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Habari Kenya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한수 Mar 07. 2018

They have sharp eyes

케냐에서 한 두어 번 엄청 아팠던 적이 있다. 그럴 때면 친한 수녀님들이 일하시는 성 오딜리아스 진료소에 가서 진찰도 받고 약도 타 먹고 그렇게 버티고는 했었다. 그러다가 하루는 사람들로 가득 찬 대기실에서 한 아이와 아빠의 대화를 엿들은(?) 적이 있다. 아이는 여덟 살인가 아홉 살인가 되는 듯했는데 그 진료소에 처음 왔던 모양인지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는 아빠 주변을 왔다 갔다 거리면서 구경을 하는 듯했다.


아이는 초록색과 흰색의 꽃들이 그려진 헤드스카프를 쓰고 분홍색의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어디가 아픈 모양인지 학교를 가지 않고 진료소를 온 눈치였다. 처음에 나는 아이가 신고 있던 약간 굽이 있는 예쁜 슬리퍼의 또각거리는 소리가 가만히 울려 퍼지는 것을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이가 아빠에게 해대는 질문들이 재미있어서 부녀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새하얀 베일을 쓰고 지나가는 한 간호사 수녀님을 보고 아이는 아빠에게 물었다.


“저 사람도 무슬림이에요?”


그러자 아빠는 가만히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니, 저분은 로만 가톨릭 수녀님이야.”


하지만 아이는 왜 수녀님이 자신의 헤드스카프와 비슷한 것을 쓰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은 표정이었다. 아이의 그런 마음을 눈치챈 아빠가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성경에도 머리를 가리라고 나와 있지. 수녀님들은 그걸 따르시는 건데, 다른 사람들은 그걸 지키지 않는 거야 (약간의 농담조로).”


이 대목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아빠의 농담스러운 말투 때문에 그렇기도 했지만,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성경의 내용을 이야기하는 무슬림 아빠와 딸의 대화를 듣고 있는 상황이 뭔지 모르게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기독교인들이 대부분인 케냐에는 10% 정도의 이슬람 인구가 있다).


아이의 아빠는 친절한 미소로 나를 응시했고, 나도 거기에 응답하면서 우리는 인사를 나누었다. 아빠는 아이에게 오늘 병원 끝나면 다시 학교에 가야 한다고 말하는데 과일향의 풍선껌을 불었다 넣었다 하는 아이는 그게 못내 싫은 표정이었다.


그때, 엑스레이를 담당하시는 한국 수녀님이신 마리아 수녀님이 우리 앞을 지나가셨다.


아이는 또 물었다.


“저 사람은 인도 사람이에요?” (케냐에서는 흔히 인도 출신 사람들은 아시안(Kenyan Asia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니라고 말하면서 나를 슬쩍 보며, “저분은 아마 한국사람일 거야”라고 대답했다.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몽고인…They have sharp eyes라고 말하며 내게 동의를 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나는 그때 그 표현이 얼마나 좋았는지, 또 매력적으로 들렸는지 모른다. 아몬드 모양의 눈이라니 쭉 찢어진 눈이라니…그런 표현들만 들었는데, 샤프하다니까 정말 샤프한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내가 웃으면서, “맞아요 그런데 어떻게 마리아 수녀님이 한국 사람인 것을 아셨어요?”라고 물으니, 여기 몇 번 진찰을 받으러 왔었고, 또 언젠가 교회를 짓는 한국인들과 일한 적이 있다고 자신의 관찰을 풀어놓았다.


부녀와 나의 대화는 내가 진료실에 들어가면서 끊어지게 되었다. 다시 나왔을 때는 그이들이 없었고, 이후로도 다시 만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미국에 돌아가서 가끔 내 눈을 놀리는 고약한 사람들을 만나면 그 아이의 하늘거리는 헤드스카프와 아이 아빠의 “They have sharp eyes”라는 말이 떠올랐다. 놀리는 사람들(소위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봐도, '니들이 놀려봐야 난 샤프한 눈매를 가진 사람이야'라는 생각 덕분에 뭔가 무척 당당했다.

마음에 멋진 방패를 하나 단 기분이었달까!

매거진의 이전글 무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