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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Jan 07. 2022

[365일 & 그레이 시리즈] 궁극의 길티 플레져

고생한 주연 배우들에게 박수를






넷플릭스 오리지널 ‘365일’, 그리고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 내가 어쩌다 이런 영화들에 대해 글을 쓰고 싶어 졌을까. 굳이 글로써 표현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아마 많은 사람들이 가까운 친구나 연인 사이가 아니라면 이처럼 섹슈얼한 영화에 대해 길게 말하기 민망할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래도 대외적으로 떠들고 다니기에 이상적인 작품들은 아니니까. 그러나 이러한 영화들은 남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온라인에서는 오히려 많은 관심이 쏠리곤 한다. 그래서일까, 이 글을 쓰기 하루 전인 크리스마스이브 아침부터 크리스마스 당일인 새벽까지 넷플릭스의 최다 검색어 화면에는 앞서 언급한 ‘365일’과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비롯한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들이 줄을 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들은 당연히 ‘쏘우’ 시리즈나 그 외 비슷한 영화들처럼 잔인한 작품들이 아니다. 이미 주 초에 다들 감상을 마친 것인지 가장 핫해야 할 크리스마스 영화들은 오히려 좀 더 뒤로 밀려 있다. 그리고 이처럼 최다 검색어 창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19금 영화들 덕분에,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인기를 자랑하는 ‘365일’과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 대해 써보고 싶어졌다.



영화를 제법 많이 보고, 극장도 자주 가는 편이다 보니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영화 진짜 좋아하는 애’가 되어 있다. 전문가까지는 못 될지라도 어디 가서 ‘영화 덕후’라고 말하는 데는 부끄러움이 없다. 이런 나이기에 왠지 ‘365일’이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와 같은 영화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심지어는 감상까지 했다는 말을 하기가 어쩐지 멋쩍다. 영화에 대해 진지한 만큼 오히려 이와 같은 영화들에 무심한 척하거나 차라리 고상 떨며 경멸을 보이는 편이 더 나아 보일 것 같기도 하고. 게다가 영화 내 여성 배우의 불필요한 노출을 불편해하는 나이기에 이런 영화들은 검색조차 해보기 싫다고 하는 게 맞는 그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충분히 간접적으로 연출이 가능한 데도 굳이 여자 배우를 노출시키는 작품들과 대놓고 주제가 ‘그쪽’인 영화들은 조금 다른 선상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중심 소재가 ‘그쪽’인 작품들 역시도 충분히 괜찮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로맨스가 배제되어 결은 좀 다르지만 그야말로 살색의 향연이었던 ‘님포매니악 볼륨 1’을 꽤 재밌게 보기도 했다.


물론 ‘님포매니악 볼륨 1’을 괜찮게 봤다고 해서 ‘365일’과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역시 만족스러우리라는 보장은 없다. ‘365일’과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는 모두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성애자 여성들의 은밀한 환상을 바탕으로 한 농염한 로맨스 영화들이다. 비록 원작들을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얼마나 끝내주길래 다소 무리수처럼 보이는 소재로 영화까지 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졌고 결국 모든 감상을 마쳤다. (물론 이런 소리는 모두 핑계일지 모른다) 그리고 이 영화들을 보고 난 후 감상을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왜 인기가 많은지 알 듯하면서도 모르겠다는 거다.



365일 : 치명적인 마시모, 그러나 범죄자


자신의 커리어에서는 승승장구 중이지만 연인과의 사이는 열정을 잃은 지 오래인 라우라. 그런 라우라는 생일을 맞아 떠난 여행지에서 마피아의 보스인 마시모에게 납치를 당한다. 제발 자신을 놓아달라고 애원하는 라우라에게 마시모는 믿기 힘든 이야기를 들려준다. 5년 전 아버지가 자신의 앞에서 총살당하고 마시모 역시 총을 맞고 의식을 잃어가던 찰나, 그는 아름다운 여인의 환상을 보게 됐는데 그 사람이 다름 아닌 라우라였다는 것. 그 이야기와 함께 마시모는 365일의 시간 동안 라우라가 자신을 사랑하도록 만들 테니, 그 이후에도 감정이 생기지 않을 경우 자유를 주겠다고 약속한다.


영화 '365일'의 장면들


총 3부작이라고 알려진 영화 ‘365일’은 현재 1편만이 공개된 상태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남주인공 마시모 역을 맡은 미켈레 모로네의 매력일 것이다. 190에 달하는 장신에, 빚어 놓은 듯한 몸매, 거기에 뇌쇄적인 눈빛까지. 개인적인 취향으로 따지면 그 섹시함이 지나쳐 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나 한 번 보면 쉽게 잊을 수 없는 외모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그의 시각적 유리함영화의 장르적 특성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덕분에 여주인공 라우라를 연기한 로라 비엘 역시 충분히 매력적임에도 다소 존재감이 떨어진다. 만약 황홀하게 잘생긴 얼굴에 육감적인 매력을 마음껏 뽐내는 남주의 영상 화보집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면 영화 ‘365일’을 보고 시간이 아깝지는 않을 것이다. 나름 레전드(?)로 꼽히는 장면까지 있으니 보는 즐거움은 어느 정도 갖추었다고 할 수 있겠다. 대신 스토리를 기대하면 곤란하다.


