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에
그 해의 여름 체육 시간에는 피구를 자주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다.
운동장에 흰색 선이 네모로 두 칸 그어져 있고, 공을 가져오면 막강한 실력의 두 여자 아이가 가위 바위 보를 해서 공을 선점한다. 심판은 있으되 동네 경기에서는 없어도 경기는 제대로 진행된다. 공을 맞은 자는 이미 소리와 함께 표정에서 아픈 티가 역력하고, 대부분은 공이 맞으면 자진해서 금 밖으로 나온다. 거기서 보고 있는 증인은 본인 외 모두이기 때문이다. 공이 본인도 모르게 스쳐가 애매한 경우에도 눈을 부릅뜬 채 셋, 넷의 아이들이 공만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버티기도 통하지 않는다.
규칙을 어기는 선수들이 있을 때면 상대편 아이들은 눈빛이 무섭게 순식간에 변한 다음 동시에 크게 외쳤다.
"야, 죽어! 죽으라고!"
그 말을 들으며 나는 피구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경기인가 생각했다. ‘다 죽여야’ 끝나는 경기였으며 금을 밟으면 경기에 설 기회를 박탈당했다. 그러니까, ‘다시 한 번’이라든가 회생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경기였다. 동시에 그건 어디까지나 걸어가다가도 맨땅이 넘어지는 몸치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바로 나. 애초부터 스포츠 정신과는 담벼락을 에펠탑 수준으로 쌓은 게 틀림없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공을 맞아서 아픈 일이 싫고, 그래서 날아오는 공이 무서운 겁쟁이였던 나는 피구를 할 때마다 '숨은 인간'이 되었다. 키도 크고 힘도 센 저 친구가 앞에서 선제공격을 날리며 공을 던지고 다시 점프해서 잡아오는 동안, 앞쪽은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뒤쪽도 아니고, 아이들 무리의 중간 어디쯤에 숨어서 아무도 아닌 체 공을 피하는 사람 말이다.
그건 나름대로 치밀한 계산과 경험으로 결정된 자리였다. 너무 뒤쪽에 있으면 수비라인에게 바로 아웃될 수 있고 앞쪽은 공격이 가능해야 하므로 당연히 나 같은 이가 낄 계제가 아니다. 같은 편 친구들은 아웃당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공을 잡았다. 다 나 같지는 않다는 명료한 사실 때문에 그 장면은 늘 인상적이었다.
용기가 없는 나 같은 사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기술은 '피하기'다. 공중을 날아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는 공에 시선을 고정해 두고 몸을 이리저리 피한다. 어쭙잖게 공을 잡으려 들었다가 놓쳐서 내야에 있는 팀원을 둘셋 연속으로 죽일 수도 있다. 내가 잘 못해서 남도 같이 죽을지도 모르는 일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여럿 사이에서 한참을 정신없이 피하다 보면 소수의 무리가 남아 있다. 나는 대부분 생존해서 그 무리 사이에 끼어 있다. 마지막까지 남은 건 실력이 아니었다. 공을 잡을 용기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용기는 치열한 목표보다 제일 싫은 걸 피하려고 나타나기도 한다.
숨어 있다가 비로소 최후에 남은 사람이 되면 나는 그 애의 시선을 느꼈다. 그 애가 나를 보고 있다는 걸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그 남자애는 작년부터 같은 반이고, 남자애들이랑만 놀고,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면서부터 팀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누가 들어도 알 수 있게 격정적으로 주장하고 나서, 마지막 숟가락을 입에 넣자마자 우물거리며 운동장으로 축구를 하러 뛰쳐나가는 애였다.
나는 그 애가 얼마큼 축구를 잘하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남자애들이 걔를 축구하자고 줄줄 따라다닌다는 건 알았다. 13살의 나는 그 애를 보러 운동장 스탠드를 어슬렁거렸다. 좁은 운동장은 여러 학년의 남학생들이 만든 축구팀들로 어지럽게 섞여 있는 가운데에서 그 애를 찾아낼 수 있었다. 나는 보지 않는 척하면서도 걔를 볼 수 있었다. 그건 이상하게도 쉬웠다.
그날도 나는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여자애들끼리 깔깔 대며 웃었다. 좋아한다고 말도 못하며 숨어 있으면서도 그 애에게 들릴 만큼 일부러 크게 웃고, 또 웃곤 했다. 그러다가 종이 쳐서 교실로 들어가다가 다른 남자애가 찬 공의 포물선 안으로 끌려들 듯이 자연스레 입장했고, 곧이어 뒤통수를 엄청 세게 얻어맞고는 눈물이 핑 돌았다.
나를 맞췄던 그 안경을 끼고 파란 옷을 입었던 남자애는 "그것도 못 피하냐?"하고 싱글싱글 날 놀렸고 저 멀리서 보이던 그 애는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는데 곧 고개를 돌려 자기 갈 길을 가버렸다. 그게 알 수 없이 서러워서 더 눈물이 났고 "우냐?"라고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내가 피구판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일은 어쩌면 예외스러운 것이었다. 정면에서 다시 측면에서, 미처 몸을 돌리기도 전에 다시 뒤쪽에서 오는 공을 피하면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일은 몹시 숨이 찼다. 그러고 있자면 그 애는 축구나 농구 같은 경기를 하다 말고 짬짬이 나를 봤다. 즐겁게 나는 더 열심히 공으로부터 도망 다녔다. 살벌한 눈빛들 사이에서 조금 더 오래, 그 애가 나를 보는 걸 보고 싶었다.
