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정빈 Nov 03. 2017

당신이 몰랐던 빈센트 반 고흐

영화 '러빙 빈센트'

 이를 테면 이런 시도가 아닐까. 잉마르 베리만의 삶을 잉마르 베리만 스타일로 영화화하는 것이거나 히치콕이 걸어온 길을 히치콕의 방식으로 그려내는 것. 영화 '러빙 빈센트'(감독 도로타 코비엘라·휴 웰치먼)가 그렇다. 세계 최초 유화 애니메이션이라는 상업적 설명보다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빈센트 반 고흐의 방식으로 그려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짧은 시간 거대한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거짓말처럼 사그라진 어느 화가의 삶이 그가 보여줬던 거칠면서도 섬세한 붓터치로 되살아날 때 우리는 그 순간 무엇을 볼 수 있을까.


 1891년, 빈센트 반 고흐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흘렀다. 빈센트와 그의 동생 테오 반 고흐 사이에 오가던 편지를 배달하던 우체부 조셉 룰랭은 빈센트가 남긴 마지막 편지가 배달 불가로 반송되자 그의 아들 아르망을 시켜 테오에게 직접 전달케 한다. 하지만 테오도 이미 숨을 거둔 뒤다. 아르망은 테오를 만나러 간 곳에서 형제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고, 빈센트의 마지막 작업 장소이자 그가 숨을 거둔 곳인 오베르로 향한다. 아르망은 그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빈센트가 죽은 이유를 추적해 간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영화 '러빙 빈센트'는 꼭 봐야할 이유가 있는 작품이다. 기획부터 완성까지 10년이 걸렸다는 건 그리 특별하지도 않다. 유화 작업을 위해 4000명의 화가를 오디션해 107명을 선발, 이들이 2년 동안 6만2450점의 유화 그림을 직접 그려 완성한 게 바로 이 영화다. 고흐의 걸작 '별이 빛나는 밤' '즈아브 병사의 반신상' '아를의 노란 집'으로 이어지는 오프닝 시퀀스를 만드는 데만 1년이 걸렸고, 작품 내에는 고흐의 명화 130점이 다시 그려져 담겼다. 고흐를 향한 경외와 사랑, 정성이 가득 담긴 작품이기에 그의 그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관객이라면 러닝타임 95분은 내내 황홀할 수 있다.


 이런 시도는 관객이 고흐의 세계로 직행할 수 있게 한다. '러빙 빈센트'는 고흐의 생애 전체를 설명하는 데 큰 관심이 없다. 도로타 코비엘라·휴 웰치먼 감독은 그 어떤 설명도 그의 작품이 보여주고 있는 것 너머를 보여줄 수 없다고 믿는 듯하다. 간편하게 판단하기보다는 그저 고흐의 그림에 취해 따라가다가 관객 각자가 생각하는 고흐를 보게 되면 그만이다(영화가 가로 67㎝ 세로 49㎝ 캔버스와 같은 비율로 제작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메시지도, 결론도 중요하지 않다. 매순간 힘겨웠지만, 누구보다 뜨겁게 살다간 한 인간을 제목 그대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영화는 일종의 수사물이다. 자살하기 위해 총을 쐈다지만, 머리가 아닌 복부에 상처를 입은 게 의심스럽고, 더군다나 총도 발견되지 않았다. 아르망은 오베르에서 고흐를 만났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에 관한 정보를 수집해가며 진실에 접근해간다. 평범한 방식인데다가 정교한 구조를 갖췄다고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고흐에 관한 또 다른 시각의 정보를 차례로 제공하며 러닝타임 내내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연출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즐길 수 있다.


 중요한 건 역시 고흐의 죽음에 얽힌 사건의 실체가 아니라 고흐라는 사람의 실체다. '러빙 빈센트'의 고흐는 위대한 예술가도, 자신의 귀를 자른 광인(狂人)도, 정신병원을 들락거린 환자도 아니다. 그는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이 세계를 사랑했던 '사람'이다. 바로 그 시선이 "빈센트는 무너졌던 거야. 누구든 그럴 수 있다. 삶은 강한 사람도 무너뜨리곤 해"라고 말하는 조셉의 대사에, "빈센트는 캔버스마다 빛나는 별을 그렸어. 하지만 그 별들은 깊고 텅 빈 외로움에 둘러싸여 있었지. 그는 미래를 매우 두려워하고 있었어"라는 토로에 담겨있다.

 

 '고흐는 28살이 돼서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10년 간 작품 활동을 하고 37살에 세상을 떠났으며, 생전에 딱 한 점의 그림을 팔았다. 지독하게 가난했고, 늘 외로움에 몸부림쳤다.' 이게 우리가 흔히 아는 고흐의 삶이다. 하지만 화구상 탕기 영감은 이렇게 말한다. "난 생각했어. 그의 이야기가 행복하게 끝나겠구나. 마침내 별이 떠오르고, 그가 선택한 길이 맞았다고." 영화가 끝나고 나면 돈 맥클린이 고흐에게 바친 노래 '스태리 나이트'(Starry Night)가 흐른다.


(글) 손정빈 뉴시스 영화담당 기자


작가의 이전글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김주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