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에서 나는 어쩌다 보니 오바마의 나라에서 온 사람일 때가 있었다. 한국 사람이었지만 미국 학교의 학생이었고 케냐에 가기 전 5년 이상을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또 운이 좋게도(?) 오바마가 두 번 당선되는 동안에도 내내 미국에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난 2년 정도의 시간을 제외하면 오바마의 미국에서 살았던 셈이다.
그랬기 때문인지 케냐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게 오바마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다. 오바마가 정말 인기가 많니? 네 생각에는 오바마가 재선 될 수 있을 것 같니? 너 오바마가 사실은 케냐 사람인 것을 아니? 오바마가 우리 고향 출신인 것은 아니?
오바마의 아버지는 케냐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공동체들 중의 하나인 루오(Luo) 출신이었다. 루오 사람들은 빅토리아 호수 근처에서 어업을 많이 했지만, 케냐의 독립 전후로는 많은 지식인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그 배경을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대표적인 지도자였던 자라모기 오깅가 오딩가(Jaramogi Oginga Odinga)가 루오 출신의 젊은이들이 유학을 가고 공부하는 것을 많이 지원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케냐의 대학에 가면 교수진에서 루오 이름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케냐 인류학의 기반을 닦은 인류학자도 해외에서 공부한 루오 사람이었다.
오바마의 아버지는 아마도 그런 지식인들 중의 하나였을 것 같다. 그는 케냐가 독립하던 시기 미국에서 공부한 경제학자였고 귀국 후에도 정부에서 경제관료로 일했다. 케냐 근대사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지도자였던 톰 음보야(Tom Mboya)와도 친분이 있었는데, 음보야가 나이로비 시내에서 의문의 암살을 당하기 직전에 길에서 마주쳐서 인사를 나눴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루오는 역사적으로 대권과 실세를 잡아온 키쿠유(Kikuyu 또는 Gikuyu) 공동체와 대립관계를 이어왔다. 그건 현재도 마찬가지인데, 2007년 말에 있었던 대선에서는 심각한 유혈 사태가 벌어지면서 그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기도 했다.
2010년, 처음으로 케냐에 갔을 때,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키쿠유 사람들이었다. 어쩌다 보니 나의 첫 친구는 가장 강력한 공동체인 키쿠유 출신이었고 덕분에 계속해서 그의 친구들을 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케냐 생활이 길어지면서 다양한 공동체 출신의 친구들이 생겼다. 지금은 내가 가장 귀하게 생각하는 케냐 친구인 오치엥 교수님도 그런 과정에서 만났다.
나는 오치엥 교수님을 통해 이전에는 잘 알지 못했던 루오 사람들의 문화와 역사를 배웠다. 독립과정에서 수적으로도 또 그 영향력으로도 키쿠유 사람들의 그늘에 가려졌던 루오의 지식인들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키쿠유 친구들이 지독하게 싫어하는 루오 출신의 지도자 라일라 오딩가(Raila Odinga: 자라모기의 아들)에 대해서도 참 다른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오바마의 가족은 루오 출신임에도 그는 키쿠유 사람들에게도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오바마는 루오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자랑스러운 아들이었지만, 키쿠유를 비롯한 다른 공동체 사람들에게는 자랑스러운 케냐의 아들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사람들은 종족의 경계를 넘어서 '오바마의 나라'에서 온 나에게 오바마가 정말 인기가 많은지, 재선은 가능할 것인지 등을 열심히 물어봤다.
그런데 여기서 더 흥미로운 점은 미국에서도 내가 '오바마의 나라'에 다녀온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었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오바마의 아버지의 나라에 다녀온 사람이었지만 말이다. 특히 보수적인 공화당 지지가 강한 애리조나에서 어처구니없는 가짜 뉴스를 접한 어르신들 중에는 오바마는 케냐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냐며 (미국에서는 본토에서 태어난 사람만 대통령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가짜 뉴스는 오바마에 대한 음해 같은 것이었다. 오바마는 하와이에서 태어났다.) 묻는 분들도 있었다. 그러니까 이 분들에게는 미국이 아니라 케냐가 '오바마의 나라'였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어쩌다 보니, 두 종류의 '오바마의 나라'를 겪었고, 어디에서나 오바마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