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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런 Sep 21. 2022

팀장님이 말했다
일하다 죽을 것 같다고

피로사회로 본 <할 수 있다>는 말의 잔혹성

 “각 시대는 시대마다의 고유한 질병이 있다”

14세기 흑사병, 17세기 페스트. 우리 시대의 고유한 질병은 코로나일까? 아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로 고통받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코로나는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인류는 바이러스처럼 외부인자에 의해 감염되는 질병을 상당수 극복해왔다. 그리고 이는 생물학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문화적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낯선 외부 인자를 막는 면역력처럼 다른 외부 요인을 금기시하는 규율 사회의 탈피는 이미 오래전에 시작됐다. 이를테면 유태인, 장애인, 외국인들을 바이러스처럼 제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사라졌듯이 말이다. 그럼 우리 사회의 고유한 질병은 무엇일까. 규율이 사라진 자유로운 현대 사회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나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교활하고 날카로운 희망적 가능성이 수많은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


책 <피로사회>는 현대인의 만성 피로와 우울증, 번아웃과 같은 신경적 질환은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고찰이 담겨있다. 지친 사람에게 힘내라며 응원하고, 갈피를 못 잡는 사람에게 자기계발 서적을 건네주며, 자극이 되는 동기부여 영상이 알고리즘을 뒤덮은 현대 사회는 피상적으로 보기엔 자유롭고 열정적이다. 하지만 저자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과잉 긍정성이 때로는 폭력이 될 수 있다고 꼬집는다. 나에게는 쉬워보이지만 누군가는 죽어도 할 수 없을 수 있고 나에겐 역치 아래의 피로가 누군가에겐 역치를 초월한 피로일 수 있다. 그럼에도 광고 속 수많은 카피들은 누구나 영어를 쉽게 잘할 수 있다고 속이고 누구나 쉽게 투자로 돈을 벌 수 있다고 기만한다. 그 교활한 ‘누구나 할 수 있음’에 속은 사람들은 또 누구나 노력으로 서울대를 갈 수 있다고, 수십억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그 결과 지쳐 쉬는 사람들은 의지가 박약한 아웃사이더가 되고 도중에 포기하는 사람들은 낙오자로 낙인 찍힌다. 그 굴레속에서 우리는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긍정성이 주는 폭력을 채찍 삼아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다시 억지로 힘내게 된다.


올리브 헉슬리의 책 멋진 신세계에는 과학기술로 고난과 불행이 사라져버린 세계가 나온다. 그 곳에서 존은 인간이 다시금 불행을 느낄 모든 권리를 요구한다. 추해질 권리, 암에 걸릴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릴 권리를. 인간 존재의 가치는 행복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슬프고 화나고 불행한 모든 순간에도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발휘한다. ‘과학 기술이 주는 행복의 말로는 유토피아일까’에 대한 회의감으로 점철된 소설 속에서 무한 긍정의 현대사회가 오버랩되어 보였다.


과잉 긍정성으로 서로를 채찍질하는 우리 사회에도 필요하다. 지쳐 쉴 권리, 게을러질 권리,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권리, 불가능은 불가능하다고 인정할 권리, 포기할 권리가.


어쩌면 자유는 최악의 억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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