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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한수 Aug 04. 2018

노인과 리어카

불평등한 무게에 대하여

마포역에 갔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선배를 만나기 위해 한 유명 냉면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공기는 텁텁했다. 체감온도가 39도는 된다고 했던 그런 날의 저녁이었다. 주변에는 평일날의 퇴근을 서두르는 사람들과 그래도 저녁식사를 하고 한 잔을 걸치고 들어갈 것 같은 사람들이 뒤섞여서 움직이고 있었다.


마포는 내가 알던 예전의 마포가 아니었다. 온갖 주상복합을 비롯한 반짝거리는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냉면집의 위치를 찾는 것도 꽤나 어려웠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건널목 하나를 건넜을 때였다. 길 모퉁이에 고개가 완전히 꺾일 정도로 올려다보아야 할 만큼의 폐지가 쌓인 리어카가 보였다. 나는 순간 그 리어카의 손잡이가 달린 쪽에 무엇인가 달랑거리고 있다는 것을 느껴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건 사람이었다. 내 몸집의 절반도 안되어 보이는 작고 가냘픈 한 노인이었다. 노인은 끌어야 하는 그 리어카가 똑바로 세워지지 않아서 그가 가진 온 힘과 무게를 더하여 리어카를 일으키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노인의 무게와 리어카의 무게는 극과 극이었는데, 그럼에도 노인이 그 무게를 쌓아 올렸다는 것이 기묘했다. 나는 그 기묘함에 넋이 나가 잠시 노인을 쳐다보다가 그와 눈이 마주쳤다. 노인이 입을 열었던가? 모르겠다. 그런데 노인의 목소리가 분명하게 들렸다.


"좀 도와주세요."


나는 들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노인의 옆에 붙어 리어카를 끄는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노인의 가냘픈 몸무게에 나의 대한민국 성인 여성 정상체중을 더하여 리어카의 무게에 감히 대적했다. 첫 시도에도, 그다음 시도에도 리어카는 일어서지 않았다. 엉덩이가 무거운 리어카였다. 어느 순간 노인은 몇 번이고 "하나, 둘, 셋"을 반복하며 나와 무게의 리듬을 맞추려고 했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는 그 엉덩이가 무거운 리어카를 들어 올렸다.


뭔지 모르게 노인의 얼굴이 환해졌다. 하지만 내 표정은 어두워졌다. 리어카를 들어 올렸지만 이제 노인은 혼자서 이것을 끌고 한참 동안 어디론가 향할 것이 아닌가. 노인은 묘하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리어카를 움직이면서 내게 감사의 인사를 남겼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그가 이 산더미 같은 무게를 옮긴다는 사실을 계속 납득하려고 노력하면서 되물었다.


"어르신,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어디로 가시는 거예요? 괜찮으신 것 맞아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재빨리 리어카를 움직여 나와 반대 방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노인이 보이지 않았다. 그 작은 몸은 산더미 같은 짐에 가려져서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노인이 리어카를 끌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리어카에 노인이 매달려서 가고 있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노인을 배웅(?)하면서 나는 뭔지 모르게 익숙한 이 상황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이로비에서 만난 조지가 떠오르고, 아이작도 떠오르고, 살로메도 떠올랐다. 얼굴 보다도 가냘픈 몸집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모두 나이로비에서 너무나 불평등해 보이는 무게를 옮기면서 푼돈을 벌어 생활하던 이들이었다. 하루의 노동이 끝나던 순간에 그이들의 손바닥에 쥐어지던 동전 몇 푼과 지폐 한 두 장을 나는 기억한다. 그들이 옮기는 물건을 재는 저울을 원망하고, 그 불평등의 무게에 슬픔을 넘어서 절망을 느끼고 헤어져 돌아오던 길도 생생하다.


노인은 벌써 사라졌는데, 나는 계속 뒤를 돌아보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의 흔적을 찾았다. 아니 뒤를 돌아보면 호리호리한 몸집의 조지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므코코테니(케냐의 리어카와 같은 수레)를 끌고 있을 것 같았고, 아이작이 물건을 담은 포대를 양 어깨에 짊어지고 내게 손을 흔들며 걸어오고 있을 것 같았고, 또 에 지고 있는 물건들의 무게에 짓눌린 살로메가 짐을 들어주겠다는 내게 "네가 들기에는 너무 무겁다"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고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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