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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한수 Mar 28. 2018

케냐로 갔던 이유 2

탄자니아로 가지 못했던 이유 (조 아저씨를 만나다)

탄자니아로 가겠다고 마음은 먹었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여기저기 검색을 했다. 돈이 너무 많이 드는 기회에는 참여할 여력이 없었는데 자비로 참가하는 봉사활동 프로그램들은 생각보다 비쌌다. 게다가 단체로 우르르 몰려가는 관광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아서 별로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조 아저씨의 사업 홈페이지를 발견했다. 케냐와 탄자니아에서 개인에 맞춘 봉사활동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이었다. 가격도 다른 프로그램들보다는 훨씬 저렴했다. 나중에도 아저씨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홈페이지가 너무 완벽하지 않고 친근한 듯 허술해 보이는 부분도 맘에 들었다. 이윤창출이 많아 보이는 다른 봉사단체와는 인상이 다르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그 홈페이지에 신청서를 접수했다. 탄자니아의 시골에 봉사를 희망한다고 썼다. 그런데 돌아온 답장에는 케냐 프로그램 밖에 자리가 없다고 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일단 케냐를 가자는 결심을 하고 답장을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웃기는 소리지만, 언어도 비슷하고 함께 동아프리카에서 이웃하는 케냐와 탄자니아니까 일단 케냐를 가보면 탄자니아에 갈 기회도 생기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케냐에 4번이나 다녀오는 동안 탄자니아에는 단 한 번도 가지 못했다. 결국 아직도 은두구의 나라에 가보지 못한 셈이다!).


그렇게 조 아저씨와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나는 전적으로 아저씨를 신뢰하며 케냐로 떠날 준비를 했다. 나름 거액(?)의 돈도 송금하고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도 다 물어봤다.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모르지만 나는 아저씨의 친절한 메일을 통해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나중에는 내가 참 운이 좋았구나, 인복이 있었구나 싶었지만).


학기가 끝나고 마지막 기말 과제를 제출한 나는 케냐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2010년 12월 13일,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땅을 밟았다 (다음에 쓸 기회가 있겠지만 이날은 케냐 역사에서 특별한 일이 있었던 날이라서 날짜도 기억한다). 조모 케냐타 국제공항(초대 대통령 Jomo Kenyatta의 이름을 딴 공항)의 입국장에는 어마 무시하게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외국인 방문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기가 영국을 거쳐서 왔기 때문에 동양인 승객은 나 밖에 없었던 탓인지 입국장에 들어서서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고 키가 크고 몸이 마른 한 신사가 내 이름이 적힌 종이를 흔들면서 먼저 손짓을 했다.


아저씨는 나와 악수를 하고, 대뜸 "타이, 그렇게 불러도 되지?"라고 했다. 그리고 내 대답도 제대로 듣지 않고 이후에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나를 그렇게 소개했다. 그때부터 2014년까지 나는 케냐에서 타이라고 불렸다. 8년이 넘는 미국 생활에서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발음하기 어려워해도 단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었던 나의 한국 이름이 왜 케냐에서는 그렇게 얼떨결에 변형되었는지 지금도 참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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