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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이 Oct 21. 2022

<Ep.3> 원더랜드로 가는 야근

나의 시간은 내가 묘사하는 대로 기억된다

3. 당신의 야근은 어떤 모습입니까  





현태이는 삼일 째 야근 중이다. 커피를 사발로 들이키며 버틴다.

다행스럽게 삼일 째의 야근 일정에는 아주 흥미로운 행사가 하나 있다. 강연 행사다. 현태이는 이른바 주최 측인 셈이다.      


와주시기로 한 K작가님은 일 년 중 대부분의 날들이 강연으로 잡혀 있다.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너무나 많다. 끊임없이 회자되는데도 직접 듣고 싶은 이야기도 있는 법이다. 현태이 역시 안 설레는 척하며 약간 설렌다.      


작가님이 도착하셨다. 긴장을 풀어드리기 위해 현태이는 씩 웃고는 쓸데없는 말을 건넨다.

“저 작가님 인친이에요!”

“네, 팔로우하시면 다 맞팔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은 철벽을 치셨지만 현태이는 아랑곳없다. 유명인과 인친이라는 건 역시나 즐거운 일이다.      


작가님의 강연은 재미가 있었다. 수백 번 얘기했더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겸손하게 전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작가가 될  예정인 현태이는 두 시간의 강연을 들으며 종종 심각해진다.

‘나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현태이는 나의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연 후 사람들은 줄을 지어 서 있다. 사인을 받고 작가님과 기념촬영을 한다.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촉박해지고 만다. 이럴 때 주최 측이 하는 일이란 참여한 대다수가 행복해지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현태이는 작가님에게 뚜벅뚜벅 다가가 말한다.      


“작가님,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작가님은 마음이 급하신 탓인지 이번에는 철벽을 치지 않으신다.


헤어지는 순간까지 작가님에게 너무 좋다고, 안녕히 가시라고 손을 흔드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현태이는 허둥지둥 차에 시동을 건다. 부르릉.


막상 도착해 보니 한 시간이 남았다. 현태이는 자신이 길치일 가능성까지 고려하여 시간을 계산했기 때문이다.      


기차역에 온 게 너무 오랜만인 현태이는 주변을 둘러본다. 집-직장-집, 집-직장-집, 공장에서 수십 년 같은 일을 반복해온 이와 다를 바 없이 현태이도 그렇게 반복하며 살아간다. 그런 건 문득 이렇게 루트에서 잠시 벗어난 다음에야 가능한 생각이다.


같은 반복을 하면서도 누구는 상상을 하고, 누구는 소진된다.      



가을밤의 공기는 너무나 아침처럼 청량하다. 가로등은 붉어가는 나뭇잎을 비춘다. 화단에는 갈색 나뭇잎으로 착각할 법한 달팽이들이 가을을 마중 나왔다. 기차에서 우르르 내린 이들은 흔적 없이 하나둘 사라진다.      

작가님은 이 황량한 역에서 막차를 기다리며 혼자 무엇을 할 것인가. 작가님이 초등학생도 아닌 마당에야 걱정도 팔자였다. 피곤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구와 같이 있고 싶어 할 가능성도 있다.      

현태이는 묻는다.


“차라도 한 잔 하시겠어요?”


작가님과 현태이는 간이 카페테리아에서 바나나 주스를 주문한다. 작가님과 현태이는 가로등 아래 화단에 나란히 걸터앉는다.


현태이는 양반다리를 하고 정류장에서 택시를 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작가님은 강연 중 왔던 밀린 연락에 회신을 시작한다. 작가님은 연락을 하고 다음 일정을 체크하는 동안 간간이 무언가를 묻는다. 현태이도 무언가를 묻는다.  


“나의 아저씨 보셨어요?”

“안 봤습니다. 오징어 게임 보셨어요?”

“아, 아직 못 봤어요.”

“저도 아직 못 봤습니다.”     


푸훕. 현태이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웃는다. 남들이 다 보는 대표작을 아직 안 본 사람이 있어서다. 그 공통점에 현태이는 순간 안도감도 든다. 쓰는 일만 좋아하는 자신이 가끔 초라하다 느꼈기 때문이다.      


이건 영감에 관한 질문이기도 했다. 상상력은 콘텐츠를 보거나 보지 않음에서 오는 건 아니었다.


상상이란 ‘-라면 어떨까?’라는 무수히 다른 가정을 던져보는 것이었다. 또한 그중 가장 답을 내릴 수 없는 쪽으로 우리를 몰아가는 일이기도 했다.      


현태이는 이 가을밤이 자신을 채운다는 생각이 든다. 밤, 가로등, 바나나 주스, 그리고 누군가를 마중 나와 기다리는 사람들. 인증샷은 없어도 나만 알고 싶은 비밀도 있다. 이날 밤은 현태이가 묘사하는 대로 기억된다.      


현태이는 오늘의 만남이 마치 기차를 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들어가는 곳>으로 걸어가 새로운 기차를 한참이나 탔다가, 다시 내려 <나가는 곳>을 통과했다.  

현태이는 이상한 나라가 아닌 원더랜드에 다녀왔다는 걸 비로소 안다. 현태이의 삼일째 야근은 무척 성공적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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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이”란 ‘현실의 박태이’를 뜻하는 이름입니다.

글을 쓰는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현실의 박태이도 소중한데요,

현실에서 글쓰기를 놓지 않고 생활에 담으려는 노력들이 거기 담겨 있습니다.

***놀러 오세요 @tae. i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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