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Habari Kenya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한수 Apr 17. 2018

키베라 이야기 3

빈민가 세계의 계급

2014년 당시에만 해도 나이로비 전체에 크고 작은 슬럼이 200여 개는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건 공식적인 숫자는 아니었지만 빈민운동을 하던 현지 전문가들에게 들었기에 틀린 숫자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경제적으로 부유하다고 알려진 웨스트란즈(Westlands)에도 10군데가 넘는 큰 빈민가들이 있었고, 나는 그중에 절반 이상을 방문했다. 그래도 이 빈민가들은 이름이라도 지어질 정도로 알려진 곳들이었는데, 200이라는 숫자는 이름도 없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는 작은 빈민가들도 포함한 숫자였다.


여러 빈민가들을 들락거리면서 흥미로웠던 점 하나는 다른 슬럼에 사는 사람들이 키베라에 대해서 묘한 부러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어차피 빈민가가 다 거기서 거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키베라처럼 이름난 슬럼에서는 앞서 글에도 밝혔듯이 수많은 선교 및 구호 단체들이 관심을 가지고 사업을 진행한다. 똑같이 물과 전기가 없는 삶이라도 이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있고 없고는 큰 차이를 가진다.

도로공사 때문에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놓인 어떤 작은 빈민가의 지도자는 자신의 공동체가 닥친 상황을 키베라의 환경과 비교하기도 했다. 키베라 같이 공인된 슬럼과 자신의 동네는 처지가 극과 극이라며, 아무리 막강한 정부도 키베라는 함부로 손대지 못한다고 했다. 반면에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자신의 동네는 사라지건 말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말은 사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키베라는 일단 거대한 만큼 인적자원도 풍부했고, 정부가 함부로 철거를 시도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내부 공동체들이 견고한 사회조직을 구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좁은 땅의 인구밀도가 중요한(즉 득표수가 중요한) 정치인이 키베라의 뒤를 받치고 있기도 했다. 두 번이나 대선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이제는 세 번), 라일라 오딩가(Raila Odinga)는 키베라의 최대 다수인 루오 공동체의 지도자로서 그 빈민가를 '유지'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사람이었다.


이런 '강력한' 키베라의 계급적인 지위에 필적할 만한 또 다른 대형 빈민가는 도시의 동쪽 이스트란즈(Eastlands)에 있는 마다레(Mathare)다. 키베라만큼 거대하지만 루오 사람들보다는 그 경쟁 공동체인 키쿠유 사람들이 더 많이 살고, 마다레 강을 따라 역사적으로 형성된 빈민가다. 마다레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곳에서 나고 자란 운동가를 만나서 자세하게 배우게 되었는데, 이 또한 키베라라는 화두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었다.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던 그 청년은 키베라에 대해 묘한 경쟁심을 보여줬는데 키베라에서 있었던 사업이나 활동을 언급하면 꼭 마다레가 원래 먼저 했었다고 우겼다 (물론 그가 맞을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현장연구 내내 키베라의 유명세는 거부한 부분이 있다. 키베라보다는 좀 더 알려지지 않은 슬럼들과 그곳의 문제 및 위기들을 발굴(?)했고, 그것으로 주변 케냐 친구들을 놀라게 하며 나의 발품에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모든 빈민가들이 키베라라는 빈민가 사회 내의 어떤 최고봉과도 같은 존재에 대해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나도 이야기를 듣고 쓰다 보면 또 키베라에 대해 듣고 쓰고 있음을 발견했다. 내가 2010년 나이로비에 도착한 첫날, 쓰레기와 오물이 오랫동안 퇴적되어 울퉁불퉁한 지표면을 밟으면서 발바닥으로 기억했던 그 키베라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키베라 이야기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