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군을 위한 수어 프로젝트 2

P군, N교수를 만나다

by 심한수

나는 어떻게든 P군에게 뭔가 얻어주고 미국을 떠나야 한다는 절박함에 열심히 인터넷을 검색했고, 수어 교육과 관련된 곳들을 몇 군데 찾아냈다. 그리고 최대한 공손하고 간략하게 상황설명을 하면서 이메일을 뿌려댔다. 과연 답장이 올까... 약간은 회의에 빠져서, 또 혹시 모른다는 희망을 품으면서 답장을 기다리는데, 아니 1시간도 되지 않아서 답장을 하나 받았다. 그리고 그 답장을 쓴 사람은 놀랍게도 내가 5년 동안이나 박사과정생으로 몸을 담은 학교에서 수어를 가르치는 N교수였다!


그 교수는 일단 P군의 상황에 대해 굉장히 자세하게 알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어쩌면 학문적인 호기심도 있었을 수도 있겠으나, 그가 P군을 돕겠다는 본질 자체는 분명했기에 나는 조만간 만나자는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J에게 이러저러한 상황으로 우리가 이런 사람을 알게 될 것 같고, P군도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J는 이런 결과에 무척 기뻐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에 이런 말을 했다.


"그런데 말이야. 네가 그렇게 메일 몇 통 뿌려서 이런 놀라운 결과가 돌아왔는데, 그동안 P에게 이 정도의 일도 해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너무 실망스러워."


나 역시 J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개인들에게 잘잘못을 따지기에는 또 시스템 자체에 과중한 업무가 있는 것도 분명했기에 아쉬움이 더 컸다. 난민들의 재정착을 위한 프로그램은 분명히 필요하지만, 세부적으로 고쳐야 할 부분들도 너무나 많았는데, 일하는 사람들의 업무가 과중하여 사례 하나하나 신경 써서 처리하기 어려운 것이 그중의 하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항목에 들어가기 어려운, 그러니까 단순노동이 가능하여 집세도 내고 독립할 수 있는 수준의 남성 난민이라는 항목에 들어가지 못하는 P군을 위한 조금은 '특별한' 대우는 찾을 수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우리는 운이 좋게도 N교수를 찾았고, P군과 함께 그를 만나는 자리를 만들었다. 농인 문화에 대해 전문성을 가진 N교수는 P에게 도움을 주고 수어를 가르칠 의욕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전문가였기 때문인지 J나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P군의 입장을 잘 정리해 주기도 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P군이 항상 웃고, 다른 사람들과도 잘 지낸다고 '믿지만,' 사실 P군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실제적인 언어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P군이 정말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청인들에 둘러싸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애써 그렇게 행동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난 솔직히 그의 견해를 들으면서 충격도 좀 받고, 반성도 많이 했다. 난 P군이 좋은 사람들의 돌봄을 받고 있고, 가족들에게도 사랑을 받고, J같은 선생님도 있기 때문에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는 P군이 20년 넘게 수어의 사용도 없이 견뎌온 그 시간의 무게를 과소평가했던 것이다.


N교수는 P군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소통해보려고 노력하고, 또 오랫동안 P군과 교감한 여동생의 통역(?)을 통해서 P군의 성장과정과 청력상실의 원인 등을 확인했다. 그리고 좀 더 면밀한 검사를 통해서 P군이 보청기를 사용하고, 또 수어를 배워서 가족 이외의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를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 J와 나는 정말 이 기적 같은 봉사자의 등장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N교수라는 존재는 앞으로 P군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선생이자 멘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기대감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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