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을 쳐다보면 빛나는 눈동자가 나를 응시한다. 노려보는 것도 훑어보는 것도 아닌, 그저 응시. 그것이 감시 같아 머리가 어지럽다. 어쩌면 투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머릿속 곳곳이 뒤집혀져 머리가 이렇게 아픈 것일지도 모른다. 그게 싫어 눈을 감았다가 떠 보아도 변하는 건 없다. 항상 지는 것은 내 쪽이다. 항복의 표시로 개들은 빙빙 돌다가 배를 보이며 눕는다. 나 또한 일어나 불을 끄고 눕는다. 꼭 그 꼴이다. 개라면 패배를 인정하고 기회를 엿보련만 나는 그 또한 아니다. 그저 따르지만 속으로만 불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게 싫어 돈을 모으면 박수칠 때 꺼지는 전등을 사리라 다짐했건만 나는 아직도 항복을 하고 있다. 몸에 밴 것일 수도 있다. 더는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수치심을 느꼈다면 진작에 죽었겠지.
수치스러움이란 거부되고, 조롱당하고, 노출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중받지 못한다는 고통스런 정서를 가리키는 것이다. 나는 일찍부터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아왔다. 가짜 나만이 수치스러움이란 단어를 배우지 못하고 살아갔다. 가짜의 나는 항상 사랑받았기에. 사랑 받는 것은 꽤나 쉬웠다. 공부만 잘하면 됐다. 무엇을 원하건, 상태가 어떻건,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석차 1등이 나였다. 내 이름 석자가 아닌, 석차 1등. 그게 가짜 나였다. 가짜의 나는 곧 잘 사라지려 했기에 아등바등 싸웠다. 그렇지 않으면 진짜의 내가 드러나고, 그건 곧 수치스러움의 시작이었으니까.
너는 원래 이런 애가 아니야.
그렇게 살 거면 지금부터 그냥 막 살아.
내겐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 가장 크게 상처를 줄 수 있었다. 가장 큰 수치심은 그곳에서 시작되었고 끝났다. 아니 끝나진 않았다. 그냥 자리 잡았다. 그 덕에 진짜 나는 갈 곳이 없어 도망갔고, 가짜 나는 잘 지켜졌다. 그렇게 의대생까지 되었다. 1등들이 오는 곳. 그곳에서의 석차는 그닥 중요하지 않았다. 가짜 나는 이미 자랑거리가 되어있었으니까. 그리고 이미 의사가 된 거나 다름 없었으니까. 사고는 예상치 못하게 벌어졌다. 가짜 내가 산산히 부숴졌다. 깨진 것을 붙이려고 해봐야 흉측하게 망가지기만 했다. 처음에 떨리던 것은 고작 손 끝이었는데, 이제는 온 몸이다. 온 몸이 흔들려 땅을 박살내는 기계가 되었다. 박살 난 땅 속으로 가족들은 사라졌다. 그렇게 가짜 나는 망가졌고, 진짜의 나만 남았다. 깨진 땅에 덩그러니.
동료들에게 진단을 받거나 할인을 받으면 싸고 쉽게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게 노출되고 싶지는 않다. 노출되어 오는 수치심은 또 새롭게 나를 찌를테니까. 가짜가 없는 나는 이미 충분히 노출되었고 충분히 수치스러웠더. 그들은 안타까워 이에 대한 말을 나누겠지만, 혹은 관심도 없겠지만, 나는 그러했다. 그 고집에 동네 병원을 전전해도 정신과를 다녀도 상담을 해도 나아지지 않았다. 하라는 건 다 하는데도 효과가 없었다. 약도 꼬박꼬박 먹었고 하루 40분 햇빛 보고 운동도 하고 규칙적으로 살았다. 수치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지만 오늘도 마주한 건 복종하는 나 뿐이다. 그것이 좌절감을 주고 다시 수치심을 준다. 무엇도 이겨내지 못하는 나. 그게 진짜 나라서.
너는 진짜 무슨 재미로 사냐?
