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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이 Oct 08. 2022

<Ep.1> 질 걸 알면서 왜 싸우는가

-현태이와 글태이의 등장- 

1. 질 걸 알면서 왜 싸우는가          



일요일에 한 번씩 글을 sns에 업데이트하는 나를 보고 온라인 세계의 이웃님들이 나를 칭찬해 주었다. 실은 1년 동안 한 줄도 쓰지 못했다가 꾸준히 쓰기로 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부끄러우면서 기쁘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칭찬이 가장 효과가 좋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중의 생활을 하고 있는 기분이다. 하나는 현실에서 일하며 돈 버는 박태이. 다른 하나는 글을 쓰려고 매일 노력하는 박태이다.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박태이를 아는 사람은 현실에서 일하는 박태이를 알지 못한다. 필명이기 때문이다. 


이 이름은 작명소에서 지은 것인데 언젠가는 개명을 해야지 하면서도 아직 하지 못했고 지어온 값이 아까워 결국 내 또 다른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박태이라는 이름은 불릴수록 마음에 든다. 만약 이 이름으로 내가 유명해진다면 아마 나는 작명을 믿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박태이(이하 글태이)를 위해서 현실에서 일하며 돈 버는 박태이(현태이)는 갖가지 희생을 하고 있다. 일단 가장 큰 희생은 잠이다. 7시간의 꿀 수면을 기적처럼 지켜왔지만 점점 개운하게 잔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던 현태이는 새벽에 일어나는 일에 도전하게 된다. 밤에 10시쯤 자고 새벽 5시에 일어나는 패턴이다. 이렇게 굳이 해야 했던 이유는 저녁에 시간을 쓸데없이 소진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매번 밤마다 어영부영 놀다가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는 통탄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 방식도 효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매일 주어진 한 시간으로 글을 완성하자니 집중하려는 참에 출근 준비를 해야 했다. 그래서 현태이는 언제부턴가는 잠을 쪼개서 잔다. 예를 들자면 일주일에 삼일 정도는 4-5시간을, 나머지 사일은 8-9시간을 자는 방식이다. 잠을 하루 기준이 아니라 일주일로 분할해 사용한다. 


이렇게 해서 글태이로 살아가는 시간에 좀 더 몰입해본다. 인생이 선택과 집중이라면 삼일은 글태이로, 사일은 현태이로 살아가는 일에 집중하는 셈이다. 삼일은 긴장을, 사일은 효율을 추구한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해?라고 묻는다면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다고 대답하고 싶다. 출퇴근을 반복하는 현태이는 퇴근 후를 위해서라면 시간을 구걸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뿐이다. 그녀에게는 수많은 사생활들이 있다. 현태이도, 글태이도 아닌 그 사이의 시간들이다.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고지서 납부 방법을 알려준다든지 은행에 간다든지 장을 본다든지 축의금을 낸다든지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모든 일들이 그 사이에 일어난다. 이 사생활들 역시 글태이로서 지내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후다닥 빨리 처리한다.      


어렵게 만들어낸 그 시간에 글태이는 글을 읽고, 글을 쓴다. 이 외롭고도 고요한 책상에 앉으면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고, 또 순식간에 사라져 간다. 웬만큼 빠르지 않으면 따라잡을 수 없다. 제아무리 짬에서 오는 바이브가 있다고 한들 이미 생활 전선에서 맹렬하게 싸워왔기 때문에 조금 지쳐 있는 것이다. 


사람은 질 걸 알면서도 왜 싸우는가. 내려올 걸 알면서도 왜 오르는가. 하고픈 말은 다 전달하지도 못하는데 왜 쓰는가.      


한 작가님의 글에서 (지금으로선 기억이 잘 안난다) 작가들은 영화나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에 비해 자기가 글을 쓰는 일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기 좋아한다는 내용을 읽었다. 다소 찔렸지만 글을 쓰는 자신에게 도취되어 있거나 하는 건 분명 아니다. 영화나 음악을 창작한 적이 없어 비교가 어렵긴 하지만 그저 짐작해 보건대 본인조차도 어째서 고독하고 힘든 작업을 지속하는지 스스로 설득하고 싶은 건 아닐까. 


글을 쓰면서 들었던 생각을 다시 써두고 싶을 만큼 왜 자신도 글을 쓰는지 때론 잘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알쏭달쏭한 자신을 잠시 떨어져 바라보는 일은 글태이에게 매우 재미있는 놀이 중의 하나다.      


오랫동안 글태이는 자신이 성실하기 때문에 쓴다고 생각해왔다. 불과 오늘 저녁까지만 해도 성실에 대해 믿고 있었던 것이다. 꾸준히 반복하는 힘이 가져다주는 효과를 믿으며 이 과정이 글태이를 더 낫게 만들 거라고 기운을 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다 보니 아니라는 걸 알겠다. 


글태이는 그냥 글을 쓰는 자기 자신이 좋은 것이다. 이 세상에서 하면 할수록 자신이 몹시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워지는 어떤 일이 있는데 그걸 포기할 바보는 없다.      


끝까지 고군분투하다 자신의 의지대로 생을 마감하는 인물로는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매기가 있다. 가족들의 부양에 중압감을 느끼면서도 복서가 되고 싶은 매기는 프랭키에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하지만 매기는 결국 프랭키에게 받아들여져 연습을 시작하고 마침내 링 위에 올라서 싸운다. 마지막엔 모든 과정이 허물어지듯 마무리되긴 하지만 그래도 매기는 자신이 싸우는 동안 모든 것을 다 가져봤다고 말한다.

      

어쩌면 글태이는 매기의 마음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싸우면서 모든 걸 가졌다는 그 말말이다. 아직 스파링 중일뿐 링에 오르지도 않은 글태이는 자세를 고쳐 앉는다. 살 길은 연습뿐이다. 마지막은 해피엔딩이라는 확신 아래 이 밤의 시간을 던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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