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페미니즘 영화로 봐야 하는 이유
한 여인이 광야에 홀로 섰다. 밤은 깊고 어둡다. 달빛이 흐리진 않지만 구름이 많아서 그 빛이 여인에게 닿지 않는다. 여인이 입은 짙은 색 옷은 그녀의 존재를 흐린다. 그런데, 치마가 붙타고 있다. 치마 끝단에 붙은 작은 불이지만, 분명 타오르고 있다. 여인은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상관 없다는 듯이 아니면 애초에 원했던 일이었다는 듯이. 이건 그림이다. 이걸 그린 여인은 작품 제목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라고 말한다. '치마가 타고 있는 여인'이 있다는 건 알겠다. 그런데 '초상'은 어디갔나. 그렇게 이름 붙여진 그림엔 흔히 누군가의 얼굴이 담긴다. 이 그림엔 여인의 작은 뒷모습 밖에 없다. 게다가 치마에 붙은 저 불은 뭔가.
의미를 알기 어려운 그림과 그 그림을 그렸다는 여자. 셀린 시아마의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이렇게 시작한다. 효율적이고 명쾌한 오프닝 덕분에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들은 꽤나 선명하다. 우선 그림 속 여인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 그림을 그렸다는 여자는 또 누구이고, 둘은 어떤 관계인지도 궁금하다. 그림을 그린 여자가 그림 속 여자를 언제 어떻게 봤는지도 알아야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 몇 가지. 치마엔 왜 불이 붙어 있는가. 여인의 뒷모습이 담긴 그림에 '초상'이라는 말을 붙인 이유는 무엇인가. 왜 그렸는가. 이 질문에 모두 답하고 나면 영화는 아마 끝나 있을 것이다.
18세기 후반 프랑스, 그림을 그린 여자는 여성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메를랑), 그림 속 여인은 귀족 여인 엘로이즈(아델 하에넬)다. 엘로이즈는 결혼을 강제당하고 있다. 당시엔 집안끼리 혼사를 정하고, 여자 쪽 가문에서 남자 쪽 가문으로 예비 신부의 초상화를 보내는 게 혼인 절차의 시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엘로이즈는 모델이 되기를 거부하고 있다.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 그림은 완성될 수 없고, 그림을 보내지 못하니 혼인 작업은 착수되지 않는다. 그래서 여성 화가 마리안느를 불렀다. 엿새 간 산책 친구가 돼서 엘로이즈의 얼굴을 훔쳐보고 몰래 초상화를 완성하라는 것. 그렇게 마리안느는 외딴 섬에 있는 엘로이즈 집으로 간다.
고립돼있는데다가 불행하기까지 한 인간과 그의 일상을 뒤흔들어놓을 외부인의 등장. 이 전형적인 설정을 풀어가는 방식은 다양할텐데, 이 영화는 그중 사랑의 길을 택한다. 그러니까 엘로이즈와 마리안느가 연인이 되고 마는 바로 그 이야기 말이다. 두 사람은 아마 상대를 알게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하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면 마치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숙희'처럼 마리안느가 엘로이즈를 결국엔 구원했다는 건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첫 장면에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바라보는 마리안느의 얼굴은 어딘가 슬퍼보였다. 그들이 사는 시대를 생각해 봐도 이 사랑이 가능할리 없다.
어쨌든 아까 던졌던 질문 대부분의 답은 나왔다. 그러면 실패하고만 슬픈 사랑에 관한 영화였다고, 적당히 정리하면 되는 걸까. 아직이다. 가장 중요하다고 했던 세 가지 물음에 관한 답은 정작 나오지 않았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시대가 좌절시킨 절절한 사랑에 관한 영화 정도로 남겠지만, 이 질문에 관해 답할 수 있다면 멜로 이상의 무언가로 도약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질문에 반드시 답해야 한다는 게 감독 셀린 시아마의 요청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응답하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 영화가 노골적으로 인용하는 그리스 신화 속 음유시인, 리라의 명수 오르페우스에 관한 것이다.
