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산 지역 방언으로 한국어를 습득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교과서로 배운 표준 한국어와 평소에 쓰던 마산말을 동시에 이해하고 코드 스위칭(말하는 도중에 언어나 말투를 바꾸는 것)도 쉽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게 꽤 오랫동안 이어졌기 때문에 한국어 내에서의 '차이'를 접하는 것이 별로 낯설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미국에 나가서는 한국말을 쓰는 친구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10년 가까이 영어를 주요 언어로 쓰게 되었다. 덕분에 영어의 다양성에도 어느 정도 노출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스코틀랜드나 미국 중서부와 같이 같은 영어라도 또 다른 영어를 쓰는 곳에서 온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기회가 있었고, 또 케냐에서 쓰는 영어를 접하기도 했다.
내가 한국어와 영어 다음으로 잘하는 언어는 스와힐리다. 그렇지만 소위 말하는 능숙도/유창성(fluency)으로 따지면 나의 스와힐리 능력은 영어 능력의 절반 정도나 될까. 그러니까 나는 아직도 스와힐리어에 있어서는 학습하는 단계에 있다. 아니, 요즘에는 별로 사용하지 못하니 이건 퇴화하는 단계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언어를 배우는 환경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은 표준어로 언어를 습득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다. 물론 한국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것으로 유명한 로버트 할리 같은 사람은 특별한 경우겠지만.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교과서나 책으로 배우는 표준어 형태를 접하는 것처럼 나도 스와힐리어의 본고장인 동아프리카 해안 지방에서 유래된 형태(East Coast Swahili)를 배워왔다. 케냐나 탄자니아에서 쓰는 스와힐리어가 바로 그것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표준적인 형태는 탄자니아나 케냐 해안가에서 쓰는, 듣고 있으면 참 고급스럽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세련된 스와힐리어다.
나는 나이로비에서 스와힐리어를 배웠지만, 바른말을 가르치려고 애썼던 선생님과 책을 통해서 배운 덕분인지 사람들이 "너는 탄자니아에서 스와힐리어를 배웠냐"는 질문을 할 때가 많았다. 내가 하는 스와힐리를 들으면서 "safi," 그러니까 깨끗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다가 길거리나 버스에서 여러 가지 지역/부족 언어들의 영향으로 바뀐 사투리를 접하면 그게 그렇게 신기하고 놀라웠던 기억이 난다. 예로 들면, 보통 "니나엔다"라고 하면 I am going/I go 정도의 의미인데 어떤 사람들은 계속 "니나엔당가"라고 하는 것이다. 한국어로 치면, "간다"를 경상도에서 "간대~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할까. 알고 보니 그건 루야 사람들이 쓰는 말에서 '오염된' 형태라고 한다. 그런데 웃긴 건 루야 사람이 아닌 사람들도 그런 종결형을 자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왜 그러냐고 하니까 자기들도 잘 모르겠고 그냥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여러 가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사는 나이로비의 변두리에서 당연히 생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피닉스에서 콩고 출신 난민들과 일하면서는 콩고 사투리를 열심히 듣고 이해하느라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콩고 동부에서는 사투리로 변한 스와힐리어가 주요 언어인데 대부분의 난민들은 그쪽 출신이다. 난민들 중에서도 탄자니아나 케냐의 난민캠프를 거쳐서 온 사람들 중에는 내가 쓰는 스와힐리어와 비슷한 스와힐리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정말 오잉? 하는 느낌이 드는 사투리여서 이건 뭐지 싶을 때가 종종 있었다. 콩고 내에서도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에 따라서 사투리가 굉장히 다르다는 것을 논문을 찾아서 읽고서야 알았다. 콩고에서 쓰는 스와힐리어를 연구하는 경우도 드물다고 한다.
가끔 사투리가 너무 심한 분이 오시면 사투리를 안 쓰는 사람을 찾아다가 중간 통역(?)을 해서 이해를 할 때도 있었다. 미안하기도 하면서 뭔가 내가 좀 더 잘했더라면 싶기도 했지만, 이런 과정에서 나는 더 넓은 스와힐리어의 바다를 헤엄치는 행운을 누렸다는 생각도 든다.
언젠가 콩고 사투리를 제대로 배우는 날이 올려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