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휘트니'…신이 주지 않은 재능이 휘트니 휴스터을 죽였다
2001년 9월 휘트니 휴스턴이 처참한 몰골로 마이클 잭슨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 무대에 선 뒤 미디어는 그녀의 약물 중독을 갖은 방식으로 깎아내리고 희화화했다. 케빈 맥도널드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휘트니'(2018)에서 음반 제작자 L A 리드는 당시를 회상하며 탄식한다. "그게 재밌나요? 웃겨요? 이젠 휘트니 휴스턴이 농담거리라고요? 엿이나 처먹으라 그래요(Fuck you). 그는 가십란에 오르내리는 그저그런 스타가 아니에요. 지구상에 나타난 가장 위대한 가수라고요…." 이 장면은 몰락과 경멸, 완성과 찬미 속 휴스턴의 삶을 적절히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 거대한 성공을 이뤄냈지만 비참한 최후를 맞은 어느 가수가 있는데, 그게 바로 휘트니 휴스턴'이라고 요약하는 건 한 인간이 견뎌온 50년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일지도 모르기에 다소 경솔해 보인다. 올바르게 물어야 한다. 중요한 건 성패의 양상이 아니라 그 이유다. 휴스턴은 죽고 없으니 생전 그녀를 잘 알던 사람들에게 묻고 또 물을 수밖에. 맥도널드 감독은 이 작업을 정직하게 수행했고, 그 과정에서 유추해낸 결론들이 영화 <휘트니>에 담겼다. 이 작품의 화법은 다소 평범한데, 그건 휴스턴의 시간이 이미 너무 극적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휘트니>는 가족에게 '니피'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휘트니 휴스턴의 어린 시절을 짧게 언급한 뒤 곧바로 그녀가 '팝의 여왕'이 되는 순간으로 직행한다. 120분 러닝타임 중 그가 정점에 서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5분 남짓. 나머지 105분 간 휴스턴은 서서히 무너져내리다가 끝내 죽는다. 물론 이 구성은 맥도널드 감독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으로도 보인다. 실제 휴스턴의 삶은 폭발적인 상승 직후 서서히 공중분해 돼 갔으니까, 이 궤적이 영화의 방향을 애초에 결정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몰락은 휴스턴의 운명이었다.
신이 준 재능. 어린 니피가 우리가 아는 휘트니 휴스턴이 될 수 있었던 아주 간단하지만 명백한 이유다. 어머니 씨씨 휴스턴이 딸을 혹독하게 훈련시키기도 했으나 타고난 목소리와 성량, 빼어난 외모는 결코 '연습'이나 '노력' 같은 단어 안에 집어넣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신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녀에게 성공을 향한 집념도 함께 줬다. 휴스턴은 그렇게 시대의 아이콘이 됐고, 압도적인 부와 명예도 손에 넣었다. 그러면 신은 이 흑인 여성에게 모든 걸 다 줬다고 해야 하나. 그렇지 않다. 삶은 때로는 놀랍게도 공평해서 잔인할 정도인데, 휴스턴은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받지 못 했다.
이제 <휘트니>는 휘트니 휴스턴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곳에 올려놓은 뒤에 그 주변에서 하나 둘 터져나온 '나쁜 영향'들을 툭툭 던져놓는다. 아버지 존 휴스턴을 필두로 한 지인들의 기생과 난장과 배신, 휴스턴을 향한 남편 바비 브라운의 주체할 수 없는 질투, 딸 크리스티나에게 평범한 엄마가 돼줄 수 없는 부족한 모성애에 대한 자괴감, 성공에 필연적으로 달라붙는 미디어의 쉼 없는 압박, 그리고 도저히 지울 수 없는 어린 시절의 불행…. 그러니까 서서히 인생이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을 때 휘트니 휴스턴이 신에게 받은 재능은 쓸모가 없었다는 것이다.
관객이 <휘트니>를 보며 수차례 장탄식 하는 건 신이 그녀에게 그 무수한 축복을 내린 게 마치 그만큼 더 무지막지하게 바닥으로 끌어내리기 위한 게 아닌지 짐작하게 되는 순간들 때문이다. 말하자면 휘트니 휴스턴에게는 삶의 고통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이 없었다. 왜 견디지 못 했냐고 비난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견디지만 다른 누군가는 견디지 못 한다. 휴스턴이 날 때부터 스타가 될 운명이었다면 그 나약함 또한 휴스턴에게 주어진 것일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 믿기 힘든 목소리에 전율하다가도 자주 가슴 아프다.
2012년 2월11일, 휴스턴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비벌리 힐튼 호텔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 간 건 마약이었다. 다짐하고 노력했지만, 휴스터은 결국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다만 그건 의학적 소견일 뿐 마약은 오히려 그녀의 유일한 도피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게 아니었다면 휴스턴은 더 빨리 생을 포기해버렸을지도 모르니까. 휴스턴이 유일무이한 가수였던 것처럼 그녀를 짓누른 고통과 외로움 또한 누구 하나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약물 중독에 의한 죽음을 '네가 자초한 일'이라고 책망하는 건 부당하다.
이제 <휘트니>에서 휴스턴의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 더 정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에 관해 말해 봐야 한다. 휴스턴의 가까운 지인이자 제작사 직원이었던 데브라 마틴 체이스는 말한다. "마이클 잭슨이 가끔 전화를 하면 그녀는 잭슨이 있는 호텔 방에 가서 앉아 있다가 왔어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냥 서로 이해하는 거죠. 두 사람은 이 세상에서 서로의 상황을 이해해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니까요. 그저 가까이 있는 걸로 충분했던 거죠."
(글=손정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