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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이 Jul 24. 2022

다시 또다시

웃긴 게 아니라 좋은 거야  

 걔랑 손을 처음 잡았을 때가 여름이었을 것이다. 대학의 본관으로 올라가는 넓은 대로는 몇십 년을 그곳에서 자리를 지켰을 법한 초록의 나무들이 줄지어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햇빛-그늘-햇빛-그늘. 강렬한 햇빛을 피하려고 나무의 그림자들만 골라 밟으려 애쓰며 걸었다.

 

  걔는 나랑 나란히 걸어가다 말고 갑자기 손을 잡았다. 내가 걔를 올려다보자 걔는 무슨 새로운 일이라도 있냐는 듯이, 자기는 원래 해왔던 일을 묵묵히 행하듯이 아무렇지 않게 앞만 보며 걸었다. 꼭 잡은 손만은 놓지 않았다.      


  걔는 내가 처음 정식으로 연애해 본 사람이었다. 정식이라는 말에 다소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나긴 하지만, 내 말뜻은 고백-사귐-진전-멀어짐-이별의 단계를 모두 언어로서 차근차근 밟아나갔다는 뜻이다.


그게 중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수많은 사랑이 있다. 설레다 말아버리거나 고백도 이별도 없이 멀어져 버리는 연애들도 있다. 심지어 그게 사랑이라는 걸 지난 후에야 알기도 한다.


  무엇이든 곧바로 알아보며 한 번 잡은 것들을 놓치지 않으며 살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다들 알다시피 사는 게 그토록 뻔하게 되는 건 아니었다. 누가 잡았을 때 뿌리치기도 했고, 더러는 잡은 손을 상대가 먼저 놓기도 했다. 그보다는 아예 잡을 수 없었던 손이나 미처 손을 내밀지 못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여름에 걔가 손을 잡았을 때만큼은 그런 것들에 대해 모른 척했다. 슬쩍 힘을 빼는 척하면서도 손아귀를 절대로 다 풀지 않았다. 설레기도 했지만 잘난 척도 하며 영원히 그 손을 잡을 수 있을 것처럼 굴었다.     

 

  처음 해본 연애는 그 안에 수많은 처음을 포함했다. 저녁밥을 혼자 먹을 때 전화할 사람이 생겼다. 자기가 밥을 먹었으면서도 혼자 밥 먹지 말라고 건너편에 앉아주는 사람이 생겼다. 사진으로만 보던 풍경을 찾아가 실물로 보며 함께 감탄했다.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복숭아를 건네받으며 네가 생각나 샀다는 말을 들었다.


그 모든 일을 어렴풋하게나마 기억할 수 있는 건 처음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그 모든 게 귀엽게만 느껴지는 건 시간의 힘인지도 모르겠다.


  걔도 나만큼이나 떨렸고, 설렜고, 놀라웠는지는 잘 알 수 없다. 걔의 수줍은 표정은 기억나지만, 걔랑 했던 말은 딱히 떠오르는 대화가 없을 정도다.


걔는 내 앞에서는 대부분 무척 조심스러워했다.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일 친하다는 동네 친구와 같이 어울릴 때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유치하게 상대를 골려댔다.


  “야, 어제도 과제한다고 뻥 치고 나가서 술 먹고 들어왔냐~?”

  “그러는 너는, 어제도 게임방에서 밤샜냐 아이 이~?”


  말꼬리를 길게 빼며 약을 올렸다. 나와 있을 때는 볼 수 없는 신나고 후련한 표정이었다. 그러다 나를 보고는 둘 다 아차 싶은 표정을 짓고 입을 다물었다. 그게 못내 속상했다. 하긴 나도 걔네들 앞에서는 유독 얌전한 척을 했으니 아예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걔가 내 앞에서 편하게 굴어주었으면 했다.     

 

  나보다는 동네 친구와 더 친한 서운함 때문이었을까. 천연덕스러운 대화에 낄 만한 공통점이 없어서였을까. 걔에 대해 무엇이든 다 알고 싶은 마음의 발로였을까. 내가 모르는 걔의 모습을 다른 이들이 알고 있다는 게 이상하기도, 속상하기도 했다.


더 친해지면 언젠가는 그 친구보다도 걔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리라 다짐했지만 그건 먼 미래의 일이라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한편 우리는 내 친구이기도 하며 동기이기도 했던 영이와도 자주 어울렸다. 영이는 부산 사투리를 썼는데 그것이 재밌고 신선해서 우리는 매번 말투를 따라 했다.

  “밥 먹었나아↗?”

  “맞-나↘아? 그랬↗나↘아?”

  영이를 따라 하다 서로의 어색한 발음에 킬킬대며 웃었다. 또한 걔는 나 없이 단독으로도 근본도 없는 정체불명의 사투리를 구현하며 영이를 자주 놀렸다.

