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다를 발라서 전자렌지에 땡!한 빵의 맛

by 심한수

오랜만에 부산에 갔다. 집에서 부산으로 들어가면 만덕터널을 지나고 동래로 접어드는데 거기에는 나보다 다섯 살이 어린 동생이 태어난 광혜병원이 아직도 자리를 잡고 있다. 확실한 기억인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동생이 태어났을 때 외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병원에 동생을 보러 갔다. 왜곡된 기억인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신생아실 앞에 서서 동생을 봤던 기억이 난다.

수년 전 내가 필라델피아에 있을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나는 돌아가신 줄도 모르고, 탈모와 치아균열을 유발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뭔지 모르게 기분이 싸-했다. 그건 식구들과 며칠 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할아버지의 관을 장지에 옮기던 때마침 내가 건 전화를 받은 아빠를 통해 할아버지의 임종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놓친' 후, 나는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과정을 지켜보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경험했다. 일단 그분이 떠나신 것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어디 계시는데 내가 지금 미국에 있으니까 못 뵙고 있는 것...이라는 기분에 가끔 사로잡힌다고나 할까. 쉽게 말하면, 착각이다. 그러다가 또 생각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지 참..."에 닿게 되면, 할아버지가 내게 남긴 가장 행복한 기억을 떠올려본다. 그게 내가 놓친 할아버지의 마지막에 대한 보상인 듯 말이다.

어릴 때, 어느 날인가 할아버지와 나만 외갓집에 남아 있었던 날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배가 고팠던 것 같고, 할아버지는 내게 빵을 권하셨다. 그때까지 나는 빵에는 쨈만 발라먹어야 하는 줄 알고 외갓집 부엌에서 쨈을 찾았다. 아직은 식생활의 세계가 좁았던 시절이었다.

아마도 쨈이 없었던 것일까. 할아버지는 냉장고에서 버터를 꺼내시더니, "빠다를 발라서 전자렌지에 땡! 하면 얼마나 맛있는데 우째 그걸 모르노?"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모닝빵을 반으로 갈라 그 안에 딱딱하게 굳은 버터를 적당하게 바르고 전자렌지에 잠깐 돌려서 내 앞에 놓아주셨다.

그건 신세계였다. 너무 맛있었다. 쨈 없이도 빵이 그렇게 맛있을 수 있는 줄 몰랐던 나는 그렇게 빠다를 발라 전자렌지에 땡!한 빵을 세 개나 먹었던 것 같다.

그 맛의 신세계를 열어주셨던 할아버지를 오랜만에 추억한다. 내 혀는 할아버지가 빠다를 발라 전자렌지에 땡!한 그 빵의 맛을 여전히 기억한다. 나는 지금도 빵에는 꼭 빠다를 바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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