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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한수 May 15. 2018

하람베

그 고릴라의 이름

내가 처음 하람베(Harambee)라는 단어를 들었던 것은 케냐의 초대 대통령 조모 케냐타(Jomo Kenyatta)의 음성을 통해서였다. 물론 그는 오래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직접 들었던 것은 아니고, 케냐가 영국에서 독립한 당시의 영상들을 보면서 들었다. 영상에서 그는 그의 상징이자 권위를 상징하는 flywhisk (소의 꼬리 등으로 만들어졌고 파리를 내쫓는 기능을 하던 채찍 모양의 물건)를 흔들면서 굵직한 목소리로 “하람베-“를 반복적으로 외치고 군중은 환호한다. 스와힐리어에서 하람베의 뜻을 한국어로 굳이 번역을 하자면, “함께 도모하자”정도가 아닐까 싶다. 케냐타는 독립 후의 케냐에서 서로 다른 민족들이 싸우지 않고 공동체로서 함께 자본과 물자를 모아서 발전을 위해 노력하자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하람베 정신을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공부를 하면서 케냐의 독립의 역사를 생각할 때 늘 하람베를 외치는 조모 케냐타의 모습이 떠올렸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서 아마도 2013년이었나, 내가 하숙처럼 지내던 집주인 아줌마가 “오늘 하람베에 간다”며 같이 가겠느냐고 물었던 때가 있었다. 하람베에 간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니, 하람베는 대중적으로 누군가 아프거나 큰일이 생겨서 돈이 필요할 때 주변 사람들이 모여 함께 기도를 하거나 다과를 하면서 돈을 모으는 행사였다. 호기심에 아줌마를 따라나서 하람베에 가보니 동네 사람들이 죄다 모여서 이웃 사람을 위한 병원비를 모으려고 하고 있었다. 동네에서 명망 있는 목사님이 참석하여 기도를 주최했고, 간단한 다과도 돌려졌다. 사람들은 준비된 모금함에 십시일반으로 돈을 넣었고, 사업을 하거나 큰돈을 만지는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아주 많은 돈을 기부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니까 조모 케냐타가 외쳤던 하람베가 사회통합을 위한 철학이었다면, 실생활에서의 하람베는 그런 정신을 뿌리에 깔고 자리 잡은, 한국 전통사회의 두레나 품앗이와 같이 공동체의 일원을 돕기 위한 비정기적인 행사였다.


케냐를 떠나고 오랜만에 하람베에 대해서 떠올렸던 것은 재작년인가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친구집에 초대를 받아서 놀러 갔을 때였다. 친구의 아들인 십대 청소년이 듣고 있던 랩송의 제목이 하람베였다. 나는 그 아이에게 하람베는 스와힐리어로 정말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얘기를 해줬는데, 아이는 “이모 이건 그런 뜻이 아니고 고릴라 이름이에요”라고 말해줬다. 고릴라라니? 그런 고릴라가 있었어? 그런데 노래는 또 왜 만들어졌지? 이어지는 궁금증에 하람베에 대해서 검색을 해보니, 내가 놓친 뉴스 중에 신시내티의 동물원에서 사살당한 고릴라 하람베의 이야기가 있었다(이 이름에는 뒤에 붙는 e가 하나 빠져있다). 하람베가 있던 우리로 세 살 먹은 아이가 떨어졌고, 하람베에 의해 끌려가던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동물원은 그를 사살할 수밖에 없었다는 뉴스였다. 그리고 이후에 많은 학자들이 하람베가 취했던 행동이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태도였다고 반박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나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하람베가 어떻게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케냐에는 고릴라가 없는데 혹시 스와힐리어를 쓰는 민주콩고 동부에서 데려온 고릴라는 아닌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하람베는 1999년 텍사스에서 태어나서 나중에 신시내티의 동물원으로 이송된 친구였다. 그리고 종류로 따져도 스와힐리어와는 상관이 없는 서아프리카 쪽의 혈통을 가진 고릴라였다. 텍사스에서 태어난 서아프리카 혈통의 고릴라가 동아프리카의 언어인 스와힐리어 단어의 이름을 가지게 된 계기는 동물원에서 주최한 작명 콘테스트 때문이었다. 당시 그 지역의 특수교사였던 댄 밴 코 페놀(Dan Van Coppenolle)씨가 리타 말리(그녀의 남편이 밥 말리다) 노래 <하람베>를 듣고 응모했고, 당선되었던 것이다 (위키피디아에 Hrambe를 치면 나오는 정보다).


그렇게 나는 리타 말리의 <하람베>의 가사까지 찾아보게 되었다.


No matter what they do

No matter what they say

All a Jah Jah children a go Harambe


그들이 무엇을 하든

그들이 뭐라고 말하든

아이들아 함께 가자 함께 힘을 모으자


리타 말리는 모두의 협동을 의미하는 하람베 정신을 이 노래에 담았고, 그건 동물원에서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조상의 땅은 밟아보지도 못한 고릴라의 이름이 되었다. 그리고 그 고릴라는 결국 사람이, 동물보다는 사람을 위해서 만든 공간에서, 또 사람에 의해 생명을 잃고 말았다.


내가 아는 하람베의 출발에는 케냐의 독립이 있었는데, 그 잠정적인 마지막에는 고릴라 하람베의 죽음이 있었다. 하지만 이게 그냥 끝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하람베는 인간사회에서도, 또 인간사회를 초월한 지구 상에서도 계속되어야 하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하람베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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