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완성되는 지중미술관

다카마쓰#9

by 설빛

지중미술관부터 가보기로 했다.

예약과 취소를 몇 번이고 반복한 덕분에

도착 시간에 맞게 입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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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들어가기 전 입구부터 남다른 분위기가 풍겨지는 곳

안도 타다오가 만든 건축물답게 아름다웠다.

나도 모르게 감탄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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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안은 어둑했다.

알고 보니 별도의 조명 없어서였다.

자연광이 드는 곳만 은은하게 빛났다.


처음 마주한 작품은 모네의 수련 연작.

들어가자마자 큼지막한 연못이 반겨주었다.


앞 옆 뒤 모두 수련이었다.

수련에 둘러싸여 정중앙에 앉아 감상하는 사람에게 시선이 갔다.

흉내 내 앉아봤지만 특별한 무언가를 발견하지 못했다.


더 가까이 관찰하기 위해 일어서서 작품에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느낌이 전혀 달랐다.

물감 뭉텅이가 투박하게 발라져 있을 뿐이었다.

연못이라는 제목이 없다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멀리 보기 위한 그림인 걸까.


묘한 시간의 흐름이 느껴졌다.

멋대로 작품의 이름을 붙여보기로 했다.

아침의 연못, 오전의 파릇한 연못,

햇빛이 강렬히 비추는 연못,

해가 지는 연못, 어둑해진 연못.


작품의 이름과 시기를 보니까 전혀 달랐다.

뭐 어때.

내가 느끼는 게 답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제임스터 렐의 작품들.

세 가지 작품이 있었는데

단연 기억에 남는 건 오픈 스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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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각 공간.

공간의 천장은 뻥 뚫려 있었다.

각 귀퉁이에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준비되어 있다.


예술작품은 일반적으로 액자에 걸려 있다.

오픈 스카이는 하늘 자체를 거대한 액자로 만든 것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작품이 바뀐다.


올려다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랬다.

자리를 이동해 보기로 했다.

아주 미세한 이동이었는데 하늘은 전혀 다르게 보였다.

진한 하늘이 조금 덜 진하게 보이고

작게나마 뭉쳐있는 구름이 보이기도 했다.


빛을 예술로 만드는 작가로 알고 있는데

빛보다는 자연 그 자체로 이미 예술이라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았다.


마지막 작품은 월터 드 마리아의 시간/영원/시간 없음.

커다란 구체와 금박 목제 조각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목제 조각은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이 섞여 있었다.

천장에서는 빛이 들어왔다.


시간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영원일까.

시간이 없는데 시간이 없기 위해서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카페를 발견해서 기웃거렸다.

탁 트인 풍경을 보며 식사할 수 있는 곳이었다.

다른 미술관을 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빠듯했지만

통창 바다뷰의 유혹에 못 이겨 자리에 앉았다.


알고 보니 메뉴가 빵밖에 없었다.

한국인은 밥심인데.

밥을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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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맛있어 보이는 토마토 스튜를 시켰는데 실패했다.

큼직한 붉은 콩이 잔뜩 들어가 있는 게 아닌가.

아무리 골라 먹으려고 애써도 입안에서 콩의 맛이 퍼져나갔다.

입이 짧아 가리는 게 많은 내겐 쉽지 않은 메뉴였다.


덕분에 식사를 빠르게 끝내고 다음 미술관으로 이동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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