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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빈 Apr 08. 2021

눈물이 터지기 직전의 마음으로  떠도는 삶

<노매드랜드>에 관한 생각들


1.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얼굴이 곧 <노매드랜드>다. 아무 표정도 없는 얼굴에 고독과 외로움과 회한과 슬픔 그리고 의지와 희망이 다 있다. 그 무표정이 곧 영화다. 그 얼굴을 보면서 난 몇 번이나 몸을 비틀었다.


2.

<노매드랜드>에는 울음이 터지기 직전의 마음같은 게 있다. 그런데 그대로 울면 안 될 것 같고, 그렇게 울고만 있다가는 정말 모든 게 다 무너져 내릴 것 같아서 길을 떠난 사람들이 있다. 펀(프랜시스 맥도먼드)도 그런 사람이다. 살기 위해서, 펀은 캠핑카를 몰고 세상 여기저기를 떠돈다. 캠핑카에서 먹고 자며 삶을 즐기는 낭만? 그 딴 건 없다. 죽어버릴 순 없으니까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데, 삶을 살아내는 방법이 유랑인 것이다.


3.

불같은 의지로 나를 일으켜 세워야 하지 않느냐고? 가계 경제는 파탄났고, 남편은 죽었다. 여전히 일을 할 수 있는 나이인데, 받아주는 곳은 거의 없다. 삶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모두 박살났는데, 여기에 어떤 동력이 있을 수 있나. 왜 반드시 일으켜 세워야 하나. 그냥 살아간다. 살아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움직이고 또 움직인다. 내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이라면 희망인 걸까. 잘 모르겠다.


4.

<노매드랜드>에는 느슨하지만 강한 연대가 있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똘똘 뭉쳐 삶을 헤쳐나간다는 게 아니다. 내 외로움과 고독과 살픔은 전부 내 몫이다. 다만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이 존재함을 알고, 그런 이들과 가끔 교류하며, 그래도 그들을 결코 잊지 않는다. “See you down the road.” 이 말이 위안이다.


5.

시 같은 영화가 있고, 소설 같은 영화가 있고, 수필 같은 영화가 있고, 탐사보도와 같은 영화가 있다. <노매드랜드>는 '스케치 기사' 같은 영화다. '지켜보는 자의 감정을 자제한 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는다.' 착즙한 듯한 눈물이나 위로해주고 말겠다는 식의 위로, 널뛰는 감정 변화 같은 건 없다. 그저 묵묵히 바라보고 열심히 기록할 뿐이다. 클로이 자오는 <노매드랜드>를 실제로 이렇게 찍었다. 이건 진실된 영화다. 그래서 좋아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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