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뭉뚱그릴 수 없는 것에 관하여

샘 멘데스가 '1917'에서 보려 한 건 무엇이었나

by 손정빈

샘 멘데스의 '1917'에는 1914년부터 1918년까지 햇수로 5년 간 이어진 1차 세계대전 중 1917년의 단 하루만 담겨있다. 그 하루는 이렇다. 독일군이 퇴각하는 척하며 함정을 파놓은 걸 모르고 추격하던 영국군 데번셔 연대에 제때 전령이 도착해 이 정보를 전달했고, 덕분에 소속 군인 1600명이 목숨을 건졌다는 것. 괜히 냉정하게 보고싶어진다. 그 시간이 카메라를 들이댈 정도로 중요했던 걸까.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수백만명이 죽어나가고 온 대륙이 폐허가 된 거대한 비극에 비하면 이 에피소드는 대단치 않아 보인다. 대규모 전투의 향방을 바꾼 것도, 전쟁의 양상을 뒤집어 놓은 것도 아니니까. 그 군인들이 그날 살았다고 무사히 집에 돌아갈 수 있었던 것도 아니지 않나. 그런데도 샘 멘데스는 너무 길어 고통스러웠던 그 전쟁 기간 중 그토록 짧은 시간만 핀셋으로 집어올려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무엇이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길래.


블레이크와 스코필드, 두 병사가 애린무어 장군의 메시지를 데번셔 연대에 전해야 한다. 그들의 손에 1600명의 목숨이 달렸다. 그런데 이토록 막중한 임무를 짊어지기엔 두 사람은 겨우 일등병이다. 그들의 얼굴엔 달리 비범함도 없어 보인다. 블레이크를 맡은 배우는 딘-찰스 채프먼, 스코필드는 조지 맥코이라는 배우가 연기했다. 수년간 연기 활동을 해왔으나 관객이 기억할 만한 작품도 배역도 맡지 못한 연기자들이다. 반면 이들에게 메시지를 준 애린무어 장군은 콜린 퍼스. 그가 등장하는 시간은 1분이 남짓이지만, 강렬하다. 퍼스를 모르는 관객은 없을 것이다. 보통의 영화라면 카메라는 장군인 퍼스를 따라다녔겠지만, '1917'의 카메라는 한 번 봐서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 평범한 두 사람을 쫓아간다. 블레이크와 스코필드의 여정 중 블레이크가 사망한 뒤 카메라는 오직 스코필드에 집중한다. 하루에다가 이번엔 일개 병사 한 명이다.

아직 블레이크가 죽기 전, 두 사람은 메시지를 전하러 가는 길에 망가진 집터에서 나무를 본다. 무너진 담 뒤편 나무엔 꽃이 피었다. 블레이크는 그게 체리나무라고 말한다. "램버트 체리야. 듀크 같기도 하고. 열매가 없어서 모르겠네." 뭐가 다르냐는 스코필드의 질문에 블레이크는 답한다. "사람들은 한 종류인 줄 알지만, 종류가 많아. 커스버트, 퀸 앤, 몽모랑시, 달콤한 거, 시큼한 거." 스코필드는 그럼 이 나무들은 다 죽은 거냐고 묻는다. 블레이크는 말한다. "체리가 썩으면 다시 자랄 걸. 전보다 더 많이." 그러고보니 블레이크의 말처럼 어느새 관객은 그를 한 종류의 군인이 아니라 형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동생으로 안다(데번셔 연대엔 형 조셉이 있다). 사제가 되려다 밥은 제때 줄 거라는 생각에 군대에 온 청년으로 안다. 훈장을 받아 자랑하고 싶어하는 그의 천진난만함도 안다. 그 체리나무가 있던 곳에서 블레이크는 죽는다.


군 수뇌부는 이 작전의 적임자가 블레이크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데번셔 연대까지 다음 날 일출 전에 도착하려면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를 독일군 진지를 가로지른 뒤 길을 잃지 않고 크루아지유 숲으로 직행해야 한다. 블레이크는 지도를 잘 보고, 데번셔 연대에 친형이 있으며, 죽어도 전력에 영향이 없는 일등병이다. 선택당한 이유가 있다. 반면 스코필드는 블레이크 옆에서 낮잠을 자다가 작전에 투입된다. 두 사람 중 살아남아 끝까지 메시지를 전하러 가는 사람이 스코필드라는 건 의미심장하다. 전장에서 스러져간 대부분 군인은 이유도 모른채 싸운다 죽거나 산다. 카메라는 그들 중 한 명이 기어서 뛰어서, 피를 흘리며 죽을 고비를 넘어가며, 전우의 죽음을 지켜보고, 그들의 시체를 넘고 넘어, 슬픔과 절망 속에서 달리는 모습을 놓치지 않고 담아 모조리 목격하게 한다. 이때 스코필드는 1차 대전 참전자 중 하나로 뭉뚱그려지지 않고, 하나의 주체로 인정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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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필드는 작전 투입 전후 네 명의 지휘관을 만난다. 그 중 한 명이 콜린 퍼스가 연기한 애린무어 장군이다. 두 번째는 블레이크 죽음 직후 만난 스미스 대위다. 영국의 스타 배우 마크 스트롱이 연기했다. 세 번째 만난 간부는 데번셔 연대 메켄지 대령. 장군의 메시지를 받아야 할 바로 그 사람이다. 달리 설명할 필요가 없는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맡았다. 마지막으로 만난 지휘관은 블레이크의 형인 조셉 중위다. 영국의 신성 리차드 매든이 연기했다. 세대별로 영국을 대표하는 배우이며, 각자 주인공을 맡아 영화 한 편을 책임질 수 있는 배우들이 단역에 가까운 조연으로 출연한 건 우연이 아니다. 샘 멘데스가 관심 있는 건 전장 뒷편에서 공격 명령을 내리는 영웅이 아니라 어떤 조명도 받지 못 한 채 전장 한가운데서 쓰러지지만 영웅과 똑같이 소중한 각자의 삶을 가진 사람들 각각이다. 애린무어 장군은 독일군 대치 전선 최단 거리에 있는 요크셔 연대 지휘관 스티븐슨 소령이 전사한 것도 모르고 있지 않았나.