오르페우스는 숲의 요정 에우리디케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두 사람은 서로 극진히 아꼈으나 에우리디케가 뱀에 물려 죽으면서 이 사랑은 비극이 됐다. 에우리디케를 이대로 보낼 수 없던 오르페우스는 저승으로 가 음악과 시로 그곳의 왕 하데스를 기어코 설득해 에우리디케를 살려내는 데 성공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붙는다. 뒤따르는 에우리디케를 이승에 도착할 때까지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러나 오르페우스는 긴 여정의 끝에서, 이승의 빛이 보일 정도로 목적지에 가까이 온 그 때, 참지 못하고 사랑하는 그녀를 돌아봤다. 그 순간 에우리디케는 저승의 깊은 어둠 속으로 다시 떨어졌다.
영화 중반부, 엘로이즈와 마리안느 그리고 하녀 소피가 둘러 앉아 이 신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엘로이즈가 읽고, 마리안느와 소피가 듣는다. 여기까지만 보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오르페우스 신화의 변용으로 보인다. 결혼을 강요받는 엘로이즈는 사실상 죽어있는 인간이다. 엘로이즈 이전에 똑같이 결혼을 강제당했던 언니는 그게 싫어 자살했고, 그녀는 언니의 운명을 물려받았다. 저승이나 다름 없는 섬에 갇힌 엘로이즈에게 가 그녀와 사랑에 빠진 마리안느는 오르페우스에 가깝지 않은가. 첫 장면에서 마리안느가 그렇게 슬퍼보였던 것도 그녀 역시 오르페우스처럼 엘로이즈를 구해오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만 이 영화가 오르페우스 신화의 단순 변용이 아니라는 건 금새 알 수 있다. 세 여인이 오르페우스 신화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어서다. 이들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에 관한 각자의 해석과 주장을 내놓는다. 먼저 소피. "남자는 왜 돌아봤대요? 돌아보면 안 된다는 걸 알았잖아요. 하지 말라고 했는데!" 마리안느는 오르페우스의 행동을 또 다른 선택으로 본다. "그는 그녀와의 추억을 선택한 거예요. 그래서 뒤돌아본 거죠. 연인이 아닌 시인의 선택을 한 거예요." 이번엔 엘로이즈 차례. 그녀의 시각은 정반대다. 오르페우스가 뒤돌아 본 건 에우리디케의 선택일 수도 있다는 것. "여자가 말했을 수도 있죠. '뒤돌아봐요.'"
마리안느는 엘로이즈를 세 번 그린다. 섬에서 두 번, 그리고 섬 밖에서 그린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세 번째 작품이다. 오르페우스에 관한 세 사람의 대화는 첫 번째 그림이 완성되고, 두 번째 그림이 그려지는 과정 중간에 있었다.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처음 완성한 직후 섬을 떠나야 했으나 엘로이즈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꼈고(이건 아마도 사랑이었으리라), 그녀에게 그림을 보여준다. 엘로이즈는 그림을 본 뒤 강한 비판을 쏟아낸다. "당신이 본 내가 이랬나요? 생명력은 없나요? 존재감도?" 또 말한다. "나랑 이 초상화는 비슷하지 않아요. 게다가 당신도 닮지 않아서 슬프네요."
엘로이즈는 여성이라서 선택권이 없는 삶에 대한 슬픔과 분노를 마리안느에게 표현한 적 있다. 똑같은 화가이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활동 반경에 제약이 있는 마리안느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고 했다. 그런데 마리안느는 엘로이즈를 결혼을 앞두고 설렌 여인의 모습으로 그렸다.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비판을 "그림엔 규칙과 관습이 있다"고 반박하나 "어떤 감정은 매우 깊다"는 엘로이즈의 말엔 말문이 막히고 만다. 엘로이즈는 마리안느가 몰래 그려서 화가 난 게 아니라 억압에 무기력하고, 그래서 순종하는 인간으로 그림 속에 박제해놨기 때문에 서글펐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가 자신을 그정도로만 봤다는 게 착잡했을 것이다.
