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감독 김기덕이 라트비아라는 유럽의 작은 나라 수도에서 객사(客死)했다. 2018년 미투로 몰락한 뒤 그는 사실상 도피 생활을 해왔고, 아마도 그 3년여간 이어진 도망을 끝내기 위해 라트비아로 갔던 것으로 추측된다. 중학교도 가지 못한 노동자에서 해병대 부사관으로, 문제적 예술가에서 세계적 거장으로, 그리고 성폭력 가해자로. 김기덕은 김기덕처럼 살다가 죽어버렸다.
2.
수십편의 영화로 세운 김기덕의 예술 세계는 결국 드러나고만 그의 성범죄로 완전히 무너졌다. 나는 이 폐허에 관해 이야기할 생각이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가 예술을 참칭하며 만든 그것들이 제작되는 과정에 성 착취가 있었기 때문에 김기덕 영화는 평가 대상조차 될 수 없다. 국내 영화감독 중 유일하게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모두 상을 받았다는 사람의 죽음을 언론이 별세((別世)가 아닌 사망(死亡)으로 쓴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3.
내가 김기덕을 만난 건 2016년에 그가 '그물'이라는 영화를 발표했을 때다. 인터뷰가 있던 날 꽤나 긴장했다. 전작들을 볼 때 김기덕은 평범한 질문에도 날 선 답변을 쏟아내는 인터뷰이일 거라고 여겼다. 실제로 만나보니 정반대였다. 그는 정중하고 친절했다. 달변이었다. 그에겐 인터뷰가 익숙한 스타의 여유 같은 게 있었고, 예술가스러운 날카로움도 있었다. 개인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요청을 최대한 예의를 갖춰 거절했던 것만 빼면 매우 잘된 인터뷰였다.
4.
그날 김기덕은 이런 말을 했다. "희망을 줄 거라면 영화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일말의 여지가 있었다면 이 영화를 애초에 출발시키지 않았을 거다. 엔딩이 비극적인 건 이 비극을 넘어서야 희망이 온다고 보기 때문이다. 비극의 다음 페이지는 희망이다. 비극의 정점이 나올 때 우리가 고민하는 걸 볼 수 있는 거다. 다시 말하자면, 물론 이 엔딩은 뻔한 결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토록 적나라해야만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된다." 나는 이 말에 관해 꽤 오래 생각했다.
5.
그때 그 인터뷰 이후 2년 지나 미투가 터졌을 때, 김기덕은 그가 저지른 추악한 행태를 고발한 방송사 제작진에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 메시지 중 이런 부분이 있다. "저는 영화감독이라는 지위로 개인적 욕구를 채운 적이 없고 항상 그 점을 생각하며 영화를 찍었습니다. (중략) 서로에 대한 호감으로 만나고 서로의 동의 하에 육체적인 교감을 나눈 적은 있습니다. 이것 또한 가정을 가진 사람으로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고 후회하고 있습니다."
6.
김기덕의 이 메시지를 본 뒤 좌절을 느꼈다. 내겐 그의 영화를 보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했다. 얼굴을 찡그리게 하고, 몸을 뒤틀게하는 그 이야기와 이미지는 어떤 영화에서도 본 적 없는 것이었다. 불편했지만, 존중했다. 그런데 그가 방송사에 보냈다는 그 메시지는 성폭력 가해자의 전형적인 변명과 단 한 마디도 빠짐없이 일치했다. 불편했고, 도저히 그를 존중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