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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한수 Jul 28. 2018

한국은 나이로비 보다 덥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대화

"선생님, 한국사람들은 한국이 나이로비 보다 덥다는 말을 믿지 않아요."


나이로비에서 내 수업을 들었고, 이제는 한국에 유학을 와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W가 속상하다는 듯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연중 온난하고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나이로비에서 나고 자란 본인은 생전 처음 겪는 무더위와 폭염 때문에 너무 괴로운데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은 W가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에서 왔으니 더위를 쉽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오해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었다. 영어가 공식 언어인 케냐에서 초중고를 다닌 학생에게 토익 수업을 필수로 듣게 하는 것도 이상하고, 케냐가 어디 붙어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지치고, 또 영어가 모국어나 마찬가지인 W가 지적하는 문법 문제에 대해서 동급생들이 신뢰를 보여주지 않는 것에도 실망감을 느낀다고 했다.


나는 W의 억울함과 답답함을 이해하면서도 왠지 이 젊은이가 문화적으로 성장의 발판을 얻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반가움을 느꼈다. 그리고 이제는 케냐에 대한 추억이 되었고, 내가 여기까지 오는 길에 놓인 나침반처럼 느껴지는 답답했던 경험들이 떠올랐다. 내가 중국인이 아니라고 하면 믿을 수 없어했던 수많은 버스차장들과 택시기사들, 아시아에는 중국 말고도 여러 나라들이 있다는 것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던 사람들, 한 나라에 여러 부족공동체가 없을 수도 있고, 또 하나의 공용어만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던 친구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나 사이에 있는 이 장벽이 너무 두껍고 높게 느껴졌다. 사람들이 내게 제기하는 의문과 고정관념들을 하나하나 상대할 수도 없었고, 그 다름에 대한 해법이 무엇인지 고민하는데도 지치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내게 '니하오'라고 인사하는 사람들을 10명 정도 만나는 날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스와힐리어 인사로 받아치는 것에도 한계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걸어가는 내 뒤를 따라오는 '칭총 칭총'이라는 속삭임에 질려버릴 것 같았던 그날, 나는 내가 가진 답답함이 그 장벽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로 변하는 순간을 경험했다.


나이로비 인근에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원작을 쓴 카렌 브릭슨의 이름을 따서 카렌이라고 부르는 지역이 있다 (그 영화의 무대가 된 지역이기도 하다). 카렌에는 서양인들이 사는 고급주택도 많고 이런저런 쇼핑몰들이 있어서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기사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기도 하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나는 아마도 인근에 있는 은도뇨라는 곳에 있는 지인들을 만나러 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나를 칭총이라고 큰 소리로 부르는 택시기사 한 사람을 마주쳤다.


그 순간은 뭐랄까. 정말 불만이 축적되다가 임계점을 넘어서면서 폭발하는 순간 같았다. 나는 생전 처음 보는 그 택시기사를 향해 휙 돌아서서 따지기 시작했다 (평생 그렇게 스와힐리어를 잘했던 순간이 딱 한번 더 있었다).


"당신은 잘 알지 못하는 나를 왜 그렇게 부르느냐, 나는 중국인도 아니고, 또 중국인들도 그런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나쁘다. 이건 좋지 못한 매너(madharau)다"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말은 그렇게 당당하게 하면서 속으로는 얼마나 쫄았는지 모른다. 주변에 다른 택시기사들이 우르르 나를 쳐다보는 것을 의식하면서 혹시 이 기사가 나한테 버럭 화라도 내면 어디로 어떻게 도망쳐야 하는지 3초 동안 고민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 택시기사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오히려 궁금한 목소리로, 그게 정말이냐, 칭총이이라는 말이 중국사람들이 좋아하는 소리가 아니란 말이냐고 되물었다.


나는 일단 악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케냐에서 악수는 정말 중요한 인사다). 그리고 우리는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내가 칭총이라는 말이 다른 문화에서 온 사람을 놀리고 비하할 수 있다는 말까지 했던 그 시점에서, 택시 기사는 내 손을 조금 더 단단히 잡고 알려줘서 정말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렇게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마치고 약간 긴장한 기분으로 은도뇨를 향해 걸으면서, 나는 뭔가 기분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그리고 이후로 몇 달 동안 몇 번 더 비슷한 대화를 이어갔다. 돈을 찾으러 간 은행에서 내게 한국과 아시아에 대한 질문을 던진 경비원, 버스를 기다리는 내게 다가와 북한과 남한이 어떻게 다른지 물어본 오토바이 택시 운전사, 한국에 대한 글을 읽고 싶다고 했던 단골 미니버스 차장 등이 바로 그 대화를 이어간 '다른'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다르다. 하지만 다름 앞에 화가 난다고 포기하면 그다음은 없다. 답답해하는 W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바로 그 '다른' 사람들에게 배운 대화다. W가 한국에서 포기 대신 그 대화의 기회를 얻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W가 지금의 내가 그러듯 한국을 추억하면서 떠올릴 수 있는 그런 대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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