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흉터 속에도 빛이 날거야

영화 '벌새'의 은희는 불쌍하지 않다

by 손정빈

영지 선생님(김새벽)이 칠판에 무언가 쓴다. '相識滿天下 知心能幾人' 그녀가 읽어보라고 하자 은희(박지후)는 떠듬떠듬 읽기 시작한다. "상 어쩌고 천하 지심 어쩌고 인이요." 은희는 아직 이 글자를 알지 못 한다. 읽지도 못하는데 뜻을 알리 없다. 영지 선생님은 은희 대신 읽어준다.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 얼굴을 아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 열다섯살 중학생 은희는 "400명 정도 아는 것 같다"고 천진난만 하게 말한다. 하지만 이 소녀는 이어지는 영지 선생님의 질문에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다. "그럼 그 중에 속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 것 같아요?"


담임 교사는 아이들에게 쪽지를 주며 '날라리'를 두 명씩 적어서 제출하라고 한다. "담배 피우는 것들, 공부 안 하고 연애 하는 것들, 노래방 가는 것들, 다 날라리다." 그리고나서 그는 아이들에게 복명복창하게 한다. "나는, 노래방 대신, 서울대 간다!" 은희는 하기 싫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구호를 따라한다. 방과 후 만난 단짝 친구에게 은희는 소리치듯 외친다. "걔만 이상한 거 아니야. 다 지랄 같아!" 또 한 번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이다. 은희 눈에는 세상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곳은 알 수 없는 것 투성이고, 이해가 안 돼서 지랄같고 고달프다. 은희는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을 읽을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알지 못한다.

영화 '벌새'는 열리지 않는 문에서 시작한다. 집에 도착한 은희는 벨을 누르는데, 엄마는 문을 열지 않는다. 소녀는 문고리를 잡고 흔들며 문을 열어달라고 소리친다. 그래도 열리지 않는다. 알고 보니 902호. 은희의 집은 1002호다. 은희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 중요한 건 문을 잘못 찾았다는 게 아니라 열리지 않는 문과 열리는 문이 있다는 것, 그리고 문 앞에서 보인 이 아이의 태도다. 왜 열지 않느냐고, 왜 열리지 않는 거냐고, 닫힌 문 앞에서 소녀는 답답함을 참지 못해 울기 직전이 된 것처럼 보인다. 반대로 너무 쉽게 열린 문 앞에서 은희는 방금 전의 짜증을 다 잊은 듯하다. 은희가 마주한 세상의 일부는 마치 열리지 않는 문(902호)처럼 차갑게 막막하고, 세상의 또 어떤 부분은 엄마가 열어준 문(1002호)처럼 따뜻하게 편안하다.


이 현실을 도무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열다섯살 소녀가 마주한 1994년은 하나 하나가 상처다. 함께 장사를 하는 엄마와 아빠는 바빠서 무관심하다. 아빠는 권위적이고 때로 폭력적이며, 엄마는 삶에 찌들어 무기력하다. 부모는 싸우고, 언니는 밖으로만 나돌고, 오빠는 종종 폭력을 쓴다. 남자친구는 찌질하고, 단짝 친구는 배신한다. '엑스 동생'을 자처하며 따르던 후배는 갑자기 돌변해 이제 아는 체도 않는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잘 노는 것도 아니며, 친구가 많지도 않다. 이게 다 뭐란 말인가. 이렇게 "다 지랄 같아"도 이건 모두 은희에게 벌어진 일이니 감당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래서 소녀는 매번 상처투성이다.

은희의 귀와 턱 사이에 생긴 혹은 이 아이가 세상과 대면하면서 필연적으로 얻어야 하는 아픔 같은 것이다. 의사는 혹 제거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확률이 매우 낮다는 걸 전제로 수술이 잘못 됐을 경우 신경 손상에 의한 안면 마비가 오거나 수술 부위에 부종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확실한 건 이것이다. 흉터가 남는다는 것. 혹은 제거할 수 있고 상처도 아물겠지만, 흉터는 남는다. 아빠가 뜬금 없이 울음을 터뜨린 건 딸을 챙기지 못한 미안함 때문인가. 아빠도 그 혹과 남게 될 흉터의 상징을 눈치챈 게 아닌가. 은희가 수술 뒤 혹이 어디로 갔냐고 묻자 간호사는 버렸다고 답한다. 혹은 버려졌지만, 흉터는 은희에게 왔다.