홀로 남은 스코필드가 기어코 데번셔 연대로 향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장군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다른 하나는 블레이크 전사 소식을 형에게 알리고 블레이크 부탁대로 그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서다. 둘 중 더 중요한 건 블레이크가 스코필드에게 한 개인적인 부탁일 것이다. 스코필드는 이전 전투에서 받은 훈장을 프랑스군 대위와 와인 한 병에 교환할 정도로 전쟁에 환멸을 느꼈다. "목이 말랐다"는 게 이유. 이해가 안 된다는 블레이크 말에 스코필드는 말한다. "그냥 쇠 쪼가리야." 전쟁에 의미가 없는데, 훈장에 의미가 있을 리 없다. 그러니까 그에겐 데번셔 연대를 구하는 것보다 친구 블레이크의 비극을 형과 어머니에게 전해야 할 의무가 더 절박했다. 스코필드는 조셉을 만나 블레이크에 대해 "좋은 사람이었다"고, "내 목숨을 구해줬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머니에겐 '쓸쓸히 죽지 않았다'고 편지를 쓰겠다"고 말한다. 스코필드에 의해 일개 병사 블레이크는 그렇게 역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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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은 스코필드와 블레이크의 관계를 특별한 전우애로 남길 생각이 없다. 그렇게 되면 이건 또 다른 영웅의 이야기가 되고 말 것이다. 그건 스코필드와 블레이크 뿐만 아니라 이 난리통에 있던 모든 사람을 하나 하나 기억하려는 이 영화의 목표에 맞지 않는다. 블레이크가 죽고 난 뒤 힘겹게 시신을 옮기던 스코필드에게 다가와 그를 도와준 다른 부대 군인 두 명은 아마 그 부대의 스코필드와 블레이크였을 것이다. 스코필드를 죽음 직전으로 몰아갔던 독일군 저격수는 한 건물에 홀로 남아 있었다. 적이지만, 그 또한 전우를 잃고 혼자가 된 독일의 스코필드나 다름 없다. 스코필드는 데변셔 연대로 향하던 중 한 건물에서 쉬고 있던 독일군 두 명을 발견하고, 그 중 한 명을 기습해 죽인 뒤 도망친다. 블레이크도 추락한 비행기에서 나온 독일군 한 명에게 기습을 당해 목숨을 잃었다. 그러니까 그 전쟁에 있던 모두가 스코필드이고, 블레이크다.


독일군 추격을 피해 낭떠러지로 몸을 던진 스코필드는 강물에 빠져 사경을 헤맨다. 거친 물살에 이리저리 휩쓸리던 그는 가까스로 떠내려가던 통나무 하나를 부여잡고 겨우 목숨을 건진다. 그때 강물 위로 수많은 꽃잎이 떨어진다. 블레이크가 말한 "사람들은 한 종류인줄 알지만, 종류가 많다"는 바로 그 체리나무 꽃잎이다. 그걸 본 스코필드는 다시 살기 위해 헤엄친다. 그 꽃잎은 물론 블레이크를 상징할 것이다. 다만 그건 블레이크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블레이크처럼 짧게 피었다가 전쟁 속에 흩뿌려져 사라져간 그 모든 이들의 삶이 그 꽃잎이다. 스코필드는 꽃잎 만큼 많은, 강 위에 떠있는 국적 불문 군인들의 숱한 사체를 부둥켜잡고 올라와 그들을 밟고 서서 물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나서 울음을 토해낸다. 블레이크가 죽기 직전 "나 죽는 거야?"라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던 그였다. 그때 흘리지 않은 눈물을 그는 그제서야 쏟는다.


모든 일을 마친 스코필드는 이 임무를 맡기 직전 나무에 기대 잠을 자고 있었던 바로 그때처럼 나무에 기대어 앉아 쉰다. 그리고나서 정성스럽게 담아 품 속에 넣어둔 사진 몇 장을 꺼낸다. 아마도 여동생 두 명과 어머니가 그의 가족인 듯하다.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동생이었던 블레이크처럼 스코필드 역시 누군가의 아들이며, 누군가의 오빠였다. 블레이크가 죽기 직전에 가족 사진을 봤던 것처럼 스코필드는 죽음을 건너 가까스로 살아남아 가족 사진을 본다. 그러고보니 스코필드와 블레이크가 지나온 독일군 진지 안에도 미처 챙기가지 못한 가족 사진이 있었다. 말하자면 샘 멘데스는 이 짧은 전쟁 이야기에서 전쟁을 보는 게 아니라 사람을 본다. 마치 죽은 것 같아도 체리가 썩으면 다시 자랄 것이며, 전보다 더 많이 자랄 거라는 블레이크의 말처럼 결코 사라지지 않을, 무차별한 폭격으로도 결코 훼손할 수 없는 인간의 존엄을 보고 있다.


(글) 손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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