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최민식을 만났다. 그는 여전히 "미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명량'(2014) '특별시민'(2017) 그리고 '침묵'(2017)까지. 배우 최민식(55)을 세 번 만났다.
'명량' 때, 그를 처음 만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화면에서 보는 것보다 친숙해보인다. 의외로 쑥쓰러움도 많구나.' 그리고 하나 더. '아,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 열기.' 일단 영화 이야기가 시작되면 그의 말과 행동에는 그 특유의 불같은 감정 같은 게 느껴졌다. 언젠가 박찬욱 감독이 최민식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뜨거운 연기를 가장 잘한다"고 말했던 게 생각났다.
그래서 그와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당시 기사에 이렇게 적었다.
배우 최민식(52)은 인터뷰를 하면서 담배 두 개피를 피웠다. 하지만 그가 실제로 담배 연기를 들이마신 건 세 차례 뿐이었다. 본격적인 대화가 이루어지자 그는 담배에 불을 붙였고, 영화와 연기에 대해 말 하느라 담배가 필터 가까이까지 타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이야기를 했다. 그는 담뱃재가 테이블 위에 떨어지자 그제서야 담배를 재떨이에 구겨 넣는 일을 두 차례 반복했다.
그는 인터뷰를 "감상문 혹은 반성문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혹은 동료들과 함께 한 작업을 천천히 곱씹어 보는 과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화 '명량'(감독 김한민)의 개봉을 앞둔 그의 "감상문 혹은 반성문"은 어딘가에 꼭꼭 숨겨둔 일기 같기도 하고, 하지 못한 넋두리처럼 들리기도 했고, 개운하지 못한 고해성사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최민식이 담배를 채 피우지도 못하고 꺼버린 건 자신이 연기하면서 느꼈던 감정을 조금이나마 풀어낼 수 있는 이 시간을 허투로 흘려보내지 않기 위함으로 보였다.
경험에 의하면, 좋은 배우는 좋은 인터뷰이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에게서는 한 시간이 채 안 되는 짧은 순간이라도 뭔가를 배울 수 있다. 최민식에게서 배운 건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향한 사랑 같은 것이다. 수많은 배우를 만나왔지만, 이런 느낌을 주는 배우나 감독은 극소수다. 꼭 배우가 아니더라도 자기 일을 이렇게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은 본 적이 나는 거의 없다. 나 뿐만 아니라 누구나 마찬가지일 게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잘 모르겠지만, 마음이 움직인다.
새 영화 '침묵' 때도 그랬다. 3년이 지났지만 그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뜨거웠고,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토해냈다. '명량' 인터뷰 때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나서 "내가 뭐라고 한 건지 모르겠네"라며 특유의 쑥쓰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만큼 정신없이 말했다는 의미다. '침묵'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도 그는 같은 말을 했다. 그는 또 정신 없이 영화와 연기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난 오늘 그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그가 했던 말 두 가지를 공유하고 싶어졌다. 정식 기사에는 온전히 풀어낼 수 없는 그의 날 것 그대로의 말이다. 뭔가 묵직하게 다가오고, 기억하고 싶은 말들이다. 다행스럽게도 난 워딩을 잘한다.
첫 번째,
"다른 게 하고 싶어요. 난 다른 거를 많이 하고 싶은데, 다른 게 그렇게 드물어요. 무슨 아프리카 사자가 먹이 찾듯이 맨날 배고파서 어디 먹을 거 없나 찾듯이. (배우가) 다른 감성, 다른 세상, 다른 인간을 찾아헤매는 건 당연한 일이죠.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변해야 한다, 외형적으로 어떤 변화를 줘야 한다는 강박이 아니에요. 굉장히 원론적인 욕구라는 거죠. 좀 더 인간을 보여주는, 영화적인, 장르적인 재미보다는…. 과거에 제가 했던 '파이란' 같이. 그런 좀 더 문학적인 냄새가 나는, 그런 사람들을 탐구해 들어가고 싶다는 거예요. 거기서 파생되는 여러가지 이야기들…."
최민식이 이렇게 말하자. 그럴수록 대중성과는 멀어지는 게 아니냐는 질문이 있었다. 그러자 최민식은
두 번째,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방금 말한 문학적인 작품들, 그런 걸 이야기할 때 소위 말해서 흥행에 대해 이야기하죠. 아 근데 잘 만들면 되는 것이지요. 물론 외형적인 조건도 있어요. 배급사가 어디냐, 배급 시점이 언제냐, 이런 걸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전 덩어리가 실하면 소비가 된다고 봐요. 이 확신은 예나 지금이나 전혀 변함이 없어요. 우리가 만들어내는 창작물이 얼만큼 실하고, 이게 진짜 알차냐 그렇지 않냐, 완성도가 있냐, 이게 진짜 중요한 문제이지….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느냐 이게 중요하지, 이거 찍으면 대박난대, 여기 출연하면 대박이래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요. 전 제가 가는 방향이 맞다고 예나 지금이나 결론내리고 있어요. 내가 신명나게 해야지…. 제가 어디선가 말한 적 있어요. 전 이기적인 작업을 하고 싶은 거라고요. 난 이렇게 만들었으니까, 와서 봐, 아니면 말든가, 이거라니까요. 이건 무책임과는 다른 거라고요. 어떤 투자자도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창작에 임하는 사람들이, 그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그 열의가, 정말 이 작품이 좋아서 미쳐서 하는 걸 원하지 않겠어요? 그게 기본이죠. 끌려야 하는 거죠. 그게 기본인 거죠."
느낌이 오지 않나. 읽기만 해도 느낌이 전해질 것이다. 내가 기자가 되기를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 그것도 우연찮게도 영화 담당 기자가 된 게 좋은 일이라는 순간이 바로 이런 사람을 만날 때다. 그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본다.
(글) 손정빈 뉴시스 영화담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