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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한수 Apr 04. 2018

케냐로 돌아갔던 이유 2

발바닥으로 기억하는 슬럼

그렇게 마타투를 타고 처음 갔던 곳이 키베라(Kibera 또는 Kibra)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또 유명한 슬럼(slum), 즉 빈민가 중의 하나이다. 지금 생각하면 조 아저씨도 참 보통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로비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에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곳을 먼저 보여주지 않고, 어쩌면 가장 치부라고 할 수 있는 그 거대한 키베라에 나를 데리고 갔으니.


사하라 이남의 빈민가에 처음 들어간 사람들은 누구나 시각적인 충격을 받을 수 있다. 너무나 지저분한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거기서 삶을 일구고 있다. 아이들은 맨발로 뛰어다니고, 구석구석에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에서 나는 냄새도 지독하다. 흔히 저소득 국가에서 '불쌍하다'라고 느끼면서 바라보는 그런 장면이다. 나 역시 그런 느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케냐에 오기 전에 "키베라 같은 곳에는 가지 말라..."라고 쓰여 있던 여행 안내문도 생각이 났는데, 대체 왜 나는 오자마자 몇 시간 만에 키베라에 들어와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이후로도 하지 말라고 쓰여있던 것들을 얼떨결에 많이 했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걷는 조 아저씨를 열심히 쫓아갔다. 길거리의 아이들이 "므중구 므중구"(mzungu, 백인 또는 외국인이라는 뜻의 스와힐리어 단어)를 외치며 맨발로 쫓아왔다. 너무나 불편했다. 그런 나를 보고 아저씨는, "나는 타이 네가 케냐의 모든 얼굴을 보고 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외국인들이 케냐에 와서 유럽인들이 즐기려고 만들어 둔 골프장이나 호텔, 쇼핑몰 그리고 사파리용 국립공원만 보러 가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었다.


아저씨의 말을 곱씹으며 한참을 걸었다. 키베라에서 빈민가라고만 부르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삶의 군상들을 지켜보며 내가 이곳의 무엇을 기억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문득 발바닥에 닿는 느낌에 주목했다. 울퉁불퉁하다가도 또 질퍽한 키베라의 길. 먼지와 오폐수, 그리고 쓰레기가 가난과 함께 축적되어 생긴 퇴적층을 밟는 감각이 내가 신고 있던 두꺼운 트래킹화의 밑창을 투과하여 느껴졌다.


나이로비에서의 첫날, 나는 마타투에 이어 또 다른 강렬한 끌림에 사로잡혔다. 나는 키베라로 대변되는 나이로비의 슬럼을 발바닥으로 기억했고, 그 기억을 더듬어서 다시 돌아가고, 또 돌아갔다. 그리고 비공식적으로는 200여 개에 가까운 나이로비의 크고 작은 슬럼들에 대한 이야기, 특히 그곳에서 걷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박사 논문의 또 다른 챕터에 고이 펼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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