이 대목은 오르페우스 논쟁에서 그들이 나눈 대화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기에 중요하다. 엘로이즈는 끝내 결혼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지만(아니면 언니처럼 죽거나), 끝까지 저항한다. 마리안느의 첫 번째 그림 속 자신의 모습이 어떤 것이든 간에 그녀는 자기 내면의 진짜 모습을 주장하고 지키려 한다. 반면 엘로이즈보다 자유로워 보였던 마리안느는 오히려 "규칙과 관습"을 언급하며 시대의 폭압을 체념하고 받아들인 것처럼 보인다(그녀는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녀는 엘로이즈의 지적에 실수를 인정하듯 그림을 스스로 망가뜨리며 자책한다. 그렇다면 이런 짐작이 가능하다. 엘로이즈는 평범한 에우리디케는 아니며 마리안느는 에우리디케를 구하러 온 오르페우스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이 말의 의미를 명확히 하려면 한 가지 장면에 관해 더 얘기해야 한다. 마리안느가 모델을 자처한 뒤 엘로이즈가 두 번째 초상화를 그려나가는 바로 그때다. 마리안느는 첫 번째 그림을 그리기 위해 엘로이즈를 유심히 관찰했으며, 두 번째 그림을 그릴 때엔 모델이 된 그녀를 제약 없이 볼 수 있었다. 엘로이즈의 행동 변화로 그녀의 마음이 어떻게 요동치는지도 알게 된 마리안느는 말한다. "미안해요. 나였어도 그 위치가 싫었을 거예요." 이건 '내가 너를 꿰뚫어보고 있다'는 일종의 과시다. 이에 엘로이즈는 단호히 말한다. "우린 똑같은 위치에 있어요. 아주 동등한 위치죠. 당신이 나를 볼 때 나는 누굴 보겠어요."
마리안느는 '화가(능동)가 보고 모델(수동)은 그려진다'라는 일반론 혹은 상식으로 인식되는 구도를 근거로 말한다. 반면 엘로이즈는 이 고착화한 도식을 뒤집는다. '모델(능동)도 화가(수동)를 보고 있지 않은가.' 두 사람의 시각을 그대로 확장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마리안느는 세계가 질서라고 규정한 것들이 부당하다는 걸 알지만 받아들이는 사람, 엘로이즈는 그것이 왜 질서가 돼야 하느냐고 반기를 드는 사람. 물론 엘로이즈는 실제 삶에서 기존 질서를 뛰어넘지 못한 채 숨죽이고 있을 수밖에 없기에 여전히 에우리디케이지만, 언제나 전복을 꿈꾸기에 비범한 에우리디케다. 마리안느가 오르페우스가 아니라는 건 확실해졌다. 그녀는 오히려 현실이라는 저승에 꼼짝 없이 갇힌 또 다른 에우리디케다.
이제 세 여인의 오르페우스 논쟁으로 돌아갈 때다. 엘로이즈와 마리안느는 모두 에우리디케라고 했다. 그러면 소피는 무엇인가. 결혼하지 않았는데 임신한 그녀는 어떻게든 아이를 떼어내려 한다. 아마 누군가에게 강간당했을 것이다. 여성인데다가 신분도 낮고 생존을 위해 자기 몸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위험 속에 살고 있는 소피의 현실은 엘로이즈나 마리안느의 그것보다 결코 나아보이지 않는다. 그녀 역시 에우리디케. 그러니까 더 정확히 말하면 이건 세 명의 에우리디케가 그녀들이 등장하는 어느 신화에 관해 각자 의견을 내놓는 자리다. 그러면 왜 하필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인가.
