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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이 Jul 31. 2022

별일 없는 밤, 설레도 될까

너의 꿈을 꾸었어  

그거 알아? 가끔 네 꿈을 꾼다는 거.


어젯밤엔 이 노래를 듣다 잠이 들었어. 아주 지쳐있는 날들에, 네가 했던 말을 대신할 노래야. 별일 없는 밤, 옆에 있다면 너와 같이 듣고 싶은 노래였어. 가사를 들려줄게.       


    

점점 좁아지던 골목의 막힌 끝에 서서

외투 위의 먼지를 털다 웃었어

벽에 기대어 앉으며 짐을 내려놓으니

한 줌의 희망이 그토록 무거웠구나

탓할 무언가를 애써 떠올려봐도

오직 나만의 어리석음 뿐이었네     


나 조금 누우면 안 될까

잠깐 잠들면 안 될까

날도 저무는데 아무도 없는데

나 조금 누우면 안 될까

이대로 잠들면 안 될까

따뜻한 꿈속에서 조금 쉬고 올 거야     


많은 게 달라지고 변하고 시들어 가고

애써 감춰온 나의 지친 마음도

더는 필요 없을 자존심을 내려놓으니

이젠 나 자신을 가엾어해도 되겠지

탓할 무언가를 애써 떠올려봐도

오직 나만의 어리석음 뿐이었네

못다 한 악수와 건배를 나누며

이제 와 뭘 어쩌겠냐고 웃으며 웃으며

모두 보고 싶다     


나 조금 누우면 안 될까

잠깐 잠들면 안 될까

날도 저무는데 아무도 없는데

나 조금 누우면 안 될까

이대로 잠들면 안 될까

따뜻한 꿈속에서

조금 쉬고 올 거야

-「잠」, 나이트 오프-                




처음에는 꿈인지도 몰라. 나는 어느 순간 당신이 내 곁에 다가와 있다는 걸 알아채지. 너는 익숙한 얼굴 그대로야. 짧은 머리를 단정히 빗어 넘겼고 긴 속눈썹 아래로 눈동자가 짙어.


아주 가까이에서 봐야 알 수 있었던 모습이지. 내가 좋아했던 그런 모습. 나 아닌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르기를 바랐던 모습.

      

나는 당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커져서 더 이상 마주 앉아 있지를 못해.  조심스럽게 그리고 더 이상의 공간이 파고들 수 없을 정도로 꽉 안아야 돼.


거창했던 인사가 끝나고 나면 비로소 나는 조금 당신과 떨어져 앉아 안부를 물어. 잘 있었다고 답할 거야. 무슨 일이 내게 일어났었는지는 결코 말해주지 않을 거야. 서로 마음 아픈 일 같은 건 만들 필요가 없으니까.


당신이 곧 가야 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거든. 왜냐하면 이미 당신 꿈을 수십 번도 넘게 꾸었기 때문이야.


그걸 깨닫는 순간에 슬퍼지고 말아. 날아온 화살처럼 다시 볼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어디선가 날아와 내게 딱 박혀. 촉촉한 눈물은 속눈썹 사이에서 배어나며 실감으로 다가와.



점점 잠에서 깨어나게 돼. 내가 일어났다는 걸 알면서도 여기서 깨기 싫어서 모르는 척 계속 눈을 질끈 감고 있지. 너랑 좀 더 함께 있고 싶어서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서 그러고 있는 거야. 그래도,


어김없이 아침이 왔나 봐. 감은 눈 위로 밝은 기운이 천천히 스며들고 어디선가 알람도 울리는 거야. 어쩔 수 없이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서 주변을 살펴봐. 내가 누워 있는 방을 둘러봐.

우스운 건 출근을 떠올리며 벌떡 일어나 기계적으로 화장실로 간다는 거지. 언제 꿈에서 당신을 봤느냐는 듯이 까맣게 잊고.


제멋대로인 얼굴을 보며 조금 한심한 기분이 든 채로 치약을 짜. 칫솔을 물면서 약간은 당당해지기도 해.

'이것 봐. 나는 언제든지 당신을 잊을 수 있어. 현실의 나는 당신이 없어도 잘 살잖아.'

젠체하는 기분으로 어깨를 으쓱거릴 수도 있어.





원래 나는 낮잠을 잘 자지 않는 아이잖아. 내가 너에게 자주 들었던 말 중에 제일 별로였던 말이 뭔 줄 알지? “좀 쉬어.”라는 거였어.      