은희를 난도질하는 건 1990년대라는 시대다. 그땐 무섭게 성장했고, 성장을 위해선 못 할 게 없는 시대였다(은희 부모는 회사원이 아니라 자영업자다). 강남이라는 지역이 그 정체성을 드러내던 시기였다(은희네 가족은 대치동 아파트로 이사왔다). 좋은 대학에 가는 게 모든 학생의 똑같은 목표여야만 하던 때였다(은희 오빠는 서울대의 기운을 받기 위해 캠퍼스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 받고 부당함마저 견뎌야 하는 시대였다(은희는 아빠에게 오빠가 때렸다고 말하지만 엄마는 싸우지 좀 말라고 말한다. 엄마는 아빠와 똑같이 일하지만, 네가 애들을 잘못 키워서 그렇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

그 시절의 욕망은 돌고 돌아 은희 가슴에 하나씩 꽂힌다. 아빠는 돈을 벌면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상스러운 욕설과 함께 가족 앞에서 풀어대고, 어린 시절 오빠 학비를 벌기 위해 고등학교 밖에 못 나왔다는 엄마는 이제는 일과 아이들 뒷바라지 둘 다 하느라 항상 피곤하고 지쳐있다. 공부를 곧잘 하는 오빠는 서울대라는 압박에 시달리고, 공부를 못하는 언니는 공부를 못 할 뿐인데 "난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자책해야 한다. 남자친구가 은희와 진득하게 교재하지 못하는 건 아버지가 의사인 것과 무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단짝 친구의 배신은 그 아이 또한 은희처럼 오빠에게 자주 폭행당한 경험 탓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은희에게 중요한 건 상처의 정황이 아니라 고통 그것 자체다. 갖가지 형태로 변형된 시대의 문제가 나를 짓누르고 있다는 걸 이제 열다섯 해를 살아낸 소녀가 이해할리 없지 않은가. 은희는 매일같이 가슴을 아프게 찌르는 이 고통의 경로를 알지 못 한다. 그래서 은희는 발악한다. 방과 후 아무도 없는 집에서 이 아이는 소리 내지 않고 집이 무너져라 발을 구르고 뛴다. 소녀는 윤복희의 '여러분'이 원곡과 분위기가 전혀 다른 뽕짝 리듬에 섞인 기괴한 음악을 틀어놨다. 이건 아빠가 듣던 노래다. 은희에게 이 세상은 이렇게 말도 안 되게 지랄 같은 리믹스인 것일까.

그 해 무너져내린 성수대교는 은희에게 밀어닥친 아픔의 총합 같을 것인지도 모른다. 한강이 상징하던 성장의 기적, 그 기적의 증거처럼 쌓이던 돈, 앞으로 내달리기 위해 희생된 모든 것, 또 한 번 덩치를 키우기 위해 필요했던 학벌, 그리고 그 강이 만들어놓은 강북과 강남. 이것들이 만들어낸 파장은 아빠와 엄마와 오빠와 언니, 친구와 남자친구와 후배와 담임 교사 등을 거쳐 은희에게 도착했다. 이 고통은 은희 것이기도 하고, 은희에게 가기 전에 그것을 맞닥뜨려야 했던 모든 사람의 것이기도 하다. 할퀴어진 그 모든 마음이 곧 붕괴된 한강 다리다. 다리는 다시 이어져도, 혹이 없어진 자리에 흉터가 남았듯 그 시절의 상흔은 남을 것이다.


