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태이 Oct 20. 2021

잘 지내겠지

  "잘 지내니?" 바다 근처에 사는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는 그 사이에 너무나 많은 일을 겪어서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쉽게 결정할 수 없다. 지금 당장 가장 하고 싶은 말부터 말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띄엄띄엄 전하는 그 친구의 행간을 읽으며 나는 그녀를 이해한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빠르게 안다. 그녀가 생각하는 게 옳은지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친구와 나는 일주일, 반 년, 일 년 불규칙적으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면서도 내 기저에는 그 친구가 한사코 오래도록 내 곁을 떠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그녀가 다소 예전과 다른 이야기를 하더라도 나는 그녀가 변했다고 생각하는 대신 예전에 내가 알던 사람과 같다는 확신을 받을 수 있고, 그 목소리는 내게 안정감을 준다. 그건 아주 이상하고도 든든한 기분이다. 그녀와의 대화는 그렇다. 이 세계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생동감 있게 진화하고 있다고 내게 말해준다. 


  반대로 매일 연락하고 안부를 물었으면서도 옆에서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진 사람도 있다. 매일같이 "오늘 잘 보냈어? 밥 먹었어?"라고 인사했는데 다음 날부터는 연락이 끊기고 그 모든 게 사라진 것이다. 


  둘 중 한 사람은 미리부터 마음을 접고 형식적인 인사만을 했던 게 분명했겠지만 그 당시에는 납득이 되지 않아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생각의 주제들은 좁혀 말하자면 ‘내가 아무리 잘못했기로서니 이건 아니지 않나.’로 귀결되는 종류들이었다. 


생각의 흐름은 주로 이러했다.      


1. 내가 좀 잘못하긴 했지. 2. 그래도 갑자기 도망쳐 버리다니.      

1.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2. 정말 이건 아니지 않나?      

1. 내가 그렇게 맘에 안 들었나. 2. 내가 뭘 어쨌다고!!      


의문으로 시작해 화로 끝나는 결말이었다. 나를 죄인으로 만들었다가 그를 죄인으로 만들었다가 둘 다를 바닥에 패대기쳤다. 하루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처럼 슬퍼했다가 다음 날은 그 인간을 잡다한 근거를 들어 천하의 쓰레기로 몰아갔다. 생각은 왔다 갔다 했다. 


아무리 데이트 상대였다고 할지라도 내가 그 사람에게 그토록 가벼운 존재였다는 걸 믿을 수 없었던 내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 꾹꾹 참고 참았던 기다림이 티 나지 않도록, 최대한 평범한 손놀림으로 숫자 버튼을 눌러 통화 연결음을 들었다.  연결음을 듣는 사이 그가 전화를 받으면 뭐라고 할지,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할지 고민했지만 그 사람은 결코 전화를 받지 않았다.  3번? 4번? 이별이라는 게 확실해졌을 때쯤에도 아주 조금은, 아닌 척하면서 그의 연락을 기다렸다.    


  

자존심도 상했지만 궁금도 했다. 그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내가 짐작하고 있었던 바와 일치하는지 아닌지. 게다가 사귄다는 관계를 유지하다가 밧줄을 끊어내듯이 나를 털어버리는 그 심정에 가장 크게 작용한 게 무언지, 얼마나 참았는지. 그리고 때론 미안하다는 말도 전하고 싶었다.     


 

실망, 허전함이 섞인 채로 나는 종종 벽에다 대고 혼자 연기인지 뭔지 그 사람에게 통화할 때 할 말을 연습처럼 자주 했다. 그러다 울기도 했고 간혹 이러는 내가 짜증이 났다가 괜찮다는 생각에 웃다가 잠이 들기도 했다. 꿈을 꾸는 동안 그이는 내 시간에서 사라져 갔다.      



시간은 대단히 훌륭한 능력자라서 잊는다는 착각을 우리에게 만들어준다. 나는 그가 내 생활에서 아주 없어졌다고 생각했지만, 몇 년 뒤 어떤 질문을 받고 그를 다시 떠올렸다. 그러니까 그저 기억은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었어도 해결되지 않은 감정은 한결같이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신기하게도 몇 년 뒤 떠올린 그는 연락이 없었을 때의 억울함, 창피함을 포함했으면서도 내 기억 속에서 저주할 사람이 아니라 그리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우리가 다투었을 때 내 마음을 읽고 우리 집 근처에 그이가 먼저 찾아왔던 기억, 먼저 말하지도 않았는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때, 나란히 걸었던 추운 겨울의 거리들이 세세해서 빙그레 웃음이 났다.     



그 순간에는 그가 나를 떠나 준 게 고맙게 느껴졌다. 피차 더러운 꼴 보이지 않고 싸움도 없이 깔끔하게 우리 관계는 끝이 나버렸으니까. 원망은 남더라도 마지막까지 가볼 필요도 없이 미래가 그려졌을 거라는 짐작을 해 본다. 


