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드 필립스 감독은 '조커'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나.
나홍진 감독이 '곡성'을 내놨을 때 이 작품을 둘러싼 갖가지 이야기 중 관객이 가장 관심을 보인 건 해석이었다. 이 영화에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고, 이들과 관계된 각종 사건이 연달아 벌어진다. '진단 되지 않는 이상 행동을 하는 딸을 구하려는 아버지의 이야기'로 간단히 정리하기엔 이 서사의 주변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인간과 해석되지 않는 사건이 너무 많았다. 사람들은 명쾌함을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인물은 선(善)이고 저 인물은 악(惡)이다. 혹은 이 사건과 저 사건의 연결고리는 이것이다 같은 '곡성 완전 분석·해석' 영상이 한동안 인기였다. 흥미로운 건 '곡성'이 불가해한 세계와 그런 세계를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 내지른 비명에 관한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나 감독의 의도와 반대로 사람들은 기어코 이 영화를 해석해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이 고담시의 상징이 돼야 할 인물로 검사 하비 덴트를 내세운 이유는 그가 법의 수호자이기 때문이다. 조커는 고담을 무질서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극중 한 인물은 조커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가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몰라요. 뭘 할지도 모르죠. 그에겐 기준이 없어요." 조커가 원하는 무질서는 세상을 해석할 수 없는 혼돈 속에 두는 것이다. 그래서 배트맨은 덴트를 원했다. 배트맨 자신 또한 사회 시스템 외부에 존재하기에 법이라는 명확한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검사 덴트가 코스모스(cosmos)의 상징이 돼 조커의 카오스(chaos)에 맞서기를 원했다. 불확실성이라는 근원적 공포를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 해도 사람들이 딛고 살아갈 최소한의 기반(법의 정의)이 필요하다는 게 배트맨의 신념이었다.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는 아서 플렉이라는 남자가 악당 조커로 다시 태어나던 특정 시기를 조명한다. 이 영화가 공개된 후 일부 관객은 조커의 기원에 관해 논쟁했다. 먼저 계급론적 관점. 소외 계층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이 조커라는 괴물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정신분석학적 관점. 어린 시절 극도의 학대와 방치를 경험하면서 플렉의 정신 세계는 망가졌고, 시간이 흐른 뒤에 그 분노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로 이어갔다는 접근이다. 세 번째는 혁명론적 관점. 세상을 뒤집어 엎으려는 세력이 플렉을 그들의 영웅으로 추대했다는 시각이다. 플렉이 저지른 살인은 그저 충동적인 행동일 뿐이었는데, 일부 집단이 이 사건에 '타도 자본' 프레임을 씌우고 그들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상징적 인물로 플렉을 내세웠다는 것이다.
문제는 세 가지 해석 모두 근거를 갖고 있으나 플렉이 조커가 된 이유를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 한다는 점이다. 그럼 이제 이런 주장이 나올 차례다. 위 세 개 해석이 언급하는 일련의 사건이 플렉과 그의 주변에서 얽히고 설키는 와중에 특정 순간에 화학 결합 해 폭발했고, 조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이 모든 게 전부 플렉이 조커가 된 이유라고 말하는 건 반대로 말하자면 플렉과 조커 사이의 인과를 여전히 알지 못 한다고 고백하는 것과 같다. 중요한 건 논쟁 그 자체로 보인다. '조커'의 각본은 코믹스 원작을 각색한 게 아니라 필립스 감독이 직접 쓴 오리지널이다. 기존 배트맨 시리즈엔 존재하지 않던 이야기다. 그러니까 필립스 감독은 의도적으로 관객이 플렉과 조커를 해석해 들어가게끔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조커'의 조커는 '다크 나이트'의 조커와 상통한다. 코미디언을 꿈꾸는 플렉은 자신에게 '농담을 하는 사람'(Joker)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말하자면 그가 하는 농담이 곧 플렉 자신이다. 그의 농담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혼란스럽고 어이없고 불쾌하다('다크 나이트'의 조커는 사람들에게 Why so serious? 라고 물었다). 그런 농담을 잠깐 듣는 건 참을 수 있어도 그런 논리적이지 않은 무언가가 삶에 침투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플렉의 웃음 자체를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 한다). 경찰에 붙들려 압송되는 플렉을 시위대가 빼내는 장면은 어떠한가. 플렉은 공권력(질서)에서 빠져나와 폭도(무질서)들의 정점에 선다. 같은 시간, 고담에 질서를 세우겠다고 선언했던 토마스 웨인은 무질서(폭도)에 의해 살해당한다. 두 조커의 공통 키워드는 혼란·혼돈이다.
이제부터는 가정이다. 필립스 감독은 2008년에 '다크 나이트'를 봤고, 대부분 관객이 그랬던 것처럼 배트맨이 아닌 조커에게 매혹됐다. 문제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조커를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영화에는 조커에 관한 파편적인 정보는 있으나 그를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전사(前史) 같은 건 없다. 카오스에는 이유가 없으니 조커를 설명하는 것 또한 무의미하다는 뜻일 게다. 그러나 필립스 감독은 놀런 감독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고, 조커의 행동들을 정당화하지는 못 해도 그의 기행을 설명해줄지도 모르는 최소한의 방어선이 존재할 거라는 믿음으로 어떤 작업에 들어갔는데 그게 바로 '조커'다. 마치 나홍진 감독이 창조한 불가해한 세계를 어떻게든 이해 가능한 세계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써 분석하던 그때 그 관객들처럼 말이다.
그러면 '조커'는 플렉과 조커에 관한 '완벽 분석 영상'인가. 그렇지 않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필립스 감독은 명확한 결론을 내놓지 않고, 계급과 정신분석학과 혁명론에 기반한 가능성을 이야기할 뿐이다. 이 작품의 각본이 다소 엉성하다는 지적이 있다. 플렉이 조커로 가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다는 게 요점이다. 이런 비판은 무의미해보인다. 불균질한 존재를 이해해보려는 탐구 과정에서 나온 영화가 균질할리 없으니까 말이다. 필립스 감독의 작업은 결국 조커를 이해해볼 여지가 있는 최소한의 영역 내로 끌어들이는 일이었다. 겨우 영화 속 캐릭터에 관한 것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이렇게 답해야 한다. 불확실한 것이라면 아주 작은 것도 견디지 못 하는 게 우리라고. 그래서 조커는 악당일 수밖에 없고, 이에 맞서는 배트맨은 영웅인 거라고.
(글) 손정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