그 신화에서 에우리디케는 오르페우스에 종속돼 있다. 여자는 남자가 구해주지 않으면 저승에서 살아나올 수 없다. 남자를 통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해도 남자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여자의 생사가 또 한 번 갈린다. 에우리디케의 운명은 오르페우스 손에 달렸으니 이 여자는 그 남자의 소유물과 다름 없다. 이 일방적이고 불합리한 텍스트를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와 소피가 어떻게 보느냐는 어쩌면 이 영화의 지향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질 것이다. 세 여인은 오르페우스 신화를 인정하고 시대의 부조리를 내면화할 것인가, 아니면 이 이야기를 해체하고 극복할 것인가.
소피는 분노한다. 오르페우스가 해서는 안 될 행동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행위를 해 신의를 져버렸다는 것. 남성의 부도덕함에 유린당한 소피는 오르페우스(남성)에게 강한 적개심을 드러낸다. 마리안느는 오르페우스가 신뢰를 무너뜨린 행동을 했다는 걸 인정하면서 다만 에우리디케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말한 "추억을 선택했다"는 건 바로 그런 의미다. 두 사람은 오르페우스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해석으로 서서히 신화를 해체하기 시작하지만, 이들의 시각은 여전히 오르페우스의 자장 안에 있다. 오르페우스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어야 했고, 오르페우스의 추억 속에 에우리디케가 살게 될 거라는 바로 그 해석 말이다.
자신의 생명력과 존재감에 관해 말하고 동등한 위치를 거론했던 엘로이즈는 역시 두 사람을 뛰어넘는다. 소피와 마리안느가 그 신화의 부당함을 폭로하자 그녀는 이야기를 완전히 전복해버린다. "여자가 말했을 수도 있죠. '뒤돌아봐요.'" 에우리디케가 원해서 오르페우스가 뒤돌아 봤다는 것. 이건 오르페우스 신화를 에우리디케 신화로 전환하는 시각이다. 마리안느는 놀란 듯 엘로이즈를 바라본다. 그녀는 첫 번째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 두 번째 그림을 그리는 중간에, 그리고 에우리디케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모두 세 차례 엘로이즈에게 감화된다. 마리안느는 엘로이즈가 어떤 인간인지를 이제 완전히 알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나서 마리안느는 엘로이즈 치마에 붙은 그 불을 보게 된다. 이 장면은 엘로이즈가 에우리디케에 관한 이야기를 한 직후 곧바로 이어진다. 두 사람은 소피와 함께 깊은 밤 숲속에서 벌어지는 집회에 간다. 그곳에 모인 이들은 신분이 낮은 여인들. 하나 둘 모여든 그들은 한 명씩 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화음을 쌓아 음악을 만든다. 그 노래는 아름답고 세 여인은 함께 웃는다. 그 자리에 모인 여인 모두 행복해 보인다. 이건 연대다. 에우리디케들의 연대다. 그 순간 엘로이즈의 치마에 불이 붙는다. 모닥불이 튀어 엘로이즈의 치마로 옮겨 붙었는데, 그녀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반대편에 있는 마리안느만 바라보고 있다.
엘로이즈는 사실 에우리디케 연대의 주동자다. 마리안느가 두 번째 그림에 착수하고 가문의 권력자인 엘로이즈 모친이 집을 비웠을 때, 신분이 다른 세 여인이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카드게임을 하고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는 건 가장 신분이 높은 엘로이즈가 이를 원했기 때문이다. 엘로이즈와 마리안느는 소피의 유산을 함께 돕고, 소피의 낙태에 동참한다. 낙태 중 고통에 찬 소피의 모습에 고개를 돌리고 마는 마리안느에게 "봐"라고 말하는 건 엘로이즈다. 집으로 돌아와서 낙태를 재연하고 마리안느에게 이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남기도록 요청하는 것 또한 엘로이즈다. 남성들의 시대 속에서 고통받는 여성의 모습을 목격하고 기록하는 건 엘로이즈가 세상 모든 에우리디케들에게 덧씌워진 시대의 굴레를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벗겨내려 안간힘 쓰고 있다는 의미다.