상처와 흉터의 세상에서 영지 선생님만이 요동치는 은희의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건 그녀가 은희에게 자기가 겪은 아픔을 내려보내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영지 또한 그때 그 시대가 좌절시킨 사람 중 하나다. 오래 휴학 중인 대학생인 그녀는 성장의 시대에 맞서 노동 운동에 투신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그녀는 그 일에 대체로 실패했으며, 한문 학원 교사라는 자리는 일종의 도피처로 보인다. 서울대학교 출신이라는 학벌은 있으나 영지 또한 남성이 아닌 여성이다. 영지의 텅빈 듯한 표정과 담배를 피우는 쓸쓸한 뒷모습은 그녀가 느끼는 현실의 고통을 어느 정도 짐작케 하는데, 그녀는 다른 이들처럼 자신의 좌절을 은희에게 전가하는 대신 그 쓰라린 경험으로 은희와 마음을 나누고 은희를 감싸안는다.

오빠가 때릴 땐 그저 폭행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는 은희에게 영지는 "너 이제 맞지마. 누구라도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워. 절대로 가만히 있지마"라고 말한다. 이 말 한 마디로 은희는 당하기만 하지 않고 맞부딪히는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재개발과 생존 투쟁을 이해하지 못 하는 은희에게 영지는 말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지?" 은희가 "불쌍하다"고 하자 영지가 다시 말한다. "그래도 불쌍하다고 생각하지마. 함부러 동정할 순 없어. 알 수 없잖아." 이 말 한 마디로 은희는 쉽게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영지 선생님은 무너진 성수대교와 함께 수장(水葬)됐다. 마치 이런 어른은 없다는 듯이, 이런 성숙한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는 듯이, 은희가 영원히 기댈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듯이. 한문 학원 원장은 영지를 이렇게 평가했었다. "그 선생님 좀 이상하잖아." 영지는 세상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도망친 사람이 아니다. 다음 세대를 책임지기 힘겨워서 스스로 그들의 삶에서 퇴장해버리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저 한강 다리와 함께 사라져 좋은 인간의 표상으로 남았다. 은희는 기어코 무너진 성수대교를 두 눈으로 확인하러 간다. 영지가 말했던 것처럼 그 모든 상처와 흉터를 외면하지 않고 마주해야 하기 위해서.

그러면 이제 은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대개의 삶이 그렇듯 소녀의 일상은 특별히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상처 받고 흉터를 갖고 살아갈 것이다. 점점 더 큰 세상을 알게 될 테지만 속을 알 수 있는 건 여전히 많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답답해 미쳐버릴 것 같을 때, 따뜻한 우롱차를 내어주던 영지 선생님도 이젠 없다. 다만 영지 선생님이 세상에서 없어지기 직전에 은희에게 남긴 편지가 있다. 그녀는 이렇게 적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많은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린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은희가 지금껏 느낀 그리고 앞으로 감당해야 할 아픔에 비하면 이건 너무 급작스러운 긍정이 아닌가, 내내 고민하다가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지 선생님의 말처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으나 많은 나쁜 일들 속에 기쁜 일이 분명 존재했기 때문이다. 은희는 세상 모든 게 다 슬퍼서 발버둥 치는 와중에도 종종 기뻐서 웃고 있었다. 수술 덕에 쏟아진 가족의 관심이 좋았고, 남자친구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는 것도 즐거웠다. 단짝 친구와는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며 서로 위로했고, 내가 좋다는 후배 덕분에 뭐라도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입원했을 때 만난 아주머니들은 모두 친절하고 따뜻했으며, 단골 병원 의사 선생님은 은근히 내 편이 돼줬다. 그리고 영지 선생님과 함께 있을 때 행복했다.


'벌새'는 소풍 가는 버스에 타기 직전 운동장에 모인 은희네 반 아이들을 비추면서 끝난다. 소녀들은 들뜬 마음으로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다. 은희는 이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들의 얼굴은 화사하다. 은희의 삶만 고단한 게 아니고 이 아이들의 삶 하나 하나가 모두 힘겨울 것이다. 다만 어둠만 있을 것 같아도 삶은 종종 찬란하게 빛난다. 바로 지금처럼. 은희는 영지 선생님에게 쓴 편지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선생님,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 영지 선생님은 이렇게 답하지 않을까. "너는 이미 빛나고 있단다."


(글) 손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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