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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빈 Jun 29. 2020

신이라 불렸으나 결국 인간었던

'더 라스트 댄스'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나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The last dance)의 첫 장면은 긴 의자에 홀로 앉아 시가를 피우며 창 밖을 바라보는 마이클 조던의 뒷모습이다. 농구라는 종목을 넘어, 운동선수로서, 스포츠 바깥으로 뻗어나가 1990년대 전 세계 문화 아이콘으로 군림하며 전설이 된 한 인간이 내뿜는 아우라는 여전히 압도적이다. 마치 유일무이한 존재가 보통의 인간을 내려다보는 듯한 형국. 그런데 어느 한편으로 이 뒷모습은 이상하게 쓸쓸해보이기도 한다. 평범할 수 없는 천성과 능력을 가진 탓에 뛰어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언제나 남들과 구분됐으며, 그만큼 책임져야 할 것도 많은 삶을 살아야 하는 고단함이 보인다면 과장일까. 그 모든 무게가 바로 저 어깨에 얹혀져 있는 듯하다. 말하자면 이 첫 장면이 '라스트 댄스'를 압축한다. 신에 가장 가까운 인간이라는 평가와 그럼에도 결코 신은 아니었던 인간 마이클 조던 말이다.


조던과 시카고 불스가 NBA에서 두 차례 쓰리핏(three-peat)에 성공했고, 그 여섯 번의 파이널 챔피언십 MVP가 모두 조던이라는 건 모두가 사실이다. 1984년에 데뷔하자마자 슈퍼스타가 됐고, 아버지의 죽음 이후 21개월 간 은퇴했으며, 1998년 마지막 우승 이후 또 은퇴한 것도 대부분 아는 내용이다. 조던과 스코티 피펜, 필 잭슨이 단장 제리 크라우스와 대립했다는 것도 당시 언론이 수없이 다뤘던 부분이다. 그러니까 '더 라스트 댄스'에는 우리가 모르는 얘기가 없다. 그래서 제이슨 헤히르 감독은 결론이 정해진 얘기에도 시청자가 빠져들 수밖에 없는 소스를 가져오는데, 그게 바로 조던의 양면성이다. 스스로 '블랙 지져스'라 칭한 조던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그의 나약함을 병렬하는 것. 이제 우리가 떠올리는 건 그의 '업적'이 아니라 그의 인간성이다. 이때 우리가 아는 그 사건들은 우리가 알지 못한 스토리가 된다. 그 이야기 몇 가지를 정리해봤다.

승리자가 된 패배자


조던이 처음 우승한 건 1991년이다. 그가 데뷔한 게 1984년이니까, 우승까지 7년이 걸렸고 그때 그는 우리 나이로 28살이었다. 데뷔 직후부터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던 선수인데도 샴페인을 터뜨리기까지 꽤나 긴 시간이 걸림 셈이다. 이건 많은 사람이 조던에 대해 생각할 때 쉽게 지나쳐버리는 부분이다. 마치 그는 처음부터 모든 걸 가졌던 것처럼 보이니까. '더 라스트 댄스'는 승리에 감격한 승리자보다 2년 연속 같은 팀에 져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패배자를 더 오래 비춘다. 치욕을 안긴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를 꺾기 위해 조던은 모든 걸 건다. 신은 노력하지 않는다. 오직 인간 만이 노력한다. 피스톤스를 4대0으로 누르고 파이널 챔피언십 무대까지 평정한 조던은 가장 소중한 것을 뺏기지 않겠다는 듯 래리 오브라이언 트로피를 꼭 껴안고 눈물 흘리며 말한다. "7년을 노력했어요." 이때 팀 동료 윌 퍼듀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가끔 우린 마이클이 인간인지 묻곤 했어요. 감정이 있나 싶었죠. 우리가 마이클에게서 본 감정이라곤 분노와 불만 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감정을 쏟아내는 모습이 충격으로 다가왔죠." 조던은 종종 시즌을 시작하기 전에 팀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노력으로 시작해서 샴페인으로 끝내자."

승부의 화신이 흘린 눈물


이 다큐멘터리가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건 조던의 승부욕이다. 데뷔 후 두 번째 시즌 초반에 부상을 당해 전체 82경기 중 64경기를 뛰지 못 한 그는 부상에서 완쾌되지 않아 구단이 만류했음에도 시즌 후반 출전을 감행한다. 그리고는 팀을 플레이오프에 기어코 올려놓는다. 제리 크라우스는 아마도 그 시즌에 '탱킹'을 생각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조던을 무리하게 출전시키지 않고, 팀 순위를 떨어뜨려 다음 해 드래프트에서 로터리 픽을 노리겠다는 것. 그러나 조던은 구단의 이같은 계획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기려고 하지 않는 건 패배자의 자세이며, 스포츠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어긴 것이라는 게 조던의 생각이었다. 관계자들은 이때부터 조던과 크라우스의 관계가 틀어졌을 거라고 추측한다. 그는 말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겨야 하는 게 제 타고난 성격이에요. 코트 위에 오를 때마다 전 승리에만 집중해요. 승리하지 못 하면 미칠 것만 같아요."


