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보자
그렇게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와중에도 날카롭게 다가오는 생각이 있었다. 이 모든 고된 노동이 엔진 동력을 기반으로 한 사회에서 정말 너무나 의미 없게 보일 수 있고, 또 하찮아 보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 도로에서 므코코테니의 존재 자체가 너무 열악했고 또 소외되어 있었다. 나날이 도시화되는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이런 공간적인 소외를 겪는 므코코테니의 미래는 어떨 것인지, 그리고 이 수레를 밀면서 하루하루의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의 미래는 또 어떨 것인지. 그런 고민이 가슴을 후벼 파고, 다리와 팔의 근육이 마비될 것 같은 순간 누군가 몰아쉬는 숨 사이로 나직하게 말했다.
"투메조에아 (우리는 [이런 일에] 익숙해)."
말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이 말은 나이로비 곳곳에서 어렵게 노동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늘 듣는 말이었다. 익숙하다는 말로 이런 상황을 정리하는 것은 자기보호를 위한 것인지, 사회적으로 생긴 습관인지, 아니면 그 상황이 내재화(internalization)되어 나오는 말인지 늘 궁금했었다.
가파른 언덕길이 끝나고 이제 완만한 구간에서 진로를 바꿔야 하는 순간이 왔다. 고된 노동에 지쳐 숨이 가빠서 제대로 삼키지도 못한 침을 뚝뚝 흘리던 이를 내가 처음 목격했던 그 장소였다. 므코코테니를 밀던 사람들은 천천히 숨을 돌리면서 벗어두었던 겉옷을 찾아 입기 시작했다. 그들을 고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존은 품 안에서 동전들을 꺼냈다. 그리고 각 일꾼들이 내미는 손바닥에 50실링을 올려줬다. 1달러도 되지 않는 액수의 돈이었다. 정말로 고된 노동에, 정말로 적은 대가였다. 그들은 그 돈을 호주머니나 옷 속에 잘 챙겨 넣었다. 그리고 여전히 숨을 헐떡거리며, 땀에 전 얼굴로 활짝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케쇼 (내일 [보자])."
내가 내일 다시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존과 마이나가 수레를 끌고 앞서 나가는 사이 나는 잠시 뒤를 돌아보면서 그 '미는 사람들'의 지친 등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제 그 가파른 언덕길을 되돌아 내려가 아주 잠시 휴식을 취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또 다른 므코코테니를 밀어 올려 또 다른 50실링을 주머니에 챙겨 넣을 테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하루를 밀어내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작은 축적을 위해서, 그리고 그 축적으로 사서 돌아갈 수 있는 옥수수가루나 빵을 기다리는 식구들을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