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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한수 Mar 27. 2018

케냐로 갔던 이유 1

우리엄마는 내게 그 전집을 사준 것을 후회할지도 몰라

2010년 박사과정에 들어갔을 때, 나는 운이 좋아서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그것도 나보다 평가가 좋은 박사과정 신입생이 다른 학교를 선택하는 바람에 내 차례로 돌아왔기 때문에 운이 무진장 좋았다고 볼 수 있다. 생활비까지 나왔던 덕분에 유학생 치고는 잔고가 넉넉한 편이었다. 거기다가 다른 유학생과 방 두 개짜리 집을 나누어 쓰면서 집세도 절약했기에 첫 학기가 끝나니 어디 여행이라도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돈이 남아있었다.

한 달이 조금 넘는 미국 대학의 겨울방학 동안 나는 그 돈으로 뭘 해볼까 곰곰이 생각했다. 험난했던 석사과정을 마친 직후였기 때문에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던 시기였다. 그냥 저축을 할 수도 있었고, 아니면 휴식을 위해 유럽여행이라도 다녀올 수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탄자니아에 대한 생각이 났다.

'아 난 언제나 탄자니아에 가고 싶었는데!'

내가 국민학교 4학년 때, 집에서 받아보던 신문에 어떤 어린이용 전집 책 광고를 발견했다. 웅진출판사에서 나온 <세계의 어린이>라는 전집이었는데 난 그 광고를 보자마자 홀딱 반해서 그걸 사달라고 엄마한테 졸랐다. 나중에 알았지만 우리집은 경남에서 그 전집을 최초로 주문한 집이었다.

<세계의 어린이>는 어떻게 보면 어린이의 인류학과도 같은 책이었다. 미국에서부터 탄자니아까지 몇십 개국의 아이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1년을 어떻게 보내는지를 사진과 자료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재밌는 것은 작가가 그 나라의 특정 어린이의 가정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일상과 명절, 문화와 언어 등을 사진과 함께 아주 상세하게 기록했다는 점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시리즈는 일본의 한 출판사가 기획한 것이었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도 번역되어 출판된 인기 있는 전집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나라들은 일본, 프랑스, 영국, 스페인, 멕시코, 중국, 볼리비아, 팔레스타인, 소련(당시에는 소련이 있었다), 핀란드, 미얀마, 체코슬로바키아(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나눠지기 전이었다) 등인데, 뭐 사실 거의 모든 나라들의 이야기를 닳도록 읽었다. 지금도 그 주인공 아이들의 이름을 다 기억할 정도이다.

하지만 마음에 가장 남았던 두 나라는, 유일하게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였던, 동아프리카의 탄자니아와 서아프리카의 부르키니파소였다. 특히,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탄자니아 편은 그 친구의 얼굴까지 기억할 정도로 강렬했다. 다 쓰러져가던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집안일을 돕던 소년, 은두구(Ndugu; 나중에 스와힐리어를 배우면서 알았지만 그 뜻은 남동생이란 뜻이다). 우스꽝스러운 소리지만 난 그 은두구를 만나러 탄자니아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도 연구주제를 열심히 고민해야 했던 박사과정 첫 방학 때, 귀한 전재산을 투자해서 탄자니아로 가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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