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마음이 이상하다. 몽글몽글하니 피어올랐다가 다시 한숨과 함께 도르르 꺼지는 상승과 하강의 기운이 속에서 반복된다. ‘인생 뭐 있어?’하며 씩씩하게 걷다가도 ‘인생 뭘까...’하며 주룩주룩 내리는 비처럼 기분이 처진다. 출근을 하려고 잽싸게 가방을 움켜쥐고 밖으로 나와 보면 볼에 닿는 바람은 차고, 불현듯 감이 온다. 아뿔싸. 가을이구나. 그래서 그렇구나.
뜨거운 여름의 열기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 같지만 언젠가 더위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서늘한 기운은 코앞에 찾아와 있다. 가을은 생성보다는 소멸의 계절. 여기에 이견은 없다. 다만 소멸은 눈에 보이는 대상들이다. 사람의 속내음은 사라지는 것들이 스며들어 더 깊어지고, 깊은 것들이 이내 다져져 강해지지 않는가.
그러기에 한동안 내실 있게 살았는지 그렇지 못했는지 따져보는 계절이 나에게는 가을이 된다. 일을 새롭게 벌리기보다는 벌려놓은 일을 갈무리하기 시작하며, 한 해가 바뀌는 시기를 곧 앞두고 올 한 해 내 삶의 시간들이 아낌없이 지나갔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가을을 만끽한다는 기쁨은 주어진 시간들을 잘 보냈다는 자신감의 한 모습이기도 하지만, 다가올 겨울을 대비하는 마지막 시간이라 한시도 허투루 보낼 수 없다.
언젠가부터 가을은 점점 짧아져만 가고 정신 차려보면 추위는 찾아와 있는데, 그게 비단 환경적인 체감만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살아가는 모습과 닮아 있다. 철마다 맞이하는 찬바람은 어쩌면 익숙하고 더 의미를 두어야 할 반성과 준비의 시간도 덩달아 줄어들어만 간다. 계절은 바뀌어도 내일의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변명 안에서.
지금보다 어렸던 서른 살 언저리에는 가을쯤이 되면 사주팔자를 봤다. 젊은 사람이 뭘 그런 걸 보냐고 면박을 준더래도 할 말은 없지만 사실 젊어서 봤다. 너무 미래가 그려지지 않아서. 당장 내일도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지금 걷고 있는 길이 맞는지 또는 다른 길로 방향을 틀어봐야 하는지, 나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마땅히 내게 맞는 길을 찾은 건지. 연애는 실패하고 공부는 힘들었다.
같이 공부하던 언니에게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으니 우연인 듯 아닌 듯 전화번호를 하나 알려주었다. 소개팅은 아니었고, 사주팔자를 전화로 본다는 할아버지라고 했다. 자신도 궁금한 게 있을 때 전화를 해 본다며. 방으로 돌아와 한참 전화번호를 쳐다보았다.
그때만 해도 대면을 해야 마땅했는데 전화로 생년월일을 알려주며 이것저것 물어본다는 게 의심쩍었고, 태어난 날짜로 무언가가 정해져 있다는 점도 석연치 않았다. 맞는 말을 듣는대도 서글퍼질 것 같았고 틀린 말을 들어도 속상할 것 같았다. 맞는 말이라면 운명이 만든 꼭두각시가 나였고, 틀린 말이라면 시간을 들여 믿은 누군가가 거짓이 되어버리니 어느 상황이나 맘에 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앞서 말한 답답함이 결국엔 전화를 하게 만들었다.
그래 봐야 결국엔 전화였고 대한민국 국민 4천만 중 내가 누군지도 모를 것이다. 게다가 지인 소개잖아. 언니도 본다는 데 무슨 일이야 있겠어. 점도 아니고. 합당했다.
“2명에 2만 원.”
옆에 아무도 없을 때를 틈타 고심 끝에 걸었더니 할아버지가 대뜸 가격부터 흥정한다. 속으로 ‘싸네.’ 하는데 할아버지도 다 안다는 듯 그런다. “싸죠? 게다가 전화로 하니 을매나 편해. 얼굴 보면 서로 불편하잖아.” “아, 네.....” 더듬거리며 대답을 했다. “나이? 생일? 음. 밤에 태어났어요?” 그게 시작이었다.
고민거리를 묻기도 전에 할아버지는 시원시원하게 본인 할 말씀만 속사포로 뱉어내셨다. 다만 한결같지는 않았다. 툭 끊을 때도 있었고, 차분하게 궁금한 걸 더 물어보라고 할 때도 있었다. 결혼도 묻고 남자 친구도 묻고 내 욕심도 묻고 부모님도 물었다. 매번 같은 나이와 생일을 말하는데도 하는 이야기는 세밀하게 달랐다. 좋은 말은 반복적으로 들으면 기억이 되었고, 나쁜 말은 편견을 갖게도 만들었다.
