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봄밤'을 보고
김은숙 작가가 내놓은 드라마 '도깨비'(2016)와 '미스터 션샤인'(2018)이 인상적인 건 '재미' 때문이었다. 이 작품들은 장편영화 분량인 70~80분을 매회 쓰면서 16회 혹은 24회차까지 이어졌는데도 지루하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김 작가의 '필력'이라는 건 어찌됐든 시청자를 TV 앞에 앉게 하는 몰입감을 만들어내는 것일텐데, 배우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매 작품 그 능력을 일정하게 유지한다는 점에서 그녀가 왜 가장 몸값이 높은 작가인지 두 작품에서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건 '도깨비' 이후 '미스터 션샤인'까지 보고난 뒤 내가 느낀 어떤 불만족이었다. 이 작품들이 그려내는 절절한 사랑에 감탄했으면서도 끝나고난 뒤에는 특별한 감흥이 없었다는 것. 말하자면 그들의 사랑은 충분히 아름다웠으나 감동적이지 않았다. 그리고나서 최근 드라마 '봄밤'(2019)을 본 뒤에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김 작가의 두 작품에는 사랑의 크기와 현상은 있으나 사랑의 이유와 양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한국 드라마의 가장 큰 주제다. 두 남녀는 반드시 운명적으로 만나 영원할 것만 같은 사랑에 열렬히 빠져들어야 한다. 훼방꾼과 장애물은 도처에 널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 감정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외부 방해는 필연적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한다.' 이유는 없다. 있다면 역시 운명이다. 대개 드라마는 그들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 사랑 때문에 어떤 일까지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일에 집중한다. 에둘러 말하면 판타지이고, 직설하면 동어반복이다.
'봄밤'도 일단 한국 멜로 드라마의 전형으로 문을 연다. 두 남녀가 운명적으로 끌리고, 이 끌림을 거부하지 못하고 사랑에 빠진다. 훼방꾼과 장애물도 그대로다. 이 작품이 다른 길을 가는 건 이제부터다. 두 주인공 이정인과 유지호는 사랑하는 게 아니라 고민하면서 사랑한다. 두 사람은 관계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를 숙고한 뒤에 '선택'한다. 그리고 김은 작가와 안판석 감독은 그들이 왜 사랑하는지, 시간을 들여 천천히 충분히 설득한다.
이정인에게는 남자가 있다. 그러나 이 오래된 커플에게 연인(戀人)이라거나 연애(戀愛)라는 단어를 붙이긴 어색하다. 불화가 없는 상태로 그저 지속되기만 하는 관계라서다. 그러다가 유지호라는 남자를 알게 되는데, 오랜 시간 남자친구에게 느끼지 못했으나 항상 원했던 감정을 그에게 느낀다. 유지호도 마찬가지. 미혼부인 그는 과거 상처에서 헤어나오지 못 해 사실상 연애를 놔버렸다. 그러다가 이정인을 알게 되고, 그녀가 과거에 묶인 자신을 풀어줄 거라는 희망을 갖는다.
삶의 관성에 휩쓸려 사랑에 있어서 만큼은 사실상 죽어있던 사람들이, 어딘가 잘못됐다고 느끼면서도 어쩌지 못 하고 주저하다가 이제는 이 죽음의 상태에서 벗어나 나의 주도로 사랑을 완성하겠다고 다짐하는 이야기가 바로 '봄밤'이다. 그러니 이정인과 유지호는 그저 관성대로 흘러가버릴 것 같았던 내 삶을 붙잡아줄지 모르는 상대를 만났고, 그런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사랑이 운명적으로 이뤄진다는 걸 이 작품은 믿지 않는다. 대신 우연을 필연으로 격상해내는 그들의 선택과 용기를 믿는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애초에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는 사랑은 없다. 완성해가는 사랑이 있을 뿐이다.'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완성된 사랑에 다가가는가.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기적일 때 그것이 가능해진다는 것. 우선은 내가 중요하다. 내가 잘 살기 위해서라도 지금 찾아온 이 순간들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혹여나 나중에 마음이 변한다고 해도 망설이지 않고 두려움 없이 나를 위해 '지금 이곳의 사랑'에 최선을 다해야 사랑을 완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나를 위해 철저히 이기적으로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상대를 향한 열렬한 사랑과 다를 게 없다고 '봄밤'은 말한다.
이같은 논리적 완결성은 안판석의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요소다. '하얀거탑'(2007)의 장준혁을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었던 건 그가 생존과 성공이라는 인간적인 욕망을 위해 위악(僞惡)을 부리고 있다는 걸 우리가 이해하기 때문이다. '밀회'(2014)에서 오혜원의 불륜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던 건 그녀가 금지된 사랑을 통해 스스로 억압했던 삶에서 빠져나와 자유를 쟁취해나가고 있다는 걸 직감하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봄밤'의 이정인은 남자친구를 배신한 가해자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김은과 안판석이 사랑의 크기와 현상을 다루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사랑의 이유와 양상을 다루는 건 배신자 이정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부도덕한 장준혁이, 불륜녀 오혜원이, 그리고 남자친구를 버린 이정인이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라고. 왜 그래야 하나.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드라마는 인간들의 이야기이니까, 인간에 관한 이해 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서다.
인간에 관한 이야기는 그 인간들이 사는 세계에 관한 이야기가 되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봄밤'은 이정인과 유정인의 로맨스를 그저 두 남녀 간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남겨두지 않고 확장해나간다. 힌트는 안판석이 "드라마나 소설의 주인공은 약자다. 지금 우리 시대의 약자는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이 주인공일 수밖에 없다"고 한 말에 있다. 약자인 이정인은 그녀를 지지하는 두 자매와 함께,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연대해 사랑을 손에 넣는다. 이렇게 이 멜로는 한편으로 페미니즘의 은유가 된다.
그리고나서 나는 '봄밤'이라는 제목에 관해 생각한다. 이정인과 유지호가 밤처럼 어둡기만 했던 그들의 사랑을 봄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봄밤인 걸까. 이건 다소 유치한 발상이라고 생각하다가 돌아올 계절을 떠올렸다.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올 것이다. 찌는 듯 더울 것이고, 스산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고, 뼈가 시리도록 추울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이 계절들을 견뎌낼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다만 이들은 헤어지게 되더라도 최선을 다해 헤어질 것이다. 마치 사랑할 때 모든 걸 쏟아부었듯이.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위해서.
마지막으로 꼭 덧붙여야 할 말이 있다. 시청률과 돈이 중요한 시대다. 매주 무료로 방송되는 드라마는 어떻게든 시청자를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하고 쉽게 소비돼야 한다. 이 와중에 '봄밤'은 1회부터 16회를 천천히 곱씹으면서 봐야 그 재미와 의미를 알 수 있는 작품이었다. 진지했고, 다소 무겁기도 했다. 이건 도전이었며, 진귀한 기획이었다. 그래서 이런 시도에 동참한 사람들에게 고마웠다. 또 한 번 이런 드라마가 찾아와 내 마음을 흔들어놓기를 기대한다.
(글) 손정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