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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한수 Apr 19. 2018

나이로비의 리듬  

Just Run

나이로비라는 도시의 움직임에 대해서 연구를 하겠다고 결정적으로 마음을 먹었던 이유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한 사람이 던진 말 때문이었다.


2012년 여름, 예비연구를 하러 여름방학 동안 나이로비를 방문하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나는 마타투에서 내려서 차들이 쏜살같이 다니고, 신호등도 없는 도심의 도로를 앞에 두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공사판의 자재들이 쌓여서 길목을 불편하게 하고 있었고, 그 때문인지 좁아진 공간에서도 차와 사람들이 신기할 정도로 사고가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끄는 손수레나 자전거들도 거침없이 갈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사실 거기서 길을 건너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나는 그런 길을 건너는 방법을 모르는 존재였다.


그때 건너편에서 내가 서있는 쪽으로 어떤 남자분이 아주 쉽게 길을 건너와서는 (그러니까 쏜살같이 달리는 차와 차들 사이의 어떤 모멘텀을 이용하여 길을 건너서는) 나를 흘끗 보더니 한마디를 던졌다.


"Just run (그냥 뛰어)."


나는 화들짝 놀라서 그에게 "뭐라고요?"라고 되묻고 싶었지만, 그는 자기 갈 길을 찾아서 사라져 버렸다. 그냥 뛰라니, 그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나보고 그냥 뛰었다가 다치기라도 하란 말인지, 뭘 어쩌란 말인지.


그리고 나는 한 달 동안 나이로비를 쏘다녔다. 이길 저길 안다녀 본 길이 없을 정도로 쏘다녔고, 나이로비 사람들과 얼추 비슷한 속력으로 원하는 목적지에 갈 수 있는 수준에도 이르렀던 것 같다. 나이로비의 도심을 걷는 것은 서울이나 애리조나에서 걷는 것과 질적으로 달랐다. 빨라야 했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느려야 했고, 도시의 속력이 예상 밖으로 빨라지거나 느려질 때 내가 적응하고 대응하는 요령도 알아야 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여기저기 잘도 뛰어다니고, 길도 잘 건너고, 차도 잘 피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내 몸은 어느 순간 그 도시의 움직임을 체득해버린 것이었다. 그러다가 내게 그냥 뛰라고 했던 그이가 생각났다. 어쩌면 그이는 내가 나이로비에서, 아니 나이로비의 움직임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리듬'을 알려줬던 것이다.


그렇게 그 낯선이와의 조우는 내 논문의 시작과 끝이 되었다. 나이로비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리듬으로 일상을 살게 되었는지. 한 도시의 움직임이 문화적으로 어떻게 특수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건 도시공간의 물리적/사회적 변화와 어떻게 닿아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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