어디서든 가장 멀고,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가까운 정중앙에서, 다시 사각지대로, 다시 반대편 턴. 공이 펼쳐지는 방향을 확인하는 정신없이 반대 편으로 움직이며 이게 모두 앞에서 추는 황홀한 춤이 아닐까 생각하는 어느 사이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면 경기는 끝나 있었다.
1회, 2회, 연이은 경기들이 거듭되면서 나는 어느새 포지션 쪽으로는 일명 잘 피하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팀을 꾸릴 때면 조장이 나를 훑어보며 이렇게 말했다.
"너는 잘 피하니까 안으로."
그럼 나는 결연한 의지에 가득 차서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의 룰과는 다를지언정 더 잘 피하자는 마음으로 패스하며 일 년을 지내다 보니 6학년의 겨울이 찾아왔다.
돌아보니 피구 경기는 그나마 나를 초라하지 않게 만들어준 종목이었다. 그 애 앞에서나 또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활에 있어서도 그랬다. 그 애랑 말 한마디를 못해보면서 마음 속에 좋아하는 마음을 곱게 접은 종이로 간직하고 있는 게 무슨 소용이람.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어쩔 줄 모르는 억울함이 치솟아 올라왔지만 그래도 그 애 앞에서 잘하는 게 하나쯤은 있었다는 점까지 생각이 미치면, 졸업 후에도 나를 아주 어줍잖은 쭈구리로 기억하고 있지는 않을 것만 같았다.
그 당시의 졸업은 세상의 끝과 같은 것이었다. 실은 졸업을 기점으로 아주 많은 것들이 새로 시작되지만, 그때만 해도 하나의 파트가 종결되었다고 여겨졌다. 끝이 무엇인지도,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면서 한없이 오늘같은 일상들이 이어질 것만 같은 기분으로 마지막을 맞이했다. 들뜨고 동시에 허전했다.
졸업을 하고도 그 애도 나도 특별히 변한 건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중학교에 배정받았는데 멀어진 거리만큼 모르는 걸 알게 되는 점도 있었다. 그 애는 이젠 축구는 하지 않는다고 했고, 학교 앞 학원을 다닌다고 했다.
무슨 여자 친구를 사귀었다고 했고, 또 어떤 여자애가 걔를 좋아한다고 했고, 그런 일들에 상관없이 나는 걔가 그리웠지만, 걔는 내가 더 이상 그립지 않았을 거고, 그런 짐작 안에서 우리는 여럿 사이에서 함께 만나는 일도 더러 겪으며 자라났다. 좋아함과 사랑함의 차이를 애매하게 찾아가기 시작했다. 사랑해도 싫어할 수 있음에 진저리가 날 때쯤 어떤 친구와는 연락이 끊겼고, 연락이 끊기는 친구가 점점 늘어나는 일에 익숙해지며 어른이 된 것만 같았다.
어른으로 살던 여름날 친구가 연락을 했다. 8월이라 무척 더운 데다 나는 막달이라서 배가 크게 부풀어 있었다. 나는 일자로 내려오는 초록의 임산부 치마 위에 줄무늬 나시티를 입고 아직 미혼인 그 친구를 만나기에 내가 초라해 보이지 않는지 거울을 보았다.
커피 전문점의 문을 열고 들어서 인사를 하고 앉는 순간, 나는 바로 대각선 테이블에 앉은 사람이 그 애라는 걸 알아봤다. 친구와 그간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여전히 나는 신경이 저쪽에 곤두서 있었다. 그 애를 마주 보지 않았으면서도 알았다. 흰 티만 입어도 청초한 저이가 와이프라는 걸. 그 애가 무슨 농담을 했는지 그 애의 부모님과 그 애의 와이프가 크게 모두 웃을 때면 나도 같이 웃었다. 내 쪽이 훨씬 재미있다는 듯이 친구를 향해 하하하, 소리를 크게 내며 웃었다.
그 애는 나를 봤을까. 무슨 생각을 할까. 나를 신경 쓸까. 계속해서 옷매무새를 다듬고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면서 동그란 언덕같은 내 배를 보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이상하고 또 낯설었다. 친구와 함께 먼저 가게를 나와 바닷가를 산책하러 갔다. 바다는 물이 빠져 멀리 보였고 우리는 신발을 벗고 물에 젖은 모래가 발을 간지럽히는 걸 느끼며 천천히 걸었다.
아직도 여전히 어디선가 그 애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몸 둘 바를 몰랐던 피구의 한 순간처럼 태연했다. 아마 그 애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서로 못하든 잘하든 해야 하는 순간에는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고 있을 거였다. 바다를 앞에 둔 모래사장에 더 이상 숨을 공간이 없어도 이제는 상관없었다. 우리는 이미 세상 속에서 피구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