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살 것인가

정착지에 대한 30대의 고민

by 타닥

생애 주기에 따른 거주지의 변화

어렸을 때는 당연히 내가 살 곳은 스스로 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었을 땐 수능 성적에 맞춰 입학하게 된 학교 근처에 살게 됐고, 유럽으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도 나라는 내가 선택했지만 도시에 대한 선택권은 없었다. 해외 자매결연 학교가 있는 기차역에 도착해서야 그곳이 근처 대도시로 가려면 기차로 30분을 타고 가야 하는 조용한 소도시라는 걸 깨달았다.


취업준비생이 되어서 내가 살게 될 곳은 나를 합격시켜 주는 회사가 있는 지역이었다. 어디에서 살지에 대한 계획은 딱히 없었다. 대부분 산업단지 근처의 기숙사나 원룸에 살았다. 주변에 할 게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지만 크게 못 살 정도는 아니었다. 여기서 평생 살 것이 아니고, 곧 이곳을 떠나 더 좋은 곳으로 갈 거라는 마음이 컸다. 한편으론 어디에서 살고 싶은 지 고민하는 것 자체가 너무 비현실적이거나 사치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20대는 나를 불러주는 곳을 찾아 몇 번이고 이삿짐을 싸고 푸는 떠돌이의 삶을 살았다.

직장인이 되어서부터는 이사를 다니는 게 무언의 도전이었다.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부분 4개의 대박스로 이사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이사를 가려면 이삿짐센터를 불러야 할 정도로 살림살이가 늘어나버렸다. 늘어난 짐만큼 이사를 다니는 것 자체가 무거운 일이 되어버리다 보니 최소 4년 동안의 거주 안정성을 제공할 수 있는지가 집을 구할 때 최고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어떻게든 이사 횟수를 줄여보겠다는 간절함이 통했는지 정말로 4년 거주할 수 있는 집을 운 좋게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또다시 이사를 계획하고 있다. 결혼을 앞두고 '어디에서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이전까지 했던 고민과는 결이 좀 다른 느낌이다. 이제 이 질문이 단순한 거주를 넘어 삶의 정착까지 아우르는 포괄적 의미를 담게 됐다.



내가 살고 싶은 곳이란

지난날 이곳저곳 지역을 옮겨 다니며 살다 보니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라는 이상적인 거주지에 대한 기준들이 생겼다.


[나만의 이상적인 동네]

인구 밀도가 높은 서울보다는 경기도

집에서 공원까지 도보로 다닐 수 있을 것

도보로 15분 내 광역버스 정류장 갈 수 있을 것

도보로 15분 내 회사 갈 수 있는 정류장 있을 것

집 근처에 맛있는 빵집 있을 것

맛있는 반찬 가게는 필수 조건보다는 플러스 요인

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

집 근처 도서관이 있을 것

집 근처 도보로 헬스장/수영장 등 운동할 수 있는 인프라 있을 것 (진짜 운동하는 것과는 관계없음)


이렇게 고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빨간색 신분당선 라인 동네에 관심이 갔다. 신분당선 중 딱 어디!라고 집을 수는 없지만 그 근방의 동네는 위 조건을 만족하는 곳이 많아 보였다.

그런데 최근 정착지에 대한 고민을 완전히 흔들어놓는 일이 생겼다. 바로 회사의 지역이동이었다. 다니던 회사를 계속 다니려면 평생 살면서 가본 적도 잘 없는 서울 서쪽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그곳은 예비 배우자의 회사와도 정말 먼 곳이었다.


어쩔 수 없이 직장 때문에 연고도 없는 지역에서 살았던 과거를 돌아보면 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니다. 그때 당시 삶의 만족도가 현저히 낮았다. 회사 근처 기숙사에 살 때는 마치 감옥에 있는 느낌이 든 적도 있었다. 생계가 아니었다면 살지 않았을 곳이었다.


그래서 결심을 했다. 내가 삶고 싶은 동네에 살기 위해 회사를 옮기기로.

이전까지 항상 선택받는 입장에서 거주지를 정했다면 이제는 주체적으로 내가 살 곳을 정하기로 했다.

운이 좋게도 신분당선 라인에서 쉽게 출퇴근할 수 있는, 그리고 예비 배우자의 회사와도 그리 멀지 않은 회사로 이직이 결정되면서 그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됐다.


거주지를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한 번쯤은 직장의 위치가 내가 살 곳을 결정하지 않았으면 했다. 물론 회사를 옮기는 이 선택에 뒤따를 일들이 두렵기도 하지만, 이 또한 잘 견뎌내기를.

나중에 회사 생활로 인해 힘든 순간이 오면 다시 이 글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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