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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이 Oct 10. 2022

<Ep.9> 진화

글태이는 장차 무엇이 될까 

 9. 누구를 닮고 싶었지만 결국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을까? 





글 쓰는 박태이, 즉 글태이는 며칠 전 “버지니아 울프와 자기만의 책상”에 대한 글을 써서 sns에 업데이트했다.      

다음날 저녁 글태이는 디엠에서 이런 글을 발견한다. 


“작가님도 버지니아 울프처럼 써주세요!”     


전설의 버지니아 울프. 그녀는 누구인가. 

그녀는 1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우리 곁에 없어도 곁에 있는 사람이다.      

글로 남아서 여성들의 글쓰기가 얼마나 변하고 있는지 꾸준히 곱씹게 만드는 불멸의 글을 썼다.      


버지니아 울프처럼 아무나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누구나 버지니아 울프처럼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사기캐릭터인 남편 레너드가 심지어 생활 전반을 조력해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뭐? 날더러 버지니아 울프처럼 써달라고?      

아무래도 저 말은 ‘하루키처럼 써주세요’라는 말 같다고 생각이 든다.      


글태이는 잠시 고뇌에 빠졌다가 이내 주먹을 불끈 쥐고 책상을 탕 내리친다. 

“대체 버지니아 울프처럼 쓰는 게 뭔데!” 

글태이는 울부짖고 싶어진다.      


글태이는 이에 대해 답글을 쓰기 시작한다. 

엄청 빠른 타이핑 속도다.      


실망시켜 죄송하지만 나는 아직 첫 책도 나오지 않은 한낱 초보 저자일 뿐이라는 내용이다. 

나는 버지니아 울프 같은 실력도 없지만 무엇보다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는 내용이다.    

  

얼마나 잘 먹고 살겠다는 의지를 담아 썼는지 분량이 지나치고 만다. 

이 정도면 피드 하나를 쓰고도 남는다 싶다.      


어쩐지 부끄러워진다. 다 쓸데없는 말이기도 하다. 덧글을 del 키를 길게 눌러 빠르게 지운다. 


다시 글태이는 깜박이는 커서를 바라본다.      

글태이는 다시 심호흡을 한다. 


이렇게 나는 첫 책도 나오기 전에 키보드 워리어가 되고야 마는가 .... 

어쩌자고 나는 지나가는 응원에 이토록 목숨을 거는 것인가 ....

하지만 어떤 말은 이유 있이 사람을 건드리기도 하는 법이다....     


글태이는 할 말이 순식간에 많아짐을 느낀다. 

쓰고 싶은 말이 머리 왼쪽과 오른쪽에서 번쩍이기 시작한다. 한글 파일을 딸각 딸각 열고 타이핑을 시작한다.

 ‘전광석화!’ 같은 속도다. 
 마구 쓰다 보니 순식간에 한 페이지가 완성된다.      


글태이를 다시 읽고는 이 글이 웃기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마치 ‘내가 버지니아 울프가 될 수 없는 이유’를 변명하는 글 같았기 때문이었다. 

꿈을 꿔본 적이 없음은 물론이요, 롤모델로 삼기에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왔으므로 당연한 결과였다.   

   

한숨을 쉬던 글태이의 머릿속에서는 별안간 이런 생각이 든다.    

‘근데 왜 ...나는 버지니아 울프처럼 쓸 수는 없지?’      

글태이는 이런 생각을 순식간에 하는 자신이 너무너무 웃기다고 생각한다. 

이 깨달음은 '너무'와 '정말'이라는 말을 남발해야 할 만큼 너무 갑작스러워서다.      


그렇담 글태이가 여태껏 원하는 건 무엇이었나. 

재밌게 쓰다가 언젠가는 더 나아지자는 막연함이었다. 
 

하지만 글태이는 오늘  깨닫는다. 

본인이 스스로 한계다, 거기까진 가지 못해. 라고 생각했던 지점이 있었다는 걸. 

글태이는 망설이면서도 조심스레 한 발자국을 더 디디려는 자신을 거기서 본다.      


열심히 하면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그 세계에 비벼볼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 것. 

그 마음은 더 나아지는 사람의 시작인 게 틀림없었다.      


글태이는 이렇게 디엠 하나로 오늘의 깨달음과 글 한 편을 남긴다. 충분히 만족할 만한 하루다.

 글태이는 맥주를 꿀꺽꿀꺽 마신다. 

“크!” 

기분이 좋아진다. 


아무래도 글태이는 점차 멋지게 진화할 모양이다. 

하늘을 보니 보름달이 둥실 떠 있다. 글태이는 보름달에 소원을 빌기 시작한다. 

"버지니아 울프처럼 쓰게 해주세요. 하루키처럼 쓰게 해주세요. 아, 100만부 팔리는 소설 쓰게 해주세요."

누구의 소원에도 공평한 추석이었다. 



-220909.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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