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펜을 갈아야 하고 손가락은 아프지만
90명으로 시작한 수업은 다행히(?) 82명으로 자리를 잡았다. 사정이 있어서 중도 포기한 학생들도 있었고, 또 휴학을 한 학생도 있었다. 8명이라도 줄어든 것에 묘한 반가움을 느꼈던 이유는 채점의 부담감이 꽤 있었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제출한 하나하나의 페이퍼에 나의 감상과 개선할 점을 써 내려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몸은 좀 힘들었지만).
첫 페이퍼에는 뭔가 단순한 요약식의 내용만을 반복하던 학생들도 내가 준 피드백을 본 탓인지, 두 번째 페이퍼부터는 뭔가 '대화'를 시도하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들이 보고 겪고 들은 것을 내게 전해주려는 노력이 다가왔고, 또 나 역시 그에 최선을 다해서 응했다. 페이퍼 한 묶음을 채점할 때마다 펜을 새로 갈아 끼워야 했는데, 요즘 새로 나온 지워지는 펜을 쓰느라 (잘못 쓰면 지워서 다시 쓰느라고) 시간강사의 지갑에 약간의 경제적인 부담이 있었지만 그게 딱히 중요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점수로 다 표현할 수 있는 학생들의 배움과 향상이 주는 보람이 컸다고나 할까!
그건 대화였다. 대형강의에서 어느 정도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대화를 그렇게라도 이어갈 수 있어서 진심으로 행복했다. 확실하게는 말하기 어렵지만, 대강 22개국에서 23개국 정도의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가진 문화와 생각을 배울 수 있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기도 했다.
이제 각자의 나라로 돌아간 학생들도 있고, 한국에서 학업을 계속하는 학생들도 있다. 피곤한 금요일 오전에도 나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 얼굴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설렌다. 이 젊은이들이 앞으로 인류학의 세세한 용어나 이론은 잊어버려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조금 서운해도 내 이름을 잊어버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대신 자신과 조금 또는 많이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또 그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지난 4개월 동안 듣지 않아도 되는 말을 듣고, 또 잠을 희생하고, 출근 전과 퇴근 후에 짐보따리를 들고 여기저기 카페를 기웃거렸던 나의 우스운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진짜 힘들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