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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한수 Apr 11. 2018

키베라 이야기 1

빈민가의 대명사, 그 역사의 시작

케냐에 대한 논문 중에서, 특히 나이로비와 관련된 연구 중에서 키베라(Kibera 또는 Kibra)를 다룬 논문이 다루지 않는 논문보다는 훨씬 많을 것 같다는 추측을 해본다. 세계에서 가장 큰 빈민가로도 꼽히는 키베라는 각종 다큐멘터리나 영화에도 많이 등장하고 (랄프 파인즈 주연의 <The Constant Gardener>에도 나온다), 신문기사나 유명 기자들의 르포에도 단골 소재로 꼽힌다. 그러니까, 사하라 이남의 빈민가 중에서도 어떤 대명사와도 같은 공간이 바로 키베라다.


하지만 키베라는 단순히 빈민가다, 슬럼이다, 라고 끝내기에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한 층위를 가진 공간이다. 일단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온갖 기발한 방식으로 팍팍한 삶을 극복하며(?) 살아가고, 범죄와 절망뿐 아니라 희망과 문화가 써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가끔 키베라에서 관찰하곤 했던 쓰레기와 먼지 및 오물이 가득한 퇴적층 하나하나가 깊고도 긴 사연을 기록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멀리서 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 양철과 판자 지붕으로 뒤덮인 키베라의 역사는 케냐 땅이 영국에 점령당했던 식민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 말 영국군에 편입된 누비안 (Nubian) 군대는 본래 이집트와 수단의 일부 지역 출신의 용맹한 전사들이었다. 이들은 고향을 떠나 케냐까지 와서 영국 정부에 의해 전쟁 용병으로 이용되었고, 케냐가 영국의 식민지로 자리를 잡으면서 나이로비 한 켠에 정착할 공간을 얻었다. 그 누비안 용병들의 후손이 지금도 키베라에 살고 있고 키베라라는 이름 역시 누비안 언어에서 '정글'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최근까지도 이 누비안들의 후손들은 케냐 정부로부터 시민권을 받지 못하는 국적 없는(stateless) 사람들로 살았다. 교육의 기회도 제대로 얻지 못했고,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지고 일할 수도 없는, 어떤 사회적 낙인을 달고 살아가야 했다. 케냐에서 몇 세대에 거쳐 나고 자란 사람들임에도 그들에 대한 차별과 멸시가 이어진 것이다.


지금은 거대해진 키베라에 누비안 정착민들만 사는 것은 아니다. 나이로비라는 도시가 급격히 성장하고 지방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으러 모여들었지만 그들이 지낼 수 있는 곳은 턱없이 부족했다. 식민지 시대의 도시 계획이 백인이 아닌 사람들을 위한 주거공간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덕분에 지방에서 상경한 다양한 공동체 출신의 사람들이 자신과 언어가 통하고 동향인 사람들을 찾아 키베라에 모여들었다. 그래서 지금도 어딘가에 가면 루오(Luo) 사람들이 주로 모여서 살고, 또 어딘가에 가면 루야(Luhya)나 키쿠유(Kikuyu), 또는 캄바(Kamba) 등의 사람들이 주로 모여서 살고 있다. 키베라 내부에서 문화적으로 다양한 이름을 가진 작은 단위의 거주지들이 생기게 된 유래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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