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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Nov 26. 2021

[소울] 살아가는 것 그 자체로 의미 있음을

중요하지 않은 순간은 없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조금 쓸데없다 싶을 정도로 생각이 많았다. 그래서일까. 10대 시절 어느 순간부터 내 머릿속에는 의문이 생겼다. 부모님이 나를 낳아 주셨으니 이렇게 살아가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그렇다면 살아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단연코 중2 병에 걸린 것은 아니었다. 사고가 예민하고, 한 번 생각을 시작하면 끝도 없이 파고드는 성향 탓에 나는 꽤 오랜 시간 이 질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중 2병에 걸린 것까진 아니더라도 어쩌면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해 계속해서 반복되고 빡빡해지기만 하는 학교 생활에는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일단 공부를 왜 해야 되는지도 모르겠는데, 아무런 선택권 없이 기계적으로 등하교를 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의문이긴 했다.


그렇게 성인이 되고도 몇 년은 더 지난 시기까지 내가 살아가는, 살아가야 할 이유에 대한 질문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뾰족한 수도, 명확한 답도 없는 상황에서 나 역시 우선은 주변 사람들처럼 대학교에 진학하고 졸업 후 취업부터 했다. 은연중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지만 당장은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또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 뭘까. 어렸을 적부터 그림을 즐겨 그렸고 막연하게나마 상상력을 활용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 끝에 의상디자인 학과에 진학했지만 막상 졸업을 하고 일을 시작해 보니 내가 맞는 길을 찾아온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를 대학교에서 만났으니 그것만으로도 대학생 시기가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는 것과 별개로, 의상 관련 일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라는 확신은 더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이 뭔지도 모르는, 삶의 목적 따위 없는 나의 생활에 대한 고민을 한동안 이어 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친구들과 또래 회사 동료들 앞에서 홀린 사람처럼, 그리고 습관처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싶다고. 이후 철저한 계획 하에 회사를 박차고 나온 것도 아니고, 오로지 글만 쓰는 것도 아닌 비루한 투잡러 신세가 되었지만 어쨌든 나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때부터 더 이상 과거처럼 불안해한다거나,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말하자면 살아가야 할 이유를 마침내 찾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자면 제법 이상적인 전개라 할만하다. 하지만 사람 욕심이란 끝이 없는 법이고, 어느 순간 나는 객관적인 지표로 증명할 수 있는 성취를 원하게 됐다. 덕분에 안 그래도 성격이 급한 편인 나는 나 스스로를 밀어붙이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감정이 건조해지다 못해 나의 기분을 들여다보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 네가 있는 이곳이 바로 바다란다


뉴욕의 학교에서 음악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는 조 가드너(이하 조)는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자신만의 멋진 무대를 선보이고 싶은 마음에 항상 마음 한편에 아쉬움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학교에서 마침내 조에게 정규직 교사 자리를 제안했음에도 그는 전혀 기쁘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조는 자신의 옛 제자인 컬리의 소개로 동경하던 재즈 싱어 도로시아의 밴드 오디션을 보게 되고 결국 합격한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조는 뉴욕 거리 여기저기를 신이 나서 뛰어다니다 어이없게도 그만 맨홀 아래로 떨어져 그대로 죽고 만다. 다시 눈을 뜬 조가 도착한 곳은 영혼들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지내는 곳인 ‘유세미나’. 어떻게 잡은 기회이건만 이대로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기 싫었던 그는 어떻게든 탈출을 시도하지만 계속해서 실패한다. 그러다 조는 얼떨결에 세상에서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어린 영혼들의 멘토 역할을 맡게 되고, 그렇게 22와 만난다.


밴드 멤버로 합격해 기쁨을 만끽하는 조 / 유세미나에서 만난 22와 조


다른 영혼들이 지구에서의 삶의 목적이랄 수 있는 자신의 ‘불꽃’을 찾는데 적극적인 반면 22는 무얼 하든 시큰둥하다 못해 시니컬하다. 조는 그런 22에게 어떻게든 불꽃을 찾아 주고, 대신 지구로 갈 수 있는 그의 배지를 받기로 약속한다. 그러다 조와 22는 ‘어둠의 구역’에 당도하게 되고, 그곳에서 둘을 지구로 돌려보내 줄 수 있는 문윈드 선장을 만난다. 선장의 도움으로 조와 22는 마침내 지구에 도착하지만 조가 주문을 외우던 중 성급하게 뛰어드는 바람에 22가 조의 몸에, 그는 곁에 있던 치료용 고양이의 몸에 들어가고 만다. 고양이가 된 조는 어떻게든 자신의 몸에 들어간 22를 데리고 공연 준비를 시킨다. 그 과정에서 의욕 따위 없던 22는 새로운 것들을 하나둘씩 경험하면서 점점 더 지구에서의 시간을 사랑하게 된다.


몸에 영혼이 잘못 들어간 채 지구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22와 조


‘어쩌면 내 불꽃은 하늘 보기 일지 몰라. 아니면 걷기나.’


