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는 이민자 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1.
<미나리>는 감동적이라기보다 흥미롭다. 이 영화가 이 영화를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핵심적인 두 단어인 '이민자 가족의 고단한 삶'과 '가족 영화'를 철저히 비껴가고 있기 때문이다.
2.
우선 하나 짚고 넘어가자. 이들의 삶이 고단해진 건 이들이 이민자이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제이콥은 병아리 감별에 특출난 재능을 가진 남자였다. 그 일을 계속했다면 이 한인 가족은 별 문제 없이 캘리포니아에 정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이콥은 스스로 농사를 지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려고 기어코 아칸소 깡촌으로 갔다. 이 고난은 스스로 만든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이 이민자인 건 맞지만, 그들이 이민자라서 삶이 힘든 게 아니라는 것이다. 안정적일 수 있는 삶을 걷어차고 말 그대로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는 길을 택한 건 바로 그들이다. 게다가 삶은 원래 호락호락하지 않다.
3.
가족이 등장하지만, 가족을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 <미나리>를 가족 영화로 부르는 데 주저하게 된다. 도전과 성취의 제이콥(남편), 안정과 믿음의 모니카(아내)가 대립하는 건 뻔한 설정. 만약 이 작품의 주인공이 두 사람이었다면, 이 영화는 매력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이삭 감독은 이 부부를 배경으로 둔 채 두 개의 이상한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바로 순자(윤여정)와 폴(윌 패튼)이다. 그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4.
언뜻 보면 이 두 캐릭터는 제이콥·모니카 가족 서사의 주변 인물로 보인다. 영화적 역할로 보자면 너무 진지해질 수 있는 이야기에 활기를 넣어주는 감초랄까. 그런데 그냥 감초라고 하기엔 두 사람이 이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 그러니까 <미나리>는 어쩌면 순자와 폴에 관한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순자와 폴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면 정이삭 감독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지 않을까.
5.
순자와 폴은 제이콥·모니카 가족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보인다. 순자가 한국의 신이라면, 폴은 미국의 신. 딸의 집에 온 순자가 뒷짐을 진 채 유유자적 풀밭을 거닐며 각종 명언을 뱉어내는 모습을 보라. 종교에 관한 지식이 부족해 명확히 정의하긴 힘들지만, 순자의 발언은 마치 노자의 그것과 비슷해 보인다. 미국의 신 폴은 예수다(이건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 폴이 주일마다 십자가를 어깨에 짊어지고 걷는 모습은 마치 예수가 십자가를 들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던 모습과 똑같지 않은가.
6.
순자와 폴은 제이콥에겐 노동력을, 모니카에겐 믿음을 제공한다. 순자는 부부의 아이들을 돌보고, 폴은 제이콥의 농사일을 돕는다. 순자는 이들 가족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고, 폴은 교회의 역할을 하며 신앙 그 자체가 된다. <미나리>는 이 가족이 어떻게 그들에게 닥친 고난을 극복하는지엔 관심이 없다. 이들은 그들에게 닥친 시련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애초에 믿고 있다. 왜냐. 그들에겐 그들을 지켜주는 신들이 있기 때문이다. '갓 블레스 유.'
7.
<미나리>는 <무비고어> 다음 호에서 길게 다루게 될 것이다. 그때 더 자세히 얘기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