가장 중요한 건 늘 처음 연락 온 사람처럼 대하셨다는 거다. 고민 상담의 핵심적인 룰은 익명성 보장 아닌가. 할아버지와 나는 전화가 끊기면 당분간 기억도 나지 않는, 그러니까 ‘2명에 2만 원’ 그 이상도 이하의 관계도 아니었지만 도리어 그것이 편한 사이였고 제삼자에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만으로도 이 상담은 성립할 수 있었다.
어느 사이 사주팔자 보는 할아버지에게 거는 전화가 줄었다. 원래도 자주는 아니었으나 가만히 돌이켜보니 벌써 몇 해는 지난 것 같다. 6년? 7년? 그렇다면 나는 일명 ‘운명’이라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나? 아주 긴 장애물 허들을 넘어온 듯이 시간도 훌쩍 뛰어넘어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은 다음에야 마음은 약간 편해졌다. 무엇을 하더라도 밥벌이하니 되었다. 각자 사는 모습 달라도 고민거리 하나 없이 사는 사람은 없는 법이더라. 세상에 당연하게 여기던 말들도 이제는 위로로 다가오고, 그 뻔한 말들로 나도 타인을 위로한다. 내일 일은 모르나 가급적 듣고 들어 경험치를 쌓아놓는다. 이런 게 나잇살이라면 그렇다. 인정한다.
게다가 요즘 내 생각의 범주는 ‘내’가 관건이 아니다. 나만 쳐다볼 겨를이 어디 있는가. 자식이고, 남편 건강이고, 직장 생활 안정 같은 종류나 떠올린다. 몸 편히 마음 편히 살고도 싶고, 옆에 생겨난 가족으로 범위가 확장되고 보니 생각할 게 오죽 많은가.
그래도 ‘나’를 아주 잊은 건 아니었다. 이유도 없이 싱숭생숭하고, 바다나 보러 가고 싶고, 주변이 아닌 나에게 시선이 돌아올 때, 왜 이러지 마음을 기웃거려보니 가을이었던 게다. 아이 키우는 지난 몇 년 간 가을은 내게 이불 빨래의 계절이었고, 옷장 정리의 계절이었다. 감기와 병원의 계절이었고, 낙엽 한 장 바스락 소리를 내자면 가을이 끝나 있었다. 그런 나에게 드디어 심난이 찾아왔다.
전화 속의 할아버지를 오랜만에 떠올린 것도 그래서였다. 딱히 궁금한 것도 없었지만 전화를 걸었다. 안부가 궁금했다고 하면 지나친 오지랖인가. 나이, 생년월일, 이체할게요. 통화 연결음을 들으며 머릿속으로 내가 해야 할 말들을 떠올려봤다. 툭. 걸걸한 기침과 함께 쉰 목소리가 “여보세요.” 전화를 받는다. 너무나 다른 목소리에 말문이 막혀 조심스레 상담 아직 하시느냐 여쭈니 짜낸 쇳소리로 “이제 안 합니다.” 겨우 답하고 딸깍 끊기는 전화다. 365일이 바퀴를 돈 게 벌써 몇 해 째인데 호탕한 응답을 기대했음이 되려 먹먹하게 만들었다. 크게 아프신게 아니기를 잠시나마 빌었다.
환절기의 옷장을 정리하고 이불을 세탁해 볕에 말린다. 건조기도 물론 좋지만 가을은 빨래하기 좋은 계절이기도 하니까. 힘겹던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떠오르자 지나간 시간이 또 한 번 스며든다. 7년 사이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 있나 다시금 곱씹어본다. 어차피 일과에 꽉 짜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그만큼 옴짝달싹하게 움직이게도 못할 무게감이 내가 둥실둥실 떠가지 않게 잡고도 있다.
일상을 사랑한다. 답을 내릴 수 없는 미완의 과제도, 막을 수 없는 시간의 힘도 심난하다. 그러나 일어나지 않을 고민마저 내가 쥐진 말자. 신만 아는 내일을 점치기보다는 나만 아는 오늘을 살자. 그것이 우리에게 최선이므로.
노랗고 뾰족한 칼처럼 가을볕은 매섭게 눈이 부시고 이불이 온몸으로 그 빛을 맞이할 수 있는 유일한 계절이 아닐까. 이 계절의 빨래 역시 여름을 정리하는 일이자 나에게 갖춰진 준비를 하는 의미다. 가을에 준비를 마쳐야 새로운 한 해도 각오를 다지며 출발할 수 있지 않겠나, 싶은. 물기를 머금은 하얀 이불이 비로소 마르면 바람에 일렁이듯이. 이제 누군가에게 맡겨 읽어냈던 내 운명같은 시간들을 내가 직접 읽어낼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