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알림 서비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낯익은 이름이 보입니다. 멈칫합니다.
‘아, 오늘이 이 사람 생일인가 보네.’
SNS 생일 알림 서비스네요. 고깔모자가 씌워진 이름을 물끄러미 들여다봅니다.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선물도 보내고 안부도 전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될까요. 잠시 그 이름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이름을 바라봅니다. 이번엔 한참동안이나요.
만난 지 오래된 이름입니다. 한때는 친하게 지내며 교류했던 사람이지만 안 본 지 한참 되었습니다. 어떤 집단에 소속되는 기간이 만료되어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입니다. 혹자는 이런 상황을 두고 인연이 다했다고도 하더군요.
잘 사나 싶으면서 그때를 떠올리며 피식 웃습니다. 그러다 문득 찜찜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요. 지난 일이 좋은 기억만 있는 건 아닙니다. 일상적인 기억들이 스쳐지나가듯 하나 둘 재생이 되면 ‘그때 내가 잘못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기 마련입니다. 나 때문에 속상했을지도 몰라서요. 지나고 나면 왜인지 잘해준 기억보다는 못해준 일들이 더 자주 떠오를까요.
머뭇거리다 창을 닫는 일도 생겼습니다. ‘잘 지내겠지.’ 생각하면서요.
그 사람도 어디선가 이 벚꽃비를 보면서 감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장면을 떠올립니다. 오늘 같은 휴일에 제가 아는 이들이 각자 다른 장소에서 꽃이 핀 나무를 올려다보는 상상을요. 그거면 충분하니까요. 만나진 않더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무탈하게 지내는 일. 그거면 되었다 생각해요.
한때는 저는 내 생일 알림을 꺼두기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SNS에 떠오른 제 이름을 보면서도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훨씬 많겠지만 저처럼 머뭇거릴 사람도 있을 것 같아서요.
저도 수많은 인연들 사이에서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어떤 사람이겠죠. 제가 당신을 망설이게 하는 사람이라는 건 약간 탐탁찮은 기분이 드는 일입니다. 흔적을 남기는 일이 싫어지고 맙니다. 못났죠.
몇 년 전 어느 날부터 알림을 켜두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한 친구가 연락을 한 후였죠. 잘 지내냐고 연락을 했더라고요. 제 생일이 지난 며칠 뒤였어요.
“벚꽃 피던 날, 벚꽃색깔 음료를 마신다고 딸기셰이크 주문하던 네가 생각했다.”
“내가 그랬어?”
벚꽃비가 내리는 날들 사이에 제 생일이 있거든요. 유치했네요. 약간의 어색함도 잠시, 반가워서 한참을 메시지를 주고받았습니다. 나중에 또 연락하자고 인사한 하루는 굉장히 신이 나더라고요. 무언가 말할 수 없이 즐겁고 기운이 났어요.
아예 잊히고 싶지는 않았나 봐요. 기억되는 게 부담이라 생각했는데 누군가 저를 기억해 주니 좋더라고요. 그이가 기억하는 좋았던 시절 사이에 제가 끼어있다니 아름답게 기억될지도 모른다는 사소한 희망이 생기더라고요. 한 사람의 인생에서 기억될 만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는 게 뿌듯하더라고요.
저는 그냥 ‘다한 인연’이라는 말 앞에 소심했던 한 사람일 뿐이었던 거예요. 아예 사라지고 싶지 않은 모순된 마음이 들켜버린 거 같았어요.
불쑥 나타나서 ‘우리 그때 참 재밌지 않았어?’라고 얘기 나누고픈 사람들이 분명 있어요. 실례일지 모르지만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괜찮을지도 몰라서요. 부담 없이 서로에게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요. 그래서 용기 내어 알림을 켜둡니다. 흘러가버린 시간들을 다시 연결할 수 있을지도 몰라서요.
다한 인연도 분명 있겠지만, 접점에서 다시 시작할 인연도 있을 수 있잖아요. 이곳은 종점이니 변화할 것 없을 거라 믿어왔던 지하철 노선이 다시 연결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 인연이 쭉쭉 뻗어 나가다 어디선가 교차할 가능성을 지니듯 말이죠.
오늘은 제 이름이 SNS에서 안부를 물어주길 기다리며 불쑥 모습을 드러냈을 거예요. 말하자면, 그러니까, 쑥스럽지만 제 생일이거든요.
이상하게도 세상에 태어나 거쳐 간 수십 번의 생일들에는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덤덤한 마음으로 반응하게 되네요. 떠들썩한 무얼 기대하지도 않고, 친구와의 약속을 잡지도 않아요. 대신 단정한 원피스를 골라 입고 단정하게 걷겠다고 다짐합니다. 오늘 하루를 감사하며 보내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이만큼이나 살 수 있어서 다시 생일을 맞이하는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어나서 많은 것들을 누리고 느낄 수 있다는 게요. 어른이 되는 이 순간까지 가깝고 먼 사람들 사이에서 잘 지내고 있지요. 나만 생각하는 날들도 있었으나 어쩌면 당신이 있어 내가 더 나인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혼자서 다 한 것 같지만 혼자서는 절대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는 것도 지금은 알 것 같습니다.
벚꽃 피는 기간에 생일이 들어있어서일까요, 벚꽃의 탄생이 올해는 언제쯤일지 두근대며 가늠해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이 시기는 미묘하게 점점 앞당겨지고 있어요. 어릴 때의 생일날에는 벚꽃이 피려고 이제 막 꽃망울을 준비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는데요, 어른이 된 지금에는 벚꽃이 하늘하늘 떨어지는 때가 되어야 생일을 맞습니다.
벚꽃이 떨어지는 시기가 생일보다 점점 빨라진다는 걸 깨달을 때면 이 순간이 소중해지기도 합니다. 아마도 할머니가 된 훗날에는 벚꽃이 피었다 몽땅 저버려 기억으로 남겨진 후에야 생일에 도착할지도 모르죠. 혹시 아나요, 벚꽃이 사라질지요.
그리하여 이제 저는 연락을 기다리기보다는 고마웠던 이들을 떠올리며 안부를 먼저 전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내 생일이라 당신 생각이 났습니다. 곁에서 함께 해주어서 고맙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우리가 만났다는 걸 조금은 실감하면서 다시 벚꽃비를 봅니다. 시간의 조각조각을 연결하는 마음으로요. 아직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요.
22. 06. 13. 박태이
(두달전 생일 무렵에 떠올랐던 생각들을 글로 적어보았습니다. )
* 글쓰기와 사랑을 주제로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글쓰기란 자신을 다듬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쉽지는 않지만 글쓰기에 대한 사랑, 그리고 살아가는 날들에 나에 대한 사랑과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씁니다.
인스타그램에 생활 속에서 느낀 점을 책 속 한 문장과 함께 전하고 있습니다. -박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