그 말에 가끔 화를 낸 것 같기도 해. 대체 쉴 시간이 어디 있냐고 말이지. 응. 당신이 쉬라고 하는 말뜻을 안다고, 하지만 대체 나처럼 가진 것 없이 태어난 아이가 손에 하나라도 쥐려면 열심히 사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지. 그 말을 들은 너는 "그래도, "라고 하다가 말곤 했지.


그럼 나는 더 답답함에 더 화가 나서 그러는 거야. “거 봐. 너처럼 많이 갖고 태어난 아이는 알 수 없는 거야.”

가진 게 없어서 포기조차 어떤 걸 해야 할지 모른다고. 너는 내가 아니라서 내가 가진 절망을 영영 알 수 없다고 몰아세웠어.      




시간이 한참 지나서 요즘 나는 말이야. 안 그래. 시도 때도 없이 졸리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어. 낮잠이 자고 싶다고 항상 하루에도 몇 번씩 말하곤 해.


그뿐이 아니야. 낮에도 밤을 상상해. 이불 속에 들어가 두 다리를 뻗고 베갯머리를 한 번 고쳐보다 잠에 드는 거 말이야.


잠이 들 때 아주 조금씩 현실과 멀어지는 아득하고 아늑한 느낌을 사랑하게 되었어. 현실이 고달플수록, 피하고 싶은 게 많아질수록 점점 더 느긋해지고 결정을 미루게 돼.   

아주아주 오래 자고 싶어. 아무에게도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은 채로 아주 길게 길게.


그런 마음이 드는 날에 네가 좀 쉬라고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오르는 거야. 머뭇머뭇하며 '그래도'라는 접속어를 말했던 네가.       


말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아픔이 있잖아. 너도 정확히는 잘 몰라도 내가 힘들어하는 건 알았을 거야.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나마 꺼낸 말이 “좀 쉬어.”라는 말이었을 거라고 이제는 생각해.      


나는 네가 겪은 불행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거야. 아주 오래도록 힘을 내려고 노력하면서 해봐도 원하는 게 잘 되지 않았을 때 얼마나 너는 지쳤던 걸까.


절대로 우리를 가만두지 않는 인생이란 녀석이 어퍼컷을 날려대는 동안 너도 할 만큼 했었구나. 몰랐던 게 아니구나. 지쳐 나가떨어질 나의 의욕을 저 멀리까지 보고 있었구나.


내가 결코 '잘 안 되는 사람'에 속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어. 저렇게 열심히 살아도 크게 변한 게 없을까 봐 안타까워했던 그 맘을 짐작해 보기만 할 뿐이야. 이해받아야 할 때보다 먼저 도착한 어떤 이해는 공감받지 못할 수도 있었던 거야.



다시 노란 스마일이 그려진 욕실 슬리퍼를 끌고 세면대 앞으로 가. 원치 않던 아침이 왔으니. 따뜻한 물을 틀고 세수를 시작해. 눈가에 배어 나왔던 눈물들도 깨끗이 씻겨 내려가지. 수건에 얼굴을 톡톡 닦으며 기분이 상쾌해져.


잠을 자기 전에는 너를 생각하고, 잠을 자며 너를 그리워하고, 충분히 그리워한 덕분에 용기를 얻어.

한때 나를 믿어주었던 한 사람을 떠올리며 하루를 살아갈 힘을 내.


그 덕분에 이 아침에 결심할 수 있어.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자고. 누군가가 꿈에 나올 만큼 그리워할 일을 만들지 말자고. 그러니 오늘 하루는 가급적 웃어 보자고도 생각해. 일도 하고 쉬기도 하면서 웃기도 하면서 좋은 하루를 만들어야지.



저녁엔 이불속에서 한참을 꼼지락대다가 스르륵 잠이 들었으면 좋겠어. 아주 포근할 거야. 그런 날 혹시 네가 찾아온다면 안아줄 테니 푹 쉬라고 내가 먼저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아.

한없이 부족한 나지만 그래도 너와 그렇게 가만가만 서로를 조심스레 안고 잠들며 나는 비로소 너를 위로할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겠지. 널 진짜 생각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지.




22. 07. 31.(일) 박태이             




때론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며 글을 씁니다.


하루에 한 문장 @tae. i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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