  “어제 내가 너 먹는 거 보고 깜짝 놀랐다 아이가↘ 다이어트한다는 애 맞-나아↘?”

  “내↗? 별↗로↘ 안 먹↗었는데↘? 그러는 너는-”

  화가 난 영이가 표준어와 사투리를 교묘하게 섞어 반박할 때면 걔는 또 어김없이 킬킬 웃었다.     

 

  문제는 나였다. 걔와 영이가 서로를 놀리며 웃고 있을 때면 나는 걔의 친구를 만날 때와는 다른 의미로 영 어색해졌다. 영이와 걔는 어째서 그토록 죽이 잘 맞는 것인가. 자꾸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혹시 걔가 영이를 더 좋아하는 건지 아닌지에 대해서 무수한 추측과 사연을 만들어내며 갈등했다.


스무 살 연애의 가장 큰 문제는 혼자 너무나 많은 생각을 한다는 데에 있다. 하지만 역시 그런 말은 대놓고 꺼내기엔 어려운 것이었다. 상대방에게 물어보기가 조심스럽고, 자기 마음을 알긴 알아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방법은 모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혼자서만 고민 속에서 허우적대다 못해, 결국엔 인터넷 상의 익명 게시판에 '내 친구랑 남자 친구가 서로 좋아하는 거 같나요?'와 같은 제목으로 글을 올리게 되는 것 같다.      


  실은 어느 날에 고민 끝에 조심조심 지나가는 척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긴 했다.

  “영이, 진짜 재밌지? 하하.”

  “응, 겁나 웃겨. 큭큭큭.”

  걔는 영이를 생각만 해도 웃기는지 금세 웃음을 참는 표정이 되었다.


  “그러게. (한참 뒤) 그런데…… 나는 웃기진 않지?”

  그 애는 내 질문을 듣고는 한참을 골똘히 말이 없다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웃기진 않지.”

  둘 다 잠시 말이 끊겼는데 그 애가 덧붙였다.

  “너는…… 웃긴 게 아니라, 좋은 거야.”         



  좋은 거야. 네가 좋은 거야.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걔를 웃겨주고 싶었다. 그런 욕심은 부릴 필요가 없었는데. 걔가 뭘 할 때마다 좋다고, 너무너무 네가 좋다는 말을 대신할 수 있는 큰 웃음을 지어줄 수도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세상에서 제일 못하는 것만 욕심을 냈다. 


웃기지도 않는 사람이 웃기고 싶다는 마음을 먹는 순간마다 조금씩 더 외로워져 갔다. 걔와 나 사이의 마음의 거리도 점차 건널 수 없는 강처럼 넓어져 갔다.      


  결국은, 말을 안 해도 알겠지만, 우리는 헤어졌다.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차츰 멀어져 갔다.  '오늘의 유머'나 '같이 있으면 재밌는 여자'를 백만 스물한 번쯤 검색했던 어느 때를 지나, 같이 있을 때 즐거운 다른 '걔'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어느 때도 지나 보내며 말이다.


매일을 봤던 사이가 일주일에 한 번만 보고, 그러다 한 달에 한 번이나 볼까 말까 하다가 어느새 시간이 지나니 걔는 내 인생에서도 없어도 무방한 사람이 되어갔다. 한때는 절대 없으면 안 된다고 믿었던 사람이 사라졌다. '소중하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자꾸만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우리는 어떻게 해도 서로를 다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내가 아니다. 우리가 매일 같이 만나 깔깔대며 웃었더라도 그런 날은 결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쓸쓸한 인정의 시간을 보낸 뒤, 더 이상 내가 못하는 것들을 찾지 않는다. 내게 주어진 사랑에겐 할 수 있는 것들을 잔뜩 해주고 싶어서다. 


  또한 곁에 걸어가는 누군가의 말을 한참 듣다가 이내 마주 보고 말할 것이다. 당신만의 사랑을 표현해주어서 좋다고. 조용조용한 내 사랑의 방식도 아껴줄 수 있겠느냐고.


그 말로 ‘이 사랑이 나는 참 좋다.’고 대신 고백한다는 걸 그이가 알아봐 준다면 절로 웃음이 날 것만 같다. 붙잡은 손을 놓을 일이 없을 거라고 믿으며 당신과 하나의 그늘을 만드는 일을 주저하지 않을 것 같다. 

다시 또다시.      



22. 07. 22. (금) 박태이


글쓰기로 가는 길

좋은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해서 말해주는 많은 교본들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아는 것,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 마음이 연결되어 어디론가 통하길,
그리하여 우리의 이야기가 필요한 누군가를 찾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박태이 @tae. i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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