재미로 사는 게 아니다. 가장 치열한 순간은 재미없다. 고통스럽다. 내 삶은 항상 치열했으므로 재미는 느낄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동기들의 질문에도 그저 멋쩍게 웃어보였다. 무슨 상관이냐 하고 싶어도, 가짜 나는, 미움받아서는 안되니까. 누구와도 적당히 지내야 적이 없고, 적이 없어야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었기에 그러했다. 그 덕에 재미 없는 나의 삶은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가 없다. 이제서야 재미를 찾자니 떨리는 몸은 제 멋대로 패악질이라 나갈 수가 없다. 그나마 현대인이라는 이름 하에 숨어 먹을 것이나 사 연명하는 삶이 또 부끄럽다. 배는 왜 고픈가. 책을 읽으면 부끄러워지는 순간에 스스로 목숨을 거둔 사람들이 많다. 나라를 잃고 자신의 배를 목을 가른 사람들, 전쟁 앞에서 씨앗을 지키기 위해 아사한 사람들, 그 외에도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나는 수치심이라고는 죽었는지 자꾸 배가 고프다.
나는 살아있다. 그게 문제다. 땅이 꺼지면서 목숨도 사라졌어야 하는데, 배가 고프다. 염치없게도 이런 사람임에도 배가 고프다. 나라에서는 돈을 더 이상 벌지 못하는 고립청년이라며 찾아와주었다. 그래서 쌀도 주고 뭣도 주는데 해 먹을 기력은 없어서 그냥 돈으로 즉석식품을 사먹는다. 빵, 김밥, 뭐 주로 이런 것들. 하루 한끼 감사하고 죄송하게. 가짜일 때는 그래도 나름 나눴는데. 이젠 받아먹는 처지에 가끔은 픽 웃음이 난다. 나는 어쩌면 이걸 위해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언젠간의 재난상황을 위해, 대비를 해 둔 것일지도.
빵을 먹다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했는데 내가 한 건 가짜 노력이었을까. 나는 행복하지 않았는데.
그러다 문득 손이 반짝여 눈을 올려보니 달빛이 있다. 해만큼 밝은 달. 어울리지 않는 그 모습이 기이하다. 모든 것을 밝히는 달이라. 이정도면 밤길을 걸어도 좋겠다. 옛 사람들이 밤길을 잘 걸었던 이유를 알겠다. 전에 달은 더 가까웠으니 더욱 밝았겠지. 점점 멀어지고 어두워졌을텐데도 빛나는 그 모습이 부러웠다. 사무치게 부러웠다. 어떻게 변하든 그것으로 존재하는 게 너무나도 부러웠다. 달은 모두가 어여뻐하는 존재이자, 낭만의 상징이 되니까. 큰 크리에이터에도 불구하고, 항상 뒷면은 검디 검게 물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달 앞에 서기로 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니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아서 마음이 흡족하다. 여기저기 몸은 여전히 뒤틀리고 꿈틀거리지만, 이 순간만큼은 신경쓰이지 않는다. 나는 자유로워질테니까. 얼마든지 가까이 갈테니까. 세상에는 반대되어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일이 참 많다. N극과 S극이라거나, 검은색과 하얀색이라거나. 보이기만 다르지 성질은 같다. 본질은 다르지 않다. 여기서 떨어져 땅에 가까워지는 것이 언뜻 보면 달과 멀어지는 것 같지만, 결국 달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인 것처럼. 몸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아, 그런데 어쩌면 나도 그렇지 않을까. 나와 달은 본질적으로 같지 않았을까. 태양이 되고자 해서 내가 달인 걸 모르지 않았을까. 멀어지는 달이 눈에 걸린다.
삐빅-
어렵사리 눈을 뜨니 기다란 형광등이 있다. 익숙한 기계음과 소독약냄새에도 무섭지 않다. 드디어 동그란 눈동자들에서 벗어났으니까. 나는 기다란 형광등 아래 있다. 나는 태양이 아니다.
흐-
실 없이 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