조던이 극도로 승리에 집착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는 많고, 익히 알려진 것들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드림팀 일원으로 참가했을 당시 동료들과 연습경기에서조차 패하는 걸 용인하지 않았다는 이야기. 1차 은퇴 후 복귀해 자신의 실력이 여전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영화 '스페이스 잼' 촬영장 옆에 농구장을 차려놓고 쉬는 시간마다 연습하고 촬영이 끝난 뒤까지 연습을 했다는 일화. 1997년 유타 재즈와 결승전에서 지독한 식중독 증세에도 경기에 나서 팀을 승리로 이끌었던 전설. 시즌 중 이동하는 비행기에서 동료들과 함께했던 카드 게임조차 이겨야 직성이 풀렸다는 게 조던이다. "자기 능력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특별한 선수이지만, 언제나 전력으로 뛰었어요." "마이클은 매 경기를 마지막인 것처럼 뛰었어요. 모든 경기를요. 대충 뛰는 날이 없었죠."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조던을 이렇게 평한다.

그래서 그는 좋은 사람이라는 얘기보다 폭군이라는 말을 더 자주 들었다. 승리를 위해 자신 뿐만 아니라 동료까지 극한으로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승리하지 못하거나 동료가 잘하지 못하면 화를 내고 짜증내고 조롱했으며 죽도록 훈련하게끔 괴롭혔다. 언론 또한 조던의 이런 모습을 부각했다. 조던은 이렇게 말한다. "제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이기는 거였어요. 그 엄격한 마음가짐에 동참할 게 아니라면 제 옆에 있을 필요가 없죠. 제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동료들을 괴롭힐 생각이었거든요.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훈련이 지옥같겠죠." 동료였던 BJ 암스트롱은 '폭군' 조던에 관해 이렇게 얘기한다. "착했냐고요? 착할 수가 없죠. 마이클의 마음가짐이라면 착하게 행동할 수가 없어요. 농구를 진정 사랑하지 않는다면 마이클과 함께 있는 건 괴로운 일이에요. 어려운 사람이죠."

승부의 화신 조던을 집중적으로 부각하던 '더 라스트 댄스'는 7회에 이르러 폭탄 하나를 터뜨린다. 이 다큐멘터리 내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조던은 딱 한 번 속내를 드러낸다. '승부에 대한 집착이 좋은 사람(nice guy)이라는 평판에 금이 가게 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조던은 흔들린다. 아마 이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격정적인 장면일 것이다. 그의 답변은 이렇다.


"글쎄요. 모르겠네요. 승리엔 대가가 있어요. 리더십에도 대가가 있죠. 끌려가고 싶지 않아도 제가 끌고 갔어요. 도전하고 싶지 않아도 제가 도전했고요. 전 자격이 있다고 봐요. 저를 따른 팀원들은 제가 겪은 고통을 겪지 않았으니까요. 팀에 들어온 이상 제가 생각하는 기준에 맞게 뛰어야만 했어요. 그 이하는 용납하지 않았죠. 그렇게 하기 위해 몰아붙일 필요가 있었다면 그렇게 한 거예요. 팀원들에게 물어보면 알 거예요. '마이클 조던은 자기가 하지 않은 걸 남에게 시키지 않았다'는 걸요. 이걸 보면 또 사람들은 그러겠죠. '좋은 사람은 무슨 폭군이면 몰라도.' 당신 눈엔 그렇게 보일 겁니다. 이겨 본적이 없으니까요. 저 혼자 이기고 싶었던 게 아니라 팀원들과 함께 이기고 싶었어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에요. 제가 이런 사람인 거예요. 이게 제 방식이고 제 마음가짐이에요. 이 방식대로 하지 못하겠다면 하지 말아야죠."

이렇게 말하고는 조던은 눈물을 보인다. 이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맘을 알지 못하고 비난하는 이들을 향한 분노인가.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자신의 천성 탓에 동료들에게 미안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냉정한 승부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고통이 떠올라서였나.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 모든 게 다 섞여 있는 감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윌 퍼듀는 말한다. "이건 확실하죠. 마이클은 재수없는 개새끼였어요. 선을 넘은 적이 수두룩 했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그때를 떠올리며 왜 그렇게 했는지 생각하면, 최고의 팀원이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어요." 승부의 세계에서 그는 신에 더 가까웠는데, 그를 그렇게 만든 건 이기고 싶다는 열정이었다. 그리고 그 붙타오르는 마음은 인간에게만 있다. 신의 결정은 곧 그것 자체로 신이다. 대가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조던은 인간이었기에 승부와 승리에 대한 대가를 다양한 방식으로, 또 충분히 치러야 했다.