지구에 좀 더 머물고 싶어 하는 22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조의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진다. 그러다 결국 22는 자신을 찾고 있던 유세미나의 테리에게 붙잡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지구에 돌아온 조는 우여곡절 끝에 도로시아의 밴드 공연을 마치게 된다. 하지만 막상 자신이 꿈꿔 오던 대로 유명 밴드의 멤버로서 멋진 공연을 펼친 조는 생각만큼 행복하지 않아 당황스러워한다. 그런 조에게 도로시아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린 물고기가 나이 든 물고기에게 다가가 이렇게 물었다.

“전 바다라고 불리는 곳을 찾고 있어요.”

나이 든 물고기가 말했다.

“바다라고? 그건 바로 지금 네가 있는 곳이란다.”


조와 도로시아


영화 ‘소울’의 전개 내내 이 이야기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 듯 말 듯 헷갈렸던 나는 도로시아가 조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다. 도로시아가 조에게 건넨 말이 마치 나에게 하는 말인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도 계속 앞만 보고 달려온 다른 모든 어른들이 나와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 하루하루를 그저 살아가기


처음으로, 그리고 마침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때만 하더라도 인생의 모든 고민들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나에게도 인생을 살아가야 할 목적이자 목표가 생겼다는 기분에 뿌듯하기도 했다. 그러나 크고 작은 목표들을 하나씩 이루어 나갈 때마다 분명 기쁘지만 왠지 모르게 허전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기쁨이라는 감정 그 자체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이처럼 왠지 모를 허무함이 밀려올 때면 나는 습관적으로 그다음 목표를 설정했다. 이런 식으로 목표를 정하고 하나둘 성취해 나간다면 결국 궁극적인 행복이라는 감정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부지런한 성격인 데다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것을 싫어하는 탓에 내 최종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약속이 없는 날이면 계획표까지 짜 가며 생활했고, 외출을 해야 하는 날이면 일찍부터 일어나 나가기 전까지 뭐라도 더 하고, 글 몇 자라도 더 쓰고자 했다.


얼마간은 오로지 목표 하나만을 위해 내 생활과 욕구들을 통제하며 열심히 달려 나가는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잠시 멈추고 영화나 한 편 보고 싶다가도 참기 일쑤였으며, 잠깐이라도 누워서 뒹구는 일 따위 남의 일이었다. 충동적으로 약속을 잡는다거나 외출을 하는 일 역시도 안 될 말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작은 성취들이 쌓여 자존감을 얼마간 높여준 것은 사실이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인생이 재미도 없고 심지어는 건조하게 느껴졌다. 소소한 재미와 행복 대신 궁극의 재미와 행복을 위해 나의 최종 목표를 이루는 데 더욱 집중하리라 다짐해 보기도 했지만, 이 또한 정답은 아니란 사실을 결국 깨달았다. 나의 최종 목표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젊은 나이에 단기간에 이루기도 힘든 데다,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잃고 열심히만 살자니 오히려 앞이 더욱 캄캄하게 느껴진 때문이다.


영화 ‘라스트 홀리데이’ 덕분에 별로 중요하지 않더라도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미룰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영화 ‘소울’을 통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목적이나 목표가 반드시 필수는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마침내 22의 불꽃이 된, 그저 우리의 매일매일을 구성하는 각각의 순간들이야말로 인생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요소임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날씨가 좋아서 무작정 찾아간 공원의 평화로운 경치와 그걸 보고 느끼는 감정, 같이 누워만 있어도 그저 좋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게으른 시간, 길을 걷다 눈이 마주친 동네 고양이와의 짧은 찰나 등. 인생에서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는 건 분명 근사한 일이지만, 계속해서 더욱 크고 대단한 것만 바라면서 달려간다면 결국엔 지칠 수밖에 없다. 설령 원하는 바를 성취해 내더라도 더 이상 목표가 없는 이후의 인생은 분명 불안하기만 할 것이다.


유세미나에서 시간을 보내는 조와 22


영화 ‘소울’은 소소한 행복 따위 일부러 외면한 채, 정해 놓은 길만 무작정 달려가다 오히려  나아갈 방향을 잃을 뻔했던 나에게 달콤한 쉼표와도 같은 작품이 되어 주었다. 아마 많은 어른들이 이 영화를 보고 비슷한 감정을 공유했으리라 생각한다. 인생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은 시간은 없고, 당연하게 느껴지는 일이야 말로 삶에서 필수적이며 더욱 가치 있을지 모른다. 그저 시간이 흐르는 대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혹시 간절히 바라던 꿈을 놓친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잃은 것이 아니며, 마침내 꿈을 현실로 만들어 낸다고 해도 이 또한 모든 것을 얻은 것은 아니다. 결국 인생의 매 순간이 소중하다는 걸, 미래의 어느 순간을 위해 다른 순간을 포기하고 희생할 필요는 없음을 깨닫게 해 준 이 영화에 감사하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36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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