를 주워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그리고 목숨을 걸고 과속을 하면서 하루에 채워야 하는 돈을 만들어내는 마타투 운전기사들을 보면서, 거의 매일매일 그런 죄책감과 싸우면서 살았다. 그리고 언젠가 이 모든 느낌과 고민이 나이로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조금은 나아지도록 하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도 하면서 살았다.


갑작스럽게 므코코테니를 미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것도 내가 그들을 만나고 싶어서 이곳저곳을 쑤셔대다가 드디어 만났을 때, 나는 그 죄책감을 평소보다 더 무겁게 느꼈다. 아니, 사실 그 죄책감은 혼란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고통스러운 노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연구를 해보고 싶었는데, 막상 만나니까 사람들의 모습이 상상 이상으로 고통스러워 보였고, 이런 상황에서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미리 생각을 안 해봤던 것이다.


므코코테니를 미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노동이었다. 너무나 가파른 언덕을 가로지르는 그 도로에서 그것도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의 무시무시한 속력에 온몸이 노출된 채로, 감자며 망고며 양파 등이 가득 실린 구시대의 손수레를 끙끙거리면서 끌고 밀고 있는 사람들이 내 앞에 있었다. 그 노동의 한 복판에서 내가 인류학자들의 주된 현장업무라고 할 수 있는 문화를 기술하는 관찰자(ethnographic observer)가 되겠다고 설치는 것은 솔직한 말로 헛소리였다. 그리고 나는 모든 것들이 너무나 재빠르게 일어나서, 그러니까 순식간에 도로 근처에 흩어져서 존의 므코코테니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일꾼들이 나타나서 수레와 한몸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그 상황을 제대로 흡수하지도 못한 멍한 상태였던 것 같다. 뭘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그냥 옆에서 편하게 걸으면서 따라가야 하나, 아니면 뛰어 들어서 도와줘야 하나 (이 몸으로?). 일꾼들의 근육과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모습을 보면서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있던 그 순간, 그중의 하나가 내게 외쳤다.


"우나판야 니니? 후타사이디아? (너 뭐하니? 안 도와줄거니?)"


그렇게 나의 혼란은 순식간에 또 단순하게 종료되었다. 나는 그의 말이 무슨 신호라도 되는 듯이 튕겨 나가서 일꾼들과 함께 므코코테니를 밀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추적 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