당시에는 무책임하게 여겼던 그 사람의 결정이 우리의 마지막을 평온하게 지켜준 셈이니 고맙게 생각되었다는 건 어찌 보면 아무리 시간이 흘렀어도 상당히 모순적인 결론이다. 그럼 어째서 그럴 수 있었나.      



그 연애를 떠올렸던 건 '과거의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였다. 우리는 둘 다 학생으로서 만기가 꽉 찬 시기를 지내고 있었다. 많은 일에 속앓이를 했고 미래까지 생각하기가 벅찼을 무렵이었는데 무엇이든 조급했다. 커피를 마시러 갈 때에도, 버스를 탈 때에도, 오로지 이 불확실성을 참고 있다는 마음뿐이었다. 아마 나는 그에게 못되게 굴었던 것 같고, 나 스스로에게도 그랬던 것 같다.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겠냐는 물음은 이기적으로 생각되었다.  그저 내일 일어나는 게 두려웠던 시간도 있었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은 너무나 멀리 있었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후에야 나는 그때의 나에게는 누구도 내게 들어올 수 없었다는 걸 알았다. 물론 기회의 신 같은 게 있다면, 끝까지 함께 남아 보는 쪽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우리는 어디까지 함께 할 수 있었을까. 수없는 고비를 넘기면서도 끊임없이 완전해지지 않는 관계를 탓하곤 했을까.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르기에 외출할 때에는 마지막인 것처럼 채비를 하고 나온다던 그 정갈한 사람이 허덕허덕 진흙탕에 빠진 듯한 연애를 하는 모습은 여전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 사람이 내게 보여준 신실한 태도, 철없던 내 행동들도 가볍게 넘겨준 마음들, 그로 인해 내가 누군가를 믿고 의지했던 시간들이 더 중요한 의미였다. 사랑은 내가 그이를 위해 온전히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절정을 맛보는 일인데, 그건 옆에 누가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그런 사람일 수 있느냐는 질문과도 일맥상통한다. 사랑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어느 누구와 관계를 맺으며 내가 조금 더 깊어졌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일이 되는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며 조금 더 눈에 보이는 결과 너머의 다른 감정들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해 두 해를 거듭하며 일상에 패턴이 생길수록 새로운 데에서 찾아오는 즐거움은 줄어들지만, 남아 있는 기쁜 일이라고 하면 기억을 다르게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 아닐까. 같은 기억들도 기분 나쁘게 느껴졌던 일들도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이토록 다른 의미가 되니 말이다. 



어쨌거나 그 사람에게 고마운 건 다시 연락할 여지까지 모두 없애주었다는 점일 것이다. 내가 먼저 이별을 고하 고도 사랑했던 사람의 눈빛을 잊지 못해서 아주 후에 연락해본 경험이 보통의 사람인 내게도 물론 있다. 잘 지내냐는 전화 정도는 할 수 있는 사이라고 혼자 단정한 뒤에 전화를 조심스레 걸었던 터였다. 적어도 당시의 나는 진지했고 그 사람과의 재회까지도 염두에 둔 연락이었으니 가벼운 손놀림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그는 신혼여행을 떠나기 위해 공항에 있었다. 


실수라 말하기도 해프닝이라 말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만약 연락을 해보지 않았다면 영원히 그는 내 상상 안에서 다정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내게 말을 걸었을 것이다. 그러니 오히려 한 통의 전화로 기억이 산산조각 난 게 더 이상의 욕심은 부리지 않게 되었으니 다행이었다. 


반대로 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내 세상에서 소멸되어 계속해서 저 깊은 안에 봉합되어 있다. 일부러 째서 재확인할 필요도 없이, 그럴 마음도 역시 생겨나지 않는다. 함께 걸었던 거리는 여전히 다정하지만 잘 지내겠지, 하는 믿음은 있어 고개만 까닥거린다. 


다시 연락할 기회를 압수당한 건 이별을 당한 사람에게 남은 크나큰 장점이 되는 것 같다. 이미 떠나간 사람에게 자신이 얼마나 추한 상대였을지 몸서리치게 떠올렸으니, 그 대신 끊어진 사이를 다시 어떻게 연결해보려는 무리한 행동을 먼저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리움이라면 충분한 관계도 있다. 

 

혹여나 만약 거리를 걷다가 그이를 다시 만난다 해도 못 알아볼지도 모른다. 지나친 후에 그이라고 생각되면 잠시 걸음을 멈출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고개라도 까닥 숙이며 가벼운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가득 찬 공상도 거기서 비로소 그치고야 만다. 


엄연히 세상은 생각보다 좁으니 내가 그이를 마음속에서 놓지 않으면 아예 일어나지 않을 일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사이에 인연은 시작의 맺음도 중요하지만 끊음도 매서워야 한다. 사랑으로 어려웠던 시절, 빛나던 시절은 내게서 잊혀도 그만이다. 우리를 살게 하는 건 빛남이나 추억이 아니라 매일의 하루이기 때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