영화 '365일'의 장면들


장르의 특성상 대단히 개연성 있는 이야기와 심금을 울리는 메시지 따위 애초에 기대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참한 수준의 대사는 차마 무시하기 힘들다. 속된 말로 오글거려서 몰입이 방해가 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저 상황에서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오나 싶은 장면 역시 무수히 많다. 강렬한 스킨십 장면에만 공을 들이느라 주인공들의 감정을 세심하게 전달할 기력이 떨어진 듯 느껴진다. 하지만 애초에 큰 기대가 없었기에 빈약한 스토리와 엉성한 전개는 눈 감아 줄 수 있다. 가장 문제 삼고 싶은 부분은 남주인공이 여주인공과 함께 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다. 바로 납치. 마시모가 마피아 조직의 보스라는 사실은 캐릭터 설정으로서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다. 주인공이 범죄자인 영화야 이미 차고 넘친다. 그러나 로맨스 영화에서 무려 납치가 낭만을 위한 장치로서 소환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라우라가 어떻게든 도망치려 하는 데도 끝끝내 붙잡히는 상황이 나에게는 섹시하기는커녕 공포스럽기 짝이 없었다. 덕분에 결국 마시모와 함께 하기를 선택한 라우라가 진정으로 사랑에 빠졌다기보다는 스톡홀름 증후군을 는 것처럼 보였다. 범죄는 범죄일 뿐, 더는 로맨스 영화에서 폭력을 미화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 완벽한 프린스 차밍, 그런데 영혼이 없는


졸업을 앞둔 대학생 아나스타샤는 아픈 친구를 대신해 성공한 CEO 크리스천 그레이의 인터뷰를 맡게 된다. 아나스타샤는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매혹적인 그레이에게 서서히 빠져들고, 반대로 그레이는 순수매력의 아나스타샤에게 강렬한 호기심을 느낀다. 결국 두 사람은 운명처럼 서로에게 끌리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정상적인 연인 관계를 기대한 아나스타샤와 달리 그레이는 연애나 로맨스 같은 데는 관심이 없다는 사실. 그레이가 상대 여성에게 바라는 것은 오직 독점적인 성관계뿐이다. 이 마저도 취향이 평범하지 않은 그레이는 그동안 만나온 여자들과는 너무 다른 아나스타샤에게 다가가는 것을 주저하고, 아나스타샤는 이런 그레이의 모습에 혼란을 느낀다. 그러나 마침내 서로를 거부할 수 없음을 깨달은 두 사람. 결국 아나스타샤는 그레이의 어두운 욕망의 세계로 발을 들인다.


아나스타샤와 그레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이미 3편까지 공개를 마친 상태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통해 여주인공 아나스타샤 역을 맡은 다코다 존스의 팬이 되었다. 잔잔한 듯 깊이가 느껴지는 새파란 눈동자와 촉촉하게 감기는 목소리는 영화의 분위기를 떼어놓고 생각해도 치명적이다. 그의 이러한 매력과 섬세한 연기가 만나 서서히 본능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아나스타샤의 심리를 더욱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 그레이를 연기한 제이미 도넌의 외모도 출중하다. 비록 피지컬적으로는 ‘365일’의 미켈레 모로네가 더 시선을 끌지 모르나 얼굴만 놓고 보자면 제이미 도넌 쪽이 정석 미남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뭐랄까, 영화에서는 이러한 매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완전히 마시모라는 캐릭터에 몰입한 듯한 미켈레 모로네와 달리, 제이미 도넌의 연기는 마치 로봇처럼 영혼이 없어 보이는 탓이리라. 조금 더 가혹히 평가하자면 이 역할을 연기해야 하본인의 처지가 마음에 안 드는 건가 싶은 지경이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와 같은 영화는 주 타킷층이 여성이고, 그러다 보니 남주인공의 존재감과 매력이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장면들


그렇다면 스토리 면에서는 어떨까. ‘365일’과 마찬가지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도 큰 내용이랄 것이 없다. 원작에 충실한, 두 주인공 사이의 성적인 긴장감과 관계가 주를 이룬다는 점을 제외하면 로맨스 장르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다만 요즘 시대 흐름을 반영하려는 것인지, 통제광인 그레이에게 아나스타샤가 어쭙잖게 주체성을 드러내는 모습들이 보이는데, 잠자리에서 여주가 남주를 ‘마스터’라고 칭하는 시리즈의 정체성을 생각했을 때 다소 우습다. 천만 다행히도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는 끝내주는 장점이 한 가지 있다. 바로 귀로 황홀경을 느끼게 하는 근사한 사운드트랙들이다. 그러나 버젓이 음원 사이트들이 존재하는데 노래 좀 듣자고 굳이 영화까지 볼 필요는 없을 듯하다.






365일 사진 출처 : imdb

https://m.imdb.com/title/tt10886166/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8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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