그래서 조던과 오랜 시간 함께한 퍼스널 트레이너 팀 그로버는 조던에 관해 얘기 하면서 눈물을 보인다. "마이클은 의무감을 느꼈어요. 자기 자신, 팬들, 팀원, 구단, 그리고 가족들. 모두에게 말이죠. 사람들이 자기를 보기 위해 하루 중 3시간을 내서 TV 앞에 앉아 있다면 최고의 경기를 보여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죠.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요." 그로버는 가장 가까이서 조던의 고통을 봐왔기에 그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눈치챘는지도 모른다.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


조던은 동료를 밀어붙인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에겐 더 혹독했다. 이길 수 있는 최상의 정신 상태로 가기 위해 가혹한 동기 부여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더 라스트 댄스'가 다루는 주제 중 하나가 이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라브래드퍼스 스미스' 이야기다. 1993년 워싱턴 불리츠와 맞붙은 홈경기에서 조던은 부진했다. 반면 상대편 선수인 라브래드퍼스 스미스는 37점을 올리며 대활약했다. 조던에 따르면, 스미스는 경기가 끝난 뒤 자신에게 팔을 두르고 "재밌었어요(Nice game)"라고 말했고, 스미스의 이런 행동에 분노한 조던은 바로 다음 날 워싱턴에서 열린 불리츠와 백투백 경기에서 전반점에만 36점을 올리며 스미스에게 망신을 줬다. BJ 암스트롱은 그때를 이렇게 회고한다. "그 정도로 다른 선수한테 달려드는 건 처음 봤어요."

반전은 세월이 꽤나 흐른 뒤에 일어난다. 한 기자가 조던에게 이 일을 언급했는데, 그가 "그건 모두 내가 지어낸 이야기"라고 말한 것이다. 작가 마크 반실은 이 행동에 관해 이렇게 설명한다. "마이클은 자신의 기준을 아주 높이 설정해요. 그런 높은 수준에서 오래 활동하다보니 매 경기에서 전력을 다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내곤 했어요. 자신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경기 안의 경기를 만든 거죠. 전부 자기 머릿속에서요." 한 마디로 스스로 승부욕을 만들어내기 위해 못하는 짓이 없었다는 것이다. 동기 부여를 통해 흐트러질 수 있는 승부에 대한 태도를 완전히 통제하는 이 모습은 조던이 보통의 인간과는 사고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랐다는 걸 보여준다. "많은 재능 있는 선수들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무너지곤 했어요. 마이클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았어요. 마이클의 강점은 점프도 슛도 스피드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직 현재만을 살았어요. 그래서 특별했죠."


흥미로운 건 오직 자신만을 믿는 것처럼 보이는 조던이 누군가에게 정신적으로 크게 의지해왔다는 점이다. 첫 번째 쓰리핏을 달성하기까지 그 대상은 아버지 제임스 조던이었다. 그는 경기 대부분을 멘토이자 친구였던 아버지와 함께했고, 세 번의 우승 역시 언제나 아버지와 함께했다. 조던이 도박 문제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도 조던을 대신해 언론 인터뷰에 나서 조던을 보호했던 것도 아버지였다. 그는 아버지가 언제나 함께하고 있다는 것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찾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더 라스트 댄스'에서 조던의 어머니 들로리스 조던은 아들의 승부욕은 아버지의 교육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하며 그렇게 하지 못 할 거라면 운동을 그만 두라고 했다는 게 바로 아버지였다는 것이다.

제임스 조던이 살해당한 채 발견된 뒤 그는 결국 첫 번째 은퇴를 선언한다. 아버지가 없는 코트 위에서 경기를 해야 한다는 상실감이 조던을 추동하는 동력을 제거해버렸기 때문일 게다. 그가 야구를 그만 두고 농구장으로 돌아온 건 MLB 파업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그보다도 21개월 간 야구를 하면서 아버지가 없는 삶에 서서히 적응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1차 은퇴에서 복귀한 뒤 나선 첫 번째 NBA 파이널 무대에서 네 번째 우승을 거머쥔 뒤 그는 서럽게 울면서 감정을 토해낸다. 그가 우승한 그날이 바로 아버지의 날이었다. 사람들은 2년 가까이 농구를 하지 않다가 돌아와 또 다시 우승 트로피를 손에 넣은 그를 찬양했는데, 조던의 마음은 더이상 우승을 함께하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가 있었던 것 것 같다. 신이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걸 본 적이 있나. 신에게 멘토가 있나. 오직 인간 만이 그렇다. 조던 역시 인간이었다.


(글) 손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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