이제 두 번째 초상화는 완성됐고, 이 그림이 엘로이즈의 정혼자에게 보내지면 그녀는 결혼하게 될 것이다. 마리안느도 섬을 떠나야 한다. 그렇다면 온몸과 마음으로 시대의 폭력에 맞서던 엘로이즈는 왜 결혼을 순순히 받아들이는가. 그것이 마리안느와의 사랑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내 몸은 남성의 가문에 귀속되지만, 나의 정신만큼은 마리안느를 잊지 않고 계속 사랑한다는 것. 마리안느는 내가 선택한 사랑이라는 것. 이보다 더 강력하고 위대한 저항은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언니처럼 자살할 수도 있으나 그건 일종의 굴복이다. 죽어서는 마리안느를 사랑할 수 없으니 말이다. 엘로이즈는 기어코 살아서 이 부당한 시대에 마음 한 켠 내어주지 않을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오르페우스에게 뒤돌아보라고 말했다던 그 에우리디케처럼.
마리안느는 섬을 떠난 뒤 엘로이즈를 두 번 본다. 그리고나서 세 번째 그림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완성한 것으로 추측된다. 두 번 모두 엘로이즈는 마리안느를 보지 못 했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시대에 맞서고 있다는 것을) 두 번 모두 확인했다. 첫 번째 그림은 누군가가 그린 엘로이즈의 초상화. 그림 속 엘로이즈는 딸로 보이는 소녀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녀의 손엔 책이 들려 있고 손은 28페이지를 가르고 있다. 그 페이지는 마리안느가 엘로이즈에게 자화상을 그려줬던 그곳이다. 두 번째는 음악회에서.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 3악장이 흘러나오자 엘로이즈는 희노애락이 뒤섞인 눈물을 쏟아낸다.이 음악은 마리안느가 엘로이즈에게 알려준 그 음악이다. 엘로이즈는 마리안느에게서 그 음악을 알았고 그녀를 사랑하게 됐었다.
마리안느가 그린 엘로이즈에 관한 세 번째 그림이 아마도 엘로이즈의 진짜 초상화일 것이다. 첫 번째 그림은 엘로이즈가 거부했고, 두 번째 그림은 그녀가 받아들였으나 이 두 그림 모두 시대가 요구한 "규칙과 관습"에 따른 그림이었다.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에게 이식받은 굴하지 않는 고고한 정신을 그림에 담는다. 그것이 화가인 그녀가 할 수 있는 저항이다. 마리안느는 변했다. 그녀는 엘로이즈의 그림을 본 그 전시회에 자신의 그림을 걸었다. 오르페우스 신화에 관한 그림이다. 한 남성이 평한다. "멋지군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가 마치 작별하듯이 그렸군요. 아버님이 건재하세요." 마리안느가 말한다. "제 그림이에요."
한 여인이 광야에 섰다. 밤은 깊고 어둡다. 아마 이 어둠은 그녀가 마주한 폭력적인 시대일 것이다. 달빛이 흐리지 않지만 구름이 많아서 그 빛이 여인에게 닿지 않는다. 그녀는 시대의 억압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달빛을 마주할 수 없다. 어둠은 거대하고 여인은 초라하다. 그렇다고 주저 앉지 않는다. 그녀는 어둠 속에 있으나 결코 꺼지지 않을 불꽃을 마음 속에 담고 있다. 그 불은 치마를 태우며 타오른다. 여인은 치마가 타올라도 놀라지 않는다. 불이 붙은 게 아니라 그녀가 붙인 불이기 때문이다. 이 불은 어둠의 시대에 맞서 사랑하고 연대하고 저항하던 엘로이즈의 불꽃. 그게 마리안느가 본 엘로이즈다. 그러니 치마에 불이 붙은 여인이 아니라 '타오르는 여인'이다. 여리지만 분명히 타오르는 이 모습이 엘로이즈의 얼굴이나 다름 없으니 '초상'이다. 그래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다.
(글) 손정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