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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한수 May 05. 2018

추적 8

이 안은 괜찮아

가파른 언덕길에서 그 무거운 므코코테니를 미는 것은 정말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난 수레가 미끄러지지 않는 것이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렇게 뛰어들어 내 몸을 수레의 움직임에 갖다 바친 이상 물러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일꾼들의 몸에 비하면 쓸모없는(?) 나의 몸이 가하는 작은 노동 조차도 빠지게 되면 수레는 뒤로 밀려날 것 같은 공포가 느껴졌다. 시지프스가 바위를 굴려 올릴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괴로우면서도 또 뭔가 미련하다는 느낌 들 정도였고 요즘 말로 속되게 표현하면, 개고생이었다.


므코코테니를 미는 고통이 온몸에 퍼지고 내가 이 추적을 시작한 계기가 되었던 일꾼이 그랬던 것처럼 숨을 쉬느라 침을 삼키기도 어려워지는 것 같았다. 인류학이고 뭐고, 연구고 뭐고,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뛰어든 그 노동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내가 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인가 되물었다. 게다가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 그 도로에 보호막 하나 없이 노출되어 차에 치이면 어쩌나 싶어 아주 무서웠다. 차들이 내 옆을 아슬아슬 스쳐 지나갈 때 나도 모르게 빽빽 소리도 질렀던 것 같다. 모두가 숨이 차서 헉헉거리는 소리만 내는데 나는 비명도 지를 여유(?)가 있었던 셈이다. 그때, 므코코테니를 미는 사람들 중 하나가 안쪽에 들어와서 밀라는 듯이 나를 잡아끌면서 말했다.  


"하파 은다니 니 사와 (여기 이 안은 괜찮아)."


나중에 논문 심사를 받을 때, 문화기술지 전문가였던 심사위원 교수님 한 분은 이 부분이 굉장히 충격적이었다고 말씀하셨다. 나 역시 그 순간의 당혹스러움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상황에서는 '안'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모두가 그 오래된 나무 수레에 달라붙어 오르막길을 끙끙거리면서 올라가는 상황에서 굉음을 울리며 지나가는 차들에 노출되어 있는데 대체 '안'이라고 부를 공간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가 말했던 '안'이란 므코코테니의 뒷부분에 마치 수레를 방패막이처럼 삼고 그나마 몸을 숨길 수 있는 그 공간이었다. 그건 마치 수레 주변이 거대한 비누거품에 쌓여서 우리도 그 '안'에서라면 안전할 수 있다고 믿는 자기 위안적인 공간해석이었다. 그이의 그런 공간해석 속에서 므코코테니는 자동차가 주류인 교통물결에서 마치 다른 차원의 존재처럼 움직이는 것 같았다. 자동차로 대변되는 근대화된 나이로비의 현실과 연속성은 없어 보이지만 또 현실에서 가난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계속 밀어야 하는 구시대의 이동수단 므코코테니. 안전이 없는 상황에서도 안전할 수 있다고 믿으며 계속하는 그 노동이 만들어내는 비누거품 속에서 나는 숨이 넘어갈 듯한 육체적인 고통과 연구자로서 느껴지는 복잡한 심정에